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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바다 같은 눈물 샘 가지신 어머니
바다 같은 눈물 샘 가지신 어머니 ⓒ 나관호
노인이 되면 나이를 거꾸로 먹는다는 나는 사실을 날마다 경험한다. 특히 치매증상을 가진 어머니에게서 거꾸로 가는 시곗바늘 속도는 더 빠르다. 그렇지만 때론 어머니의 그런 모습에서 '사람 향기'를 맞는다. 가만히 어머니를 살펴보면 순진무구한 아이 같을 때가 많다. 어머니에게는 '아기 향기'가 난다.

각박하고, 인간미 없고, 자기밖에 모르고 사는 세대에 살면서 어머니를 보면 웃음도 나오고, 마음도 가난해지고 때론 숙연해질 때도 있다. 어머니의 '순수미소'는 자식 잘되기만을 고대하던 우리들의 모든 어머니들 그 모습이다.

분홍내의와 분홍치마 그리고 하늘색 덧버선
분홍내의와 분홍치마 그리고 하늘색 덧버선 ⓒ 나관호
늦은 저녁 시간, 어머니가 분홍 내의에 얇은 겉치마를 입고, 하늘색 덧버선을 신은 모습으로 소파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시는 모습이 천사같이 아름답다. 아기 같고, 순수하고, 욕심 없는 어머니 얼굴에서 어떻게 인생을 살아야 하는지 다시 배운다.

@BRI@"어머니! 너무 곱고 예쁘세요?"
"내가! 난 늙었지. 뭐."
"분홍내복 입으신 모습이 아기 같아요."
"난, 아들이 있어서 좋아. 반가워."

며칠 동안 일본에 다녀온 내가 그리운지 아들보고 반갑다고 하신다. 어머니 손을 잡고 눈을 쳐다보았다. 어머니 눈에 눈물방울이 보인다. 어머니는 젊은 날에도 눈물이 많으셨다. 아기들 눈물 닦아 주듯이 손바닥으로 어머니 눈물을 닦아드렸다. 그리고 어머니를 식탁으로 모셨다. 어머니 앞에 차려진 카레 밥에 웃으시라고 '어머니'라고 써드렸다.

"나, 밥이 너무 많은데?"
"다 드세요. 많이 드세요."
"나 배부른데?"
"식사 안하셨어요. 맛있게 드셔야 건강하시는 겁니다."

ⓒ 나관호
어머니의 밥투정이 시작됐다. 그래도 아기처럼 예뻐 보인다. 어머니를 달래서(?) 식사를 하시도록 했다. 옆에서 살펴보니 식사모습도 아기 같다.

어머니 밥 위에 김 한쪽을 놓아드렸다. 카레와 김의 조화로운 맛이 좋으신지 맛있어하신다. 그 모습이 좋아 보여 딸아이들을 키울 때 모습처럼 계속해서 숟가락 위에 김을 올려 드렸다. 나도 재미있어하고 어머니도 기뻐하신다. 웃으시는 모습에서 '아기 향기'가 집안에 가득하게 쌓아지는 것 같았다.

식사 후에도 눈물방울이 남아 있다. 어머니의 눈물샘은 바다만한 모양이다.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슬플 때 우시는 것보다 기뻐서 우시는 시간이 많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라고 속으로 말했다.

"어머니! 이제 그만 우세요. 웃어 보세요."
"근데, 어∼. 누가 온다고 했나! 아닌가?"
"집에 올 사람 없어요. 아무도 안와요."
"아닌데…."

어머니에게 텔레비전을 보시라고 했다. 마침 뉴스 채널에서 김연아 선수의 피겨스케이팅 우승 소식이 나오고 있었다. 어머니가 골똘히 화면을 보시더니 말씀하신다.

"저게 우리 예나 아냐? 많이 컸다."
"저것은 얼음에서 무용하는 건데요. 피겨스케이팅이라고 해요. 예나 아니에요."
"아닌데? 예나 아냐?"

어머니 같은 어른들은 자신이 무언가 집중하시면 반복해서 물으시고 이해가 될 때까지 의문을 갖기도 한다. 그래서 자세한 설명을 찬찬히 해드려야 한다. 아마 비슷한 또래의 손녀 같은 아이를 보니 그렇게 생각하시는 것 같았다.

당신이 업어서 키웠던 아이들이 타지에서 공부하기 때문에 방학 때 만나는데 올겨울에는 아이들이 훈련캠프에 들어가 어렵게 됐다. 여름에 봐야 할 것 같다. 몇 년의 짧은 시간이 어머니에게 긴 시간 같았다.

어머니가 문쪽으로 가신다. 어머니의 행동을 지켜보았다. 바깥소리에 귀를 기울이시기도 하고, 몇 번 망설이시더니 골똘히 생각하신다. 어머니에게 생각할 시간을 드리고 싶었다. 몇 분을 더 서성이시더니 입을 여셨다.

"예나는 안와?"

순수미소를 가지신 어머니
순수미소를 가지신 어머니 ⓒ 나관호
오늘 어머니의 생각에는 손녀들이 주제가 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큰딸에게 핸드폰으로 전화를 걸어서 할머니 찾는 전화를 다시 걸어 달라고 말했다. 큰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머니, 예나 전화 왔네요?"
"누구? 누구라고?"
"예나요 예나?"
"응, 우리 새끼 예나?"

전화기를 잡고 반가워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니 아기 같다. 어머니가 큰 소리로 말한다.

"예나냐! 예나야! 예나야! 안 들려. 언제 와. 빨리 와."
"예나야! 예나니. 안 들려."

어머니는 큰딸의 이름만 부르신다. 아무래도 딸아이가 말하는 것을 못 들으시는 것 같았다. 그래도 손녀이름 부르시는 모습이 예뻐 보이신다. 안부를 묻는 '딸아이'와 안부를 듣는 '어머니 아기'가 자세한 설명은 없지만 목소리만으로도 마음이 전달되고 있었다. 오늘 내 눈에는 어머니의 모든 모습이 아기 같다.

어머니에게서 나오는 '아기 향기'에서 어린아이 같은 순수함을 찾고 싶은 열망이 생긴다. 나도 나이가 들어가는 이유일까?

덧붙이는 글 | 나관호 기자는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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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제이 발행인, 칼럼니스트다. 치매어머니 모신 경험으로 치매가족을 위로하고 있다. 크리스천커뮤니케이션연구소 소장이다. 기윤실 선정 '한국 200대 강사'로 '생각과 말의 힘'에 대해 가르치는 '자기계발 동기부여' 강사, 역사신학 및 대중문화 연구교수이며 심리치료 상담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는 교수목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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