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만금 갯벌을 막은 것은 정치인도 건설회사도 아니다. 새만금은 갯벌과 갯일을 '쓸데없는 땅', '쓸데없는 일'이라고 무시해온 '육지 것'들의 오만과 편견이 막은 것이다. 육지의 눈과 기준으로 바다를 재단하거나 계몽과 시혜의 대상으로 봐서는 안 된다."
십수 년간 갯벌, 섬과 바다를 지켜봐왔던 이가 "언제부터인가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며 육지 사람들에게 던진 당부다. <오마이뉴스>가 선정한 '2006 올해의 뉴스게릴라상' 연재부문 수상자 김준(43).
김준 기자는 지난 2004년부터 '바다에서 바다를 보다'를 연재하며 새만금 방조제와 갯마을 사람들의 삶, 그리고 서남해안 섬사람들의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해주고 있다.
- 연재: 김준의 <바다에서 바다를 보다>
농촌에 관심있는 사람이 갯벌로 간 까닭
바다에서 바다를 보다. 이 연재 제목엔 그가 하고 싶은 말이 담겨있다. 한쪽의 시각과 잣대로 다른 한쪽을 일방적으로, 함부로 규정하지 말라는 것이다. 또 단순한 '구경' 거리로 휙 둘러보는 것에 그치지 말고 "눈여겨 들여다보자"는 것이다.
김준 기자와 나는 6년여 전부터 인연을 맺은 선후배 사이다. 한때 나는 김준 기자가 주도했던 답사모임에도 참여했다. 한 동안 만나지 못한 탓에 그를 '지켜보지' 못했다. 어느 날 <오마이뉴스> 기사로 그를 만날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본 기사는 2004년 5월에 쓴 '새만금과 부안 핵폐기장의 교훈'이라는 기사였다. 이후 그는 새만금 갯벌에서 만난 아주머니, 아저씨들의 이야기를 들려주더니 섬과 바다 이야기를 기사로 풀어냈다.
'원래 답사를 자주 다니는 선배인데 가끔 섬에 가는 모양이구나'. 그렇게 생각했다. 그는 대학에서 지역사회학을 전공하고 '나주 수세폐지운동'을 주제로 한 논문으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1990년대까지는 농촌에 많은 눈길을 줬던 것이다. 그런데 그는 지금까지 바다이야기로 연재를 하고 있다.
그는 "농촌사회가 급격히 무너지면서 농촌에 대한 연구 분야도 무너지기 시작했고 그래서 새로운 현장에 뛰어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목포대학교 도서문화연구소 연구교수로 인연을 맺으면서 어촌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첫 시작은 다소 우연이었지만 이제 바다는 그의 삶의 일부가 됐다.
그는 92년 전남 완도군 소안도를 시작으로 바다를 찾았다. 지금 그가 풀어내는 기사는 10여 년 동안 다니면서 보고, 느끼고 대면한 것들이 쌓여서 나온 것이다. 그러나 그가 바다를 찾은 원래 이유는 논문을 쓰기 위해서였다.
"10여 년 동안의 연구 성과를 모아 연구 논문 등을 썼다. 일반 육지 사람들에게 바다와 갯마을 사람들의 삶을 전달해 주고 싶었다. 주민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논문의 문법 틀에 넣으면 무미건조해졌다. 또 육지 사람들이 자신의 잣대로 섬과 바다를 바라보면서 갖는 편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바다? 일주일만 안가도 몸이 쑤시는 곳"
고상하고 틀에 박힌 문법만으로는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이 많았다고 한다. 그리고 "처음에는 내가 그냥 좋아서 했는데, 나중에는 바다를 잘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바닷가 주민들의 삶을 전달하고 있다는 자긍심도 생겼다"고 한다. 그는 기자회원 가입당시 그 심경을 아래와 같이 소개한 바 있다.
"연구과정에서 만난 사람들의 소중한 이야기가 논문에 머물고 마는 것에 한계를 느꼈다. 특히 새만금 지역을 돌아다니면서 더욱 연구자의 무능력을 실감했다. <오마이뉴스>에 관심을 갖는 것은 연구자의 무능력을 벗어나려는 작은 몸짓이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얼마나 많은 섬과 갯벌 등을 오갔을까. 그는 "전남지역의 경우 면 단위 섬 중에서 안 간 곳은 손으로 꼽을 수 있다"며 "처음에는 남해안 섬을 다녔고, 이후에 서남해안을, 최근에는 동해안 섬도 다니고 있다"고 했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그는 일주일에 한 번 꼴로 섬을 찾는다. 그에게 "바다가 뭐냐"고 물었더니 "일주일만 안가면 몸이 좀 쑤시는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부럽다. 그런데 경비는 어떻게 충당할까. 가족들의 불평도 만만치 않을 것 같다. 그는 "가족들도 이제는 으레 섬에 가는 줄 알고 있어서…"라고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리고 "경비는 만만치 않게 들어간다"고 밝혔다.
그는 늘 필름과 디지털, 두 대의 카메라를 지니고 다니는데, 기록과 보도용 사진을 위해서다. 그 동안 맺은 주민들과의 만남을 글뿐만 아니라 슬라이드, 사진 등으로도 기록하자는 것. 처음에는 단순히 '찍기만' 했는데, 글을 쓰면서 주민들의 일상을 어떻게 하면 독자들에게 생생히 보여줄 수 있을까 고민하면서 사진을 찍는다고 했다.
지난 12월초부터는 자신이 재직하고 있는 도서문화연구소의 제안으로 '섬과 여성'이라는 주제로 사진전도 열고 있다.
"내 다음 관심사는 '간척의 역사'"
광주광역시 동구에 있는 그의 개인 작업실에는 연구서, 사진, 기록물 등이 쌓여있다. 그곳에서 새만금 방조제, 장항 방조제 등을 꼼꼼히 표시 해 둔 지도를 보고 놀랐다. 우리나라에 이렇게 간척지가 많았나 싶었다. '우리 역사는 간척의 역사'라는 어떤 이의 말이 피부로 와 닿았다. 이런 표시를 왜 해뒀을까.
"새만금 방조제 공사 논란을 겪은 이후에는 더 이상 '간척'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 줄 알았다. 그런데 장항 간척공사 논란을 보면서 '참 질기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80년대에 간척공사를 많이 했는데, 간척된 이후 '간척 잘했다'고 말하는 주민은 한 명도 없더라. 간척지를 집중적으로 돌면서, 간척 이전에 어민이었던 주민들의 삶을 알아보고 싶은 욕심이 있다. 그들이 어떻게 사는지,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연구하고 싶다."
그는 "섬과 갯벌 주민들이 이전에는 '물 때'라는 갯벌의 시간표에 맞춰 일을 했는데 지금은 동이 트고 지는 '육지의 시간표'에 맞춰 일을 할 수밖에 현실을 볼 때, 그리고 생활 터전이었던 바다와 갯벌이 어느 날 갑자기 아무 쓸모없는 곳으로 변화된 모습을 볼 때가 가장 아쉽다"고 말했다.
그에게서 내년에는 '간척의 역사'를 기대해도 될까. 그가 전하는 바다이야기가 우리사회에 의미 있는 파장으로 이어지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