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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보 제9호 부여 정림사지5층석탑
국보 제9호 부여 정림사지5층석탑 ⓒ 김성후
그 후 석탑을 만드는 기술이 더욱 발전하여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등장합니다. 간혹 정림사지 오층석탑이 미륵사지 석탑보다 더 오래되었다는 주장을 펴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 탑의 특징은 목탑의 복잡한 구성을 간결하고 질서 있게 정리하였으며, 반듯한 몸체에 넓고 편평한 지붕을 얹어, 단정하면서도 여유가 있는 백제 석탑의 독특함을 완성하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또한 각 부분의 짜임새가 완벽하고 제작 기법이 탁월하여 이 시기에 석탑의 조형 기술이 제대로 갖춰줬다고 보아도 무방하다고 합니다.

신라 석탑을 만드는 방식은 백제의 방식과는 달랐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신라의 석탑은 벽돌탑(전탑, 塼塔)의 모방에서 출발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신라의 석탑으로 가장 오래된 것은 경주의 분황사 모전석탑으로 이 탑은 전탑처럼 보이지만 벽돌이 아니라 안산암이란 돌을 벽돌처럼 깎아서 만들었습니다. 벽돌을 모방한 돌로 만든 탑이라서 모전석탑(模塼石塔)이라 부릅니다. 그 다음으로 신라 석탑의 조성방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는 탑으로 경북 의성의 탑리 5층 석탑이 있습니다. 부여 정림사지 석탑이 백제계 석탑의 기틀을 다진 것처럼 의성의 탑리 석탑에서 신라계 석탑의 새로운 발상과 옛 수법의 간략화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국보 제21호 경주 불국사석가탑
국보 제21호 경주 불국사석가탑 ⓒ 김성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고 난 뒤 불국사 석가탑에 이르러 신라계 석탑의 전형을 완성합니다. 석가탑은 기단 면 가운데 새겨진 기둥이 아래층에는 세 개, 위층에는 두 개이며, 몸돌은 3층을 이루면서 몸돌과 지붕돌(옥개석, 屋蓋石)이 각각 하나의 돌로 짜여졌고, 지붕돌 밑에는 5개의 받침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안정감이 있는 구도와 한 치의 어긋남도 없는 짜임새를 갖추어 당당한 기품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형식은 당시의 석탑에서 한결같이 나타나는 특징으로서 실제로 이 무렵에 신라 석탑은 절정기를 맞으면서 확고한 전통이 확립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석가탑을 정점으로 석탑을 만드는 실력이 일정한 경지에 다다르자 전형적인 틀에서 벗어나면서 조형미가 뛰어난 새로운 형태의 석탑을 만들어내기 시작했습니다. 이들은 기단이나 몸돌의 모양을 변형시켜 일반 석탑과는 그 모양이 확연히 다른 형태의 석탑을 만들었습니다. 이형석탑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탑은 불국사 다보탑이며, 다보탑에 비견되는 아름다운 이형석탑으로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을 꼽습니다.

국보제35호 구례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
국보제35호 구례 화엄사사사자삼층석탑 ⓒ 김성후
신라시대와 후삼국시대를 거쳐 고려라는 새로운 국가가 한반도를 통일하게 됩니다. 고려의 기틀이 갖추어지는 10세기 후반부터는 절을 세우고 탑을 건립하는데 지방의 세력이 참여하기 시작하면서 석탑에도 지방색을 지닌 양식이 나타나는 등의 변화가 일어납니다. 옛날 신라의 영토였던 영남 지방에서는 여전히 신라식의 석탑이 주류를 이루지만 옛 백제 지역에서는 백제식의 석탑이 일부 만들어지며, 고려의 수도인 개성을 중심으로 한강 이북 지방에서는 다각다층석탑을 만들기도 합니다.

또한 다양한 형태의 이형석탑이 고려시대에도 조성되는데 그 중에는 화엄사 사사자삼층석탑의 전통을 이은 석탑도 있고, 새로운 소재를 사용한 청석탑, 탑신의 층층마다 괴임돌을 삽입한 석탑, 탑신 전체에 불보살상이나 여러 가지 무늬를 새긴 석탑, 상륜부가 특이한 조형을 보여주는 석탑 등도 있습니다.

이런 고려 석탑 변화의 증거로 경천사지 10층 석탑을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이 탑은 고려 말기인 충목왕 4년(1348)에 세워졌는데 아(亞)자형의 기단을 3단으로 쌓고, 3층 몸돌까지 아(亞)자형을 유지하다가 4층부터는 사각형으로 올렸습니다. 상륜부는 사면석주형으로 마감하고 있는데 하얀색 대리석을 재료로 하여 기단부터 탑의 꼭대기에 이르기까지 부처와 보살·신중·용·동물 등을 화려하게 새겨 넣었으며, 몸돌에는 층마다 난간을 설치하였고, 지붕은 목조 건물에 들어있는 온갖 부재를 세밀하고도 정확하게 표현하였습니다.

조선시대는 불교를 억압하고 유교를 숭상하는 정책을 펼쳐 불교예술품인 석탑 또한 새로운 양식을 만들어내지 못하고 앞서 만들어진 작품을 모방하는 차원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서울 탑골공원의 원각사지 십층석탑은 세조 임금 때 세워진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석탑으로 경천사지 십층석탑을 본뜬 것이며, 함양의 벽송사 삼층석탑은 신라의 일반형 석탑과 형식상에서 조금도 차이가 없습니다. 조선시대의 석탑은 이처럼 과거에 만들어진 석탑의 모방에 머물렀지만 표현 양식은 대체로 선이 두텁고 표현이 담백하며 정중한 분위기를 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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