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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는 끝났지만 친구는 남았다.
ⓒ 김귀현
첫 출국, 그리고 '2006 한일 친구만들기' 참가. 이것만으로도 가슴이 벅찼다. 게다가 일본 대학생 친구들을 만나게 된다니. 다소 어리둥절하기까지 했다.

나는 대학생팀에 소속됐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우리팀 한국 시민기자 4명은 모두 남자다. 어리둥절한 나(24. 한림대), 누구보다 일본 친구들에게 궁금한 것이 많다는 허환주(28. 한성대), 최근 공부한 일본어로 일본 친구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겠다는 김귀현(26. 한양대), 일본 친구들을 사귀어 한국으로 초대하고 싶다는 유동훈(25. 경원대).

우리는 나이와 생김새는 달랐지만 설레는 가슴은 똑같았다. 여기에 우리는 같은 소망을 하나씩 품고 있었다. '제발 일본 여대생이 많이 나오게 해 주소서.'

첫 만남, 음식 씹는 소리만 가득

16일, 드디어 기다렸던 일본 친구들과의 첫 만남이 점심식사 자리에서 이뤄졌다. 그런데 일본 친구들을 만나자 정작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각자의 시선은 서로의 도시락에만 머물렀다. 음식 씹는 소리와 함께 어색한 분위기가 한동안 이어졌다.

썰렁한 분위기를 참을 수 없었던 것일까. 통역을 맡은 김경화씨가 자기소개를 제안했다. 비로소 어색한 침묵은 깨졌다. 그리고 다소 소란스런 식사가 시작됐다.

일본 대학생 시민기자는 모두 5명. 남자 셋, 여자 둘이다. 그러나 나쁘지 않았다.

오사카에서 7시간 동안이나 버스를 타고 왔다는 카토 마사노리(25), IT유비쿼터스를 전공하고 있다는 니시와키 야스히로(23. 시즈오카대), 다큐멘터리와 보도영상 촬영을 공부한다는 요코야마 슈헤이(23. 도쿄예술대), 동방신기를 좋아하고 한국문화에 관심이 많다는 야마바타 사토미(22. 게이오대), 보아를 좋아하고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이 많다는 하지모토 나나미(21. 게이오대).

자기소개는 각자 일본어, 영어 그리고 한국어를 섞어서 했다. 사토미는 한국말을 꽤 잘하는 편이었고, 야스히로도 기본적인 한국말은 알아듣고 말할 줄 알았다. 한국 시민기자 중에는 김귀현씨의 일본어 실력이 돋보였다.

전지현으로 '통'하고, '대장남'으로 막히다

자기소개를 통해 어색한 분위기가 누그러지자, 양국의 대학생들은 통역을 거치지 않고 둘 셋씩 무리를 지어 일본어, 영어, 한국어에 손짓 발짓까지 섞어가며 본격적인 대화를 시도했다.

"두 유 노우 <엽기적인 그녀> 전지현?"
야스히로 "she is a entertainer I like most. I have seen <내 여자친구를 소개합니다> the movie she stared"


나는 '콩글리쉬'로 물었는데 야스히로는 '잉글리쉬'로 대답했다. 다소 민망한 순간이었다. 그러나 소통이 돼서 다행이었다. 우리는 전지현으로 '통'했다.

역시 한일 양국의 대학생들이 기본적인 외국어 실력으로 편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주제는 양국의 연예인이었다. 일본 친구들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한국 연예인을 많이 알고 있었다.

▲ 한일 양국의 대학생들이 서로 궁금한 점을 묻고 있다.
ⓒ 이덕원
지하철을 타고 도쿄대로 이동하는 동안 야스히로는 가끔씩 김종국의 노래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사랑스러워'를 불렀다. 나는 일본 영화 <지금 만나러 갑니다>의 감동을 이야기했다. 우리의 공동취재 현장은 도쿄대였다.

얼마쯤 지났을까. 야스히로가 어눌한 한국말로 물었다.

"대장남, 대장녀가 뭐야?"

대장남, 대장녀? 알쏭달쏭한 한 말이었다. 나는 야스히로의 손짓을 보고 유추했다. '아, 한국 남성주의를 물어보는 거구나.' 즉 대장(大將)남을 표현하고 싶은 것으로 받아들였다. 짧은 영어 실력과 손짓 발짓을 동원해 한국 사회의 남성 우월주의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뒤이은 야스히로의 질문에 식은땀이 흘렀다.

"그럼 김치남, 김치녀는 뭐야?"

야스히로가 물은 건 '된장남' '된장녀'였다. '김치남' '김치녀'도 '고추장남, 고추장녀'를 말한 것이었다. 한국인 친구가 그랬단다. 한국남성 중에는 된장남 고추장남이 있고, 한국여성 중에는 된장녀 고추장녀가 있다고.

난 다시 알고 있는 모든 영어 단어와 내 몸의 온갖 움직임을 동원해 설명했다. 된장남과 된장녀에 대해서. 지하철의 일본 사람들이 나를 이상하게 쳐다봤다.

역사를 기억하는 도쿄대

전지현으로 '통'하고 된장남 된장녀를 설명하다 보니 도쿄대학교 도착했다. 도쿄대는 올해 영국의 <더 타임스>가 매긴 세계 대학 순위 평가에서 19위에 오른 명문대다.

우리 한국 대학생들은 도쿄대를 처음 방문하며 '세계적인 명문대는 어떤 모습일까', '일본의 대학은 한국의 대학과 무엇이 어떻게 다를까'하는 궁금증을 갖고 있었다.

도쿄대의 첫 인상은 '명문대'보다는 일본의 지난날을 온전히 기억하는 '역사'로 다가왔다. 캠퍼스 한 가운데 위치한 '야스다 강당'은 단연 인상적이다. 야스다 강당은 1960년대 일본 학생운동의 상징으로 일본 민주주의 역사에서 큰 의미를 갖는다.

▲ 도쿄대 한 가운데 위치한 야스다 강당.
ⓒ 유동훈
동행한 일본 친구 마사노리는 정치학을 전공하는 대학원생답게 야스다 사건에 대해 직접 설명해줬다.

"야스다 사건은 1969년 1월18일 당시 일본 학생운동조직인 전국공투회의(전공투) 소속 학생들이 도쿄대 야스다강당을 점거농성하던 중 8500명의 경찰 기동대에 의해 전원 연행된 사건이야."

도쿄대에는 맨홀조차 역사를 오롯이 간직하고 있다. 도쿄대의 한 맨홀 표면에는 도쿄대의 전신인 '제국대학'으로 교명이 쓰여있다. '제국대학'에서 '도쿄제국대학'으로 다시 개칭한 것이 1897년임을 고려하면 100년은 족히 넘었다는 증거다.

야스다 강당 뒤편에 숲으로 둘러싸인 연못 '산시로' 역시 사연을 품고 있다. 연못의 이름은 일본 근대문학의 창시자 나쓰메 소세끼의 소설 <산시로>에서 따온 것이다. 실제로 산시로 연못은 소설에서 남녀 주인공이 처음 만나는 장소다.

이밖에 지진 대비 설계 기술이 없었던 시기에 만들어져 기둥이 세 아름은 족히 되는 건물도 인상 깊었다.

가을의 끝자락, 은행나무가 많은 도쿄대는 노랗게 물들어 아름다웠다. 우리 한일 대학생들은 아름다운 풍경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점심식사 때부터 시작된 일본 친구들과의 만남은 밤늦은 시간에 끝났다. 참 짧은 순간이었다. 일본 친구들이 전철을 타고 떠날 때는 머리가 멍했다. 서울에서 다시 만나자는 약속을 했다. 하지만 그때 우린 서로 다른 위치에 있을 것이다.

한국 대학생 시민기자 4명 중 3명은 곧 졸업을 한다. 그래도 다시 서울에서 만나면 무슨 이야기를 나누게 될까.

▲ 한일 양국의 대학생들이 지난 16일 도쿄대를 방문했다.
ⓒ 허환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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