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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주의자들의 행복한 책읽기 소개

'평화주의자들의 행복한 책읽기'(이하 '행복한 책읽기')는 수감되어 있거나 출소한 양심적 병역거부자들, 평화운동가들 그리고 평화주의에 관심이 있는 여러 사람들이 함께 책을 정해서 읽고 토론해나가는 모임입니다.

행복한 책읽기는 평화주의자들이 모여서 전쟁과 폭력, 평화에 관한 책을 읽고 토론한다는 특징 이외에도 성공회대 한홍구 교수님의 도움을 통해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에게 행복한 책읽기에서 정해진 책들을 보내고 있으며 병역거부자들이 감옥 안에서 써온 서평을 함께 읽고 있습니다.

그간 박노자 교수의 <당신들의 대한민국2>, 김재명 국제분쟁전문가의 <나는 평화를 기원하지 않는다> 등의 책을 읽고 토론했으며, 이번에는 한국사회의 군사주의에 대한 신랄한 비판이 담긴 권인숙 교수님의 <대한민국은 군대다>로 모임을 진행했습니다.

본 글의 내용은 지난 12월 7일에 평화운동단체 '전쟁없는세상'의 사무실에서 저자이신 권인숙 교수님와 함께 진행되었던 모임의 내용을 정리한 것입니다.


권인숙 교수, 여성학을 시작하게 된 배경

나동혁 : 제가 권인숙 선생님에게 보통 강연하실 때처럼 먼저 이야기하시고 나머지 사람들이 질문하는 형식으로 하지 않겠다고 말씀을 미리 드렸습니다. 함께 이야기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될 것이지만 대신 첫 인사말 정도는 부탁드렸습니다. 인사말이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책을 쓰게 된 본인의 마음이나 여성학을 공부하셨을 당시의 상황에서 대해서 말씀해주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권인숙 명지대 교수(여성학), "대한민국은 군대다" 저자
ⓒ 임재성

권인숙 : 제가 여성학을 하게 된 것은 저의 운동 속 경험에 많은 근거가 있어요. 예전 제가 노동운동을 했을 때는 '여성'자가 들어가는 이야기만 해도 같이 활동하는 이들이 큰 거부감을 나타냈을 정도로 여성주의나 여성학의 이해가 전무했죠. 여성학 하는 사람들이 너무 싫다고 하기에 그럼 여성학 하는 사람들을 만나본 적은 있냐고 물어보니 만나본 적은 없지만 싫어한다고 하더라고요. 당시 전 노동인권회관에서 일했는데 저희 소장님 같은 경우는 법률상담을 했던 여자 분이 남자들도 육아에 참여해야 한다는 이야길 하자 소리소리 지르면서 요즘 여자들이 저래서 문제라고 하기도 했었죠. 여성학이라는 학문을 너무 싫어했고 따라서 그런 문제의식을 가지고 있는 저를 성격이 안 좋은 여자로 규정하기도 할 정도였어요.

89년, 90년 그러한 억압적 문화 속에서 스스로 여성학을 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를 정했어요. 사람들이 왜 여성학 하는 사람들을 그렇게 미워하고, 알기도 전에 싫어하는 마음을 가질까. 공감하지 못하는 저변은 무엇일까 등등의 질문에 대한 답을 구하는 것이었죠. 그래서 대학원에 가서는 거의 그것에 모든 초점이 맞추었어요. 제일 처음에 봤던 것이 민족주의이었는데 민족주의적인 색채를 가지면 여성이란 것이 서구적인 것이 되자나요. 하지만 민족주의만으로는 한계가 있었어요. 당시 학계에서는 후기 식민지 이야기가 주되게 나왔기에 그 쪽을 살펴봤지요. 그 이론 속에서 제국주의는 절대적으로 나쁜 것으로 상정되었는데 저는 아무리 생각해도 일제 강점기에 일본 때문에 더 나빴고, 가부장제 때문에 덜 불행했고 이런 느낌이 안 들더라고요. 제국주의라는 것을 여성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하다 생각했어요. 남성적 시각에서 제국주의가 '너무 나쁜 것'인데 과연 그렇게 나빴을까 다시 바라보려고 노력했어요. 제국주의라든가 새로운 문화적 힘이 들어오면서 생기는 내부 질서의 변동 등에 대한 가치는 전혀 없는 것인가. 왜 그런 점을 전혀 보려 하지 않는가 등을 비판적으로 검토했죠.

공부하는 과정에서 내 삶의 경험을 돌아볼 수 있는 축을 잘 잡지 못했는데 군사주의를 통해서 축을 잡을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이 책에서도 제가 밝혔지만 군사주의란 말을 당시 제 주변의 누구도 쓰지 않았어요. 98년에 어떤 연구자를 만나서 군사주의에 대해서 연구한다고 했더니 깜짝 놀라더라고요. 딱 그런 거 있자나요. 말하면 다 알아듣는데. 그때까지 그 프레임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보지 못했다는 반응들. 당시는 제 주변의 지식인들도 다 그랬어요. 군사주의에 대해서 연구를 하면서는 내 삶에 정체성을 돌아봤죠. 80년대에 조직에 적응하지 못했고, 노동운동가서도 마찬가지였고. 뭔가 여성문제 이야기할 때 느꼈던 답답함과 거부감. 92년에 제가 유학을 가겠다고 밝혔을 당시 사회운동에서 가부장적인 문화에 대한 문제의식은 거의 없었어요. 느낌상으로는 제가 처음이었던 것 같아요. 여성학 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무슨 이야기인지는 아는데 그 분들은 노동운동이나 우리 같은 사회운동을 하지는 않았으니까요. 제가 본격적으로 그런 분들을 만나기 시작했던 것은 98년 99년쯤에 '컵깨기' 행사였지요. 저는 그때 그 사람들 만나면서 숨통이 트였던 것 같아요. 당시에는 욕도 많이 먹었지만 저는 지금도 그런 흐름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지네요.

양심적 병역거부는 '컵깨기' 행사와는 다른 차원에서 새로운 의미를 가지는 운동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우리 사회의 군사주의에 대한 새로운 대안과 저항을 하는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우리 사회의 국가주의, 그리고 굉장히 국가주의적이고 집단주의적이었던 운동에 새로운 획을 긋는 획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고 있어요. 이 정도면 인사말이 되었을까요?

병역거부운동, 평화운동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나?

임재성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양심적 병역거부자
ⓒ 임재성

임재성 : 책 내용에 앞서 병역거부운동을 하면서 가지고 있는 고민을 선생님께 먼저 질문 드리고자 합니다. 징병제가 가지고 있는 사회적 배제성, 즉 군대를 다녀온 사람만이 시민성을 독점하고 정상 시민으로 분류되는 문제에 대해서 병역거부운동을 그런 것들에 대해서 개입할 수 있는 기제로써 많은 분들이 분석을 해 주시자나요. 또한 병역거부 운동이 가지고 있는 평화적 지향과 군사화에 저항하는 가치를 주목해주시는 분들도 많으신데, 저는 실제 한국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병역거부운동이 과연 그러한 맥락에 있는가에 대해서 고민이 듭니다. 실제 활동가들이 집중하는 병역거부운동의 초점은 대체복무제 도입인데, 과연 그 속에서 징병제가 가지고 있는 배제성이나 군사주의 문화에 대해서 얼마큼 도전하고 있고 외화시켜나가고 있는가에 대해서 회의가 들기도 합니다.

권인숙 : 운동으로 외화되는 것은 좀 다른 이야기겠지요. 그러나 대체복무제는 군사주의나 징병제가 가지고 있는 배제성에 대한 굉장한 도전이고, 혁명적인 내용을 가지고 있다고 봅니다. 그 자체만 놓고 분석했을 때 우리 사회의 기준에서 대체복무제를 받아들이기 굉장히 어려워요. 일단 예외성을 인정하지 않음으로 해서 제도의 균열을 만들려고 하지 않으니까요. 징병률을 지켜나가고, 병역의무에서 생기는 갈등을 막는 우리나라의 방침이 예외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병역거부자들에게 대체복무제를 허용하면 예외성이 인정이 되는 것이며 결국 그들의 시민성을 인정하는 거 아닌가요? 물론 운동의 방식과 형태에 따라서 담는 내용이 차이가 있겠지만 기본 개념에서는 우리 사회에서 굉장히 큰 의미를 가지고 있는 거란 생각이 듭니다.

최정민 평화인권연대 활동가
ⓒ 임재성

최정민 : 방금의 질문이 이런 차원에서도 나왔던 거 같아요. 원래 세계적으로 대체복무제라는 것 자체가 태동했던 것이 병역거부자들의 등장이 있었기 때문인데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대체복무는 국가가 주도를 해서, 말하자면 나라에 애국한 사람들이나 학벌이 좋고 기능을 가진 사람들에게 말하자면 국가에서 하사하는 방식이었자나요. 저희는 그렇기에 지금의 대체복무 속에 병역거부자들에게 주는 의무의 방식으로서 그것을 말하는 것이죠. 하지만 여전히 그래도 대체복무라는 것이 징병제도라는 틀 안에서 진행되는 대안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그 속에서 배제성이라는 것, 그러니까 여성이나 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제성이라는 것을 뛰어넘지 못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요.

대체복무제, 여성 징병제 논의를 피할 수 없다

권인숙 : 저는 대체복무에 대해서는 많은 연구를 하지 못해서 그리 진전된 이야기를 할 수준은 아닌데 대체복무 이야기가 나오면 여성들이 곤란해지는 지점들이 있겠지요?

임재성 : 그렇죠. 쉽게 말하면 모든 국민이 병역의 의무를 진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남성에게만 신체등급을 매기고 그 등급에 근거해서 징집을 했던 이유가 군인으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는 신체적 차이에 근거했던 것이죠. 신념에 근거해서 군사훈련이 포함되지 않는 대체복무가 인정된다면, 사회봉사로서 군인이 되지 않으면서 의무를 수행할 수 있는 방법이 생기기에 여성들도 그 대상이 되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올 수 있을 것 같아요.

여성 징병제에 대한 의견을 말하는 권인숙 교수
ⓒ 임재성

권인숙 : 남자에게 한정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오겠지요. 그 부분이 참 선택이 애매한 부분인 것 같아요. 징병률을 아주 낮추고 국가라는 단위를 조금 약화시키고 공동체를 위한 봉사 등의 개념을 강화시키면서 여성 쪽에서 수행하는 것으로 접근하는 것이 나을지 아니면 모병제로 몰입을 하는 것이 나을지에 대한 판단에서 애매한 부분이 많은 것 같아요.

임태훈 : 저는 여성이 군대에 가야 한다는 주장들에 여성단체가 언제까지 계속 함구하고 갈 것인지 답답합니다. 그것이 민감한 문제라고 해서 입장을 내지 않거나 개입하지 않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임재성 : 앞서 대체복무제란 것이 도입되는 것 자체만으로 가지고 있는 의미가 있다고 말씀하신 부분에 동의합니다. 공존의 가능성이 생긴다는 것의 의미는 정말 클 것입니다. 하지만 운동 속에서 저희는 '특권이나 면제를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신념적 이유로 총을 들지 못하겠다는 사람들에게 형평성에 맞는 다른 의무를 주자'는 논리로 주장합니다. 그 속에서 남성들만이 수행하는 의무의 존재는 그대로 있는 것이죠. 그렇게 보면 최정민씨가 이야기했던 여성이나 장애인이 징병제라는 기준 속에서 배제되는 것에서 사실상 개입할 수 있는 부분이 없는 거라고 봐요. 쉽게 말하면 우리도 의무를 다하고 싶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는 스스로의 신념이 존중되는 방식으로 하고 싶다. 없다면 처벌이라도 받겠다. 이런 논리구조이기에 저희가 고민하는 평화주의에 대한 지향성이나 징병제가 가지고 있는 군사주의에 대한 저항과는 많은 괴리가 느껴집니다. 병역거부운동의 반군사주의적 측면의 실천들은 아직은 소규모 그룹에서의 논의나 캠페인에서 외치는 구호 정도가 전부인 실정이죠.

나동혁 : 사실 운동가들은 이론과 실천의 괴리에서 고민을 많이 하자나요. 특히나 저나 오태양씨 등 초기의 병역거부자들에게는 대체복무제를 중심으로 설명을 하면서 한편으로 보면 굉장히 국가의 의무나 그런 것을 강조하게 되었지요. 저는 그런 것이 여성 징병제의 논리로까지 확대되는 것을 보면서 이런 것이 또 다른 긴장관계를 낳을 수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많이 들었어요. 저는 평화주의보다는 반국가주의가 강한 사람인데 그래서 국가라는 말을 공동체란 말로 바꿔 쓰면서 자위를 했던 거 같아요. 국가의 존재와는 별개로 공동체는 필요하고 봉사, 의무, 권리라는 개념도 필요하니까요. 아무리 급진적인 사상이라도 그러한 전제까지는 깨지 못하거든요. 그것은 인류의 전제 같은 것이죠. 대체복무제 도입 운동의 적극적인 의미를 활동하는 우리 안에서 어떻게 찾을 수 있을까는 내부적으로는 오래된 논의입니다. 대체복무제가 파생적으로 사회 속의 군사주의를 일정 부분 해체시킨다는 효과 말고 평화주의와 반국가주의적 관점을 가진 우리 안에서의 여전히도 답답한 부분들이 있었어요. 그런 와중에 선생님이 저번에 오셨을 때 한국상황에서는 대체복무제도 도입운동보다 모병제 도입운동이 쉬울 수도 있다는 말씀을 하셨을 때 혼란이 점점 가중되었지요.

임태훈 : 제가 최근에 군인 대상의 인권교육에 참여하고 있는데 교관들은 오히려 우호적입니다. 군대내 동성애자 문제라든지, 대체복무제도 도입 문제라든지, 군내 부적응자에 대한 대체복무제도 확대 등의 문제에서 말이죠. 하지만 지휘관들은 많이 갈리죠. 예를 들면 지휘권과 인권이 부딪힌다고 주장을 하는 사람들도 있고, 과감하게 군이 털어낼 것은 털어내야 한다, 어차피 총 안 잡고 전쟁 나도 총 안 쏠 건데 가둬둬서 뭐하냐, 대체복무제도 도입하자 이런 사람들도 있고요. 하지만 이러한 군 내부의 인식이 무색할 정도로 군대라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지고 있는 보편적 피해의식이 상당함을 느낍니다. 나도 똑같이 박박 기었으니까 너도 박박 기어야 한다는 사고나 있는 놈은 안가고 없는 놈은 다 간다는 피해의식은 상당하지요. 저는 그런 문화만 어느 정도 없어진다면 이 문제가 훨씬 쉽게 해결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권인숙 : 우리나라 징병된 사람들의 피해의식은 사실 사회적으로 불건강하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점들을 다루고 있는 논의들도 꽤 많이 있습니다. 여성 징병제 이야기를 다시 하면 저는 여성 징병제는 어차피 계속 나올 수밖에 없는 논의라고 생각합니다. 여성계에서 이 문제에 침묵하고 있음을 앞서 비판하셨는데 동의합니다. 하지만 방향을 쉽게 정하기가 힘든 것이 문제겠지요. 그 논의를 우리가 완전히 나 몰라라 하는 식으로 대응한다거나, 또한 단정적으로 '아니다'라고 결론짓는 것은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문제에 대해서는 '여자는 아니다', '군사주의의 확산이다'와 같이 단순하게 접근할 수 없는 현실적인 요소들을 굉장히 많이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임재성 : 만약 여성 징병제에 대한 논의가 확산이 되면 그것에 대한 반대 논리가 좀 빈곤한 것이 사실입니다. 프레임 자체를 깨지 않으면 대응하기 곤란한 부분이 있지 않나요? 예를 들어 대체복무의 프레임 같은 경우도 말이죠.

권인숙 : 명분상으로 안할 도리가 없지요.

임재성 : 프레임을 벗어나서 '군사화'나 '국가의 징집제도' 자체의 정당성 등으로 접근하지 않는다면 말이죠.

최정민 : 만약 프레임이 바뀐다는 것이 모병제로 바뀌는 것과 같은 방향이라고 해도 여성에 대한 문제는 피해갈 수 없을 것 같은데요.

임재성 : 제가 말한 프레임을 벗어나는 것은 지금의 징병제에서 모병제로의 변화와 같은 기존의 체제를 인정하는 프레임이 아니라 국민국가의 존재의 기본이 되는 징집제도라는 것 자체에 대한 문제제기와 같은 보다 급진적인 문제제기로 가지 않는 이상은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성 징병제의 문제에서 이렇게 접근하려니까 논의의 차원이 맞지 않은 점이 있다는 것이죠.

권인숙 : 논의의 차원이 맞지 않는 면이 있죠. 대체복무제에 대한 부분은 분명 여성에 대한 부분을 포함할 수밖에 없어요.

최정민 : 여성 징병제 이야기하셨을 때 생각이 들었는데요, 저희 같은 평화주의자들은 여러 현실적 조건들을 인정하고 고려하지만 모두가 군대를 어떠한 방식으로라도, 그것이 대체복무라도 참여해야 한다는 것에 가슴이 아프거든요. 제가 유승준을 싫어하지만 유승준이 그런 방식으로 사회에서 매장당하는 것도 가슴이 아프기도 해요. 대체복무제도가 모든 여성들도 대체복무를 해야 된다고 이야기가 되거나 징병제나 모병제하에서 여성운동의 성과로 여성군인의 질이 향상되는, 말하자만 총 쏘고 사격하는 훈련까지 여성에서 허용이 되고 여성의 비율도 늘어나고 이런 것은 사실은 평화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선생님이 여성 징병에 대해서 같이 말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부분에 굉장히 공감을 하면서도 무척 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어요.

학생운동, 지금도 군사주의적이다

나동혁 전쟁없는세상 활동가, 양심적 병역거부자
ⓒ 임재성

나동혁 : 활동가들이 자신의 경험에 기반을 두어서 선생님과 나누고 싶은 이야기를 했던 것 같습니다. 이 이야기들은 여기서 조금 정리하고 지금부터는 책과 서평을 중심으로 진행해 봤으면 합니다. 사실 오늘 이야기들이 일정 부분 자기 고백을 담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인터뷰 중심의 책이기도 하고, 서평을 쓰신 분들도 자기 이야기가 중심이구요. 용석씨가 쓴 서평은 저 역시 많이 공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선생님 책에서도 2장 - '1980년대 학생운동의 군사화와 성별화'가 핵심이라 생각하는데, 그런 내용과 맞물려서 자신들이 생활하는 공간에서 군사주의가 혹은 남성성이 어떤 식으로 발현이 되고 또한 거꾸로 나는 혹은 우리는 그것을 극복하기 위해서 이런 노력을 해 봤다 등의 이야기를 해 보는 것은 어떨까요? 개인의 경험에 따라서 학생운동을 해 봤던 사람들은 공감하는 부분도 많은 것 같고요.

권인숙 : 요즘 학생운동도 거의 똑같지 않나요?

임재성 : 최근 학생운동을 보면 예전에 비해서 많은 변화가 있는 거 같은데요.

권인숙 : 학교마다 달라요. 소위 말하는 마이너 학교로 가면 학생운동이 아닌 동아리 문화에서도 학년별 위계질서가 여전히 존재하고 여자아이들은 더 심하게 여성화되어 있습니다. 유아적 말투 등은 더 심해져 있는 경우도 많이 있고, 남자 선배들의 권력은 우리 때보다 훨씬 더 강화된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나동혁 : 저는 제 학교만 봐서 그럴지는 몰라도, 외피 상으로는 여성 활동가의 숫자는 계속 늘고 있거든요. 오히려 남성 활동가들보다 더 많아요.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 넘어보면서 계속 늘어갔는데 제 나름의 분석은 남성들이 더 이상 운동에 매력을 찾지 못하는 게 한 요인이 아닐까 해요. 옛날에는 계급이나 민족, 국가 등 대결구조를 크게 잡기 때문에 권력욕이 발현이 되자나요. 그런데 지금 학생운동 하는 친구들은 예전에 비해 권력에 대한 거부감이 크고 미시적인 문제 등에 관심을 많이 갖고 있어요. 게다가 학생운동 자체가 학생사회에서 소수자의 위치가 되었고요.

권인숙 : 그것도 맞는 분석인거 같아요. 권위적인 문화에 대해서 이야기를 계속 하자면 학교와 지역마다 차이가 존재하고 있어요. 지방대는 말도 못하고 단과대의 특성으로 보면 음대는 굉장해서 체대보다 더한 경우도 있어요. 재미있는 것은 이제는 여성에게 남성화될 것을 강요하는 공간은 학생운동 외에는 별로 없는 것 같아요. 대부분의 나머지 공간에서는 여성에게 더욱 여성화되고 더욱 유아적으로 되기를 원하고 그래야 사랑받는 존재가 되는, 나윤경 선생님이 '오빠 문화'로 분석하셨던 것처럼 그런 문화가 더 힘을 발휘하고 있죠. 우리 때는 여대생이 된다는 지식인적 자의식이라든가 그런 것들이 있었는데 요즘은 80%가 대학생이 된다는 현실이기에 그런 자의식도 불가능한 현실입니다.

우리 사회의 두 트라우마. 성폭력과 군대경험

임태훈_ 인권운동가, 양심적 병역거부자
ⓒ 임재성

임태훈 : 작년에 제가 군대내 인권문제에 대한 연구 발표를 할 때 이런 제안이 나왔습니다. 군사주의적 문화가 대학이나 사회적으로 유입되는 것을 줄여야 한다는 고민에서 예비역들의 학교 같은 것들을 마련해서 군대에서 안 좋았던 상황들이나 경험들을 털어놓고 그것들에 대한 재인식과 평가하는 자리를 만들자는 것이었습니다.

권인숙 : 저도 그런 부분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브레인 워시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는데 복학생들이 자신들을 그런 대상으로 보는 것에 대해서 큰 거부감을 가지고 있을 것 같아요. 또한 본인들은 스스로가 학교생활에 적응하기 위해서 조금 어려운 점이 있을지 몰라도 자신의 존재가 무언가 뽑아내고 새롭게 정리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군대 갔다 오면서 군대 경험에 대한 미화욕구도 강하고요. 하지만 제가 확인해본 것으로는 군사주의 문화도 문화지만 트라우마의 측면에서도 무언가 프로그램이 필요하다는 생각은 합니다.

제가 '여성과 심리'라는 수업을 하는데 호흡이 잘 맞었던 클래스가 있어서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서 써서 내보라고 했어요. 그런데 여자 아이들은 3분의 1 이상이 성폭력 관한 부분이에요. 성폭력을 당한 애들은 잘 이야기를 안 하고 성폭력을 당할 뻔했던 아이들이 그 정도였어요. 특히 어린 시절 성폭력을 당할 뻔했던 기억들을 여자아이들은 너무 많이 가지고 있어요. 그러니까 성폭력 발생률이 엄청난 거 같아요. 특히 아동 성폭력 비율이 말이죠. 그런데 남학생들은 자신의 트라우마가 거의 다 군대이야기였어요. 우리 사회에서 두 트라우마가 그렇게 형성이 되는 것 같아요. 여자는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에 바탕을 둔 피해의식, 의존심 등이 형성되는 것 같고 남자들은 거의 군대경험의 고통에 바탕을 둔 기억들이 여성의 그것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어요. 하지만 남자 학생들이 거의가 그 경험을 트라우마라고 보지 않죠. 한 학기 정도 수업을 들어야만 겨우 마음을 여죠.

병역거부운동 내의 성별분업

육구 : 책에서 김상인씨의 사례를 읽으면서, 김상인씨가 남학생 팬티를 빨아주는 행위는 모르겠지만, 차를 대접하는 행위 등을 보면서는 '김상인씨의 돌봐주는 행위가 나쁜 것인가?'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돌봐주는 문화가 반 페미니즘적인 행위인가 하는 생각 말이죠. 여성공동체 안에서는 서로서로 차를 타주는 문화가 있거든요.

권인숙 : 돌봐주는 문화가 나쁘다는 것은 아니고, 성별화되는 문화가 문제인 것이죠. 남자들은 안타니까요. 누군가를 돌봐주어야 하는 마음을 갖고 그것을 실천하는 사람들은 대개 여성입니다. 컵 깨기 행사가 그거였습니다. 남자들은 컵을 씻어야 할 부담을 전혀 안 느끼고 여자들만 일방적으로 컵 씻는 일이 반복되니까 이것이 그냥 도움의 행위가 아니라 성차별적인 상황이 되는 겁니다. 함께 운동했던 남성 활동가들의 팬티까지 여성이 빨았던 것은 이 친구의 오지랖이 분명히 있었겠지만 그것이 쌓여 있었을 때 남자들은 그것이 별 문제가 안 되는데 이 친구는 부담감을 느껴서 자기가 빨았던 것이죠. 돌봐주는 사람으로서 여성적 모습을 보여주는 게 동지적 애정을 가지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신의 가치를 보여주는 전략이었던 것 같아요.

사실 제가 노동운동하고 그럴 때 여성운동에 대해서 콧방귀 뀌는 여성들이 누리는 이득이 굉장히 많았어요. 육체적으로는 조금 더 돌봄 노동을 해야 하기 때문에 힘들지는 몰라도 인격적으로 굉장히 우수해 보이고 개인주의화 되어 있지 않아 보였거든요. 특히 저 같은 여자들이 있음으로 해서 대조적으로 그 친구들이 훨씬 더 유리하게 운동가적 자질을 인정받고 확인시켜 나갔죠.

나동혁 : 이 책에서 제기된 의도를 보면 같이 운동을 하는데 남성들은 운동을 하는데 너무나도 쉬운 거잖아요. 자기가 살아왔던 대로 살면 그냥 다 인정되고 그것이 곧 조직의 가치가 되죠. 하지만 여성들은 다르죠. 조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 강요된 문화에 적응을 해야 하는데 그 문화라는 게 모성을 제외한 여성성이란 대부분 부정되며 열등한 것으로 취급되는 모습이죠. 저도 그런 것을 많이 경험했습니다. 합숙세미나를 가서도 설거지나 밥은 돌아가면서 하지만 자잘한 것들을 남자들은 빈둥빈둥하고, 보다가 갑갑하면 여자들이 치우게 마련이죠. 책에서 감정노동이란 부분이 나오잖아요. 안치우고 있으면 왠지 내가 치워야 할 것 같고. 그게 어떤 종류의 것인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아이러니하지만 감옥에서 그것을 느꼈어요. 왜냐면 남자들만 있으니까 남자들이 여성들이 하던 역할을 다 해야 하는 거잖아요. 여기에 더해서 느낀 것이 몇 가지 있는데, 첫째는 남자들이 여성들이 하던 역할들을 못한다는 것은 거짓말이라는 거죠. 설거지 청소 요리 등 다 잘해요. 근데도 그것이 발현되는 형태는 위계질서적인 형태로 확인되었어요. 방에 들어온 순번대로 권력이 쌓이고 일상적인 일들에서 모두 권력을 확인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지요.

병역거부운동 내부에서도 감정노동은 여성활동가들에게 집중된다는 것을 지적하는 최정민 활동가
ⓒ 임재성

최정민 : 감정노동에 대한 이야기를 저희 운동 내부로 돌려보면 병역거부자 여자친구들이 병역거부자 후원회 회장을 하고, 병역거부자들의 감옥수발을 해주는 것에 대해서 문제제기가 있어요. 물론 좋다는데 어떻게? 라는 의견도 있지요. 저희처럼 현장에서 그 문제를 부딪치게 되면 이것을 어떻게 이야기를 꺼내서 풀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이 많아요. 머릿속에서는 그러한 구도가 남녀의 성별분업을 조장하는 것이라는 뻔히 알고, 또 자기가 병역거부하는 신념의 바탕을 여성주의에 두고 있으면서도 여자친구에게 감옥수발을 시키는 것을 이해를 못하면서도 비판적인 얘기를 해야 할 때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는 모르겠어요.

임재성 : 제가 수감되어 있을 때, 같이 활동했었던 여성 활동가 중 한 명이 편지로 그런 말을 많이 했어요. 친해서 그랬겠지만 꼴 보기 싫다고 말이죠. 여자친구에게 후원활동 맡겨놓고 들어간 제 모습이 보기 싫다고 말이에요. 저도 수감 전에 고민이 있었지만 제일 편하고 신뢰했기에 여자친구에서 부탁을 했던 거죠. 분명 잘못된 지점이지요. 대부분의 병역거부자들이 누군가에게 자신을 밖에서 도와줄 사람을 만들고 감옥에 들어가는데 여자친구 있으면 거의 다 여자친구가 책임을 져요. 병역거부 운동이 래디컬하게 많은 것들에 대한 급진적 반대를 하는 것 같지만 일상에서는 여전히 고정된 성분업, 성역할이 존재하죠. 병역거부자가 남성일 수밖에 없으니까 자연스럽게 신념을 지킨 이도, 감옥에 가는 이도 남성이게 되고 병역거부자들 중심으로 운동의 구심이 만들어지게 되는데 이 속에서 여성 활동가나 수감된 병역거부자들을 후원하는 그의 여자친구의 역할이 정해지게 된다는 것이죠.

성찰권력이라는 권력을 극복하기

최정민 : 여자친구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는 것을 보면 이해가 안가지만 어찌되었건 간에 감옥에 들어가야 하는 사회적 상황이 너무 안타깝기에 개입할 부분이 더욱 적어요. 하지만 여자친구도 사회인이고, 활동하는 사람인데 그들의 역할 자체가 운동의 상징으로 여겨지는 남자친구의 요구를 들어주는 역할에 한정된다는 것에 가슴이 아프고, 또 한편으론 너무나 기꺼이 그 역할을 자처한다는 것이 더 슬프고요.

권인숙 : 우리 여성들이 훈련되어 있는 것이죠.

최정민 : 예, 그래서 그것을 이야기하기 굉장히 힘들다는 것이죠. 과거에 몇 명 안될 때는 덜해 보였는데, 그게 시간이 지나고 병역거부자들이 늘어나면서 문제가 확실히 생겼어요. 사적인 관계라고 생각했기에 지금까지는 아무 말도 못한 부분이 있지만, 그것이 과연 사적인 것이냐 라는 것에서부터 문제제기가 되어야할 것 같아요.

권인숙 : 병역거부운동에서 검토해야 할 맥락이 분명히 있죠.

▲ 박강성수 북한대학원 석사과정
ⓒ 임재성

박강성주 : 제가 서평에서 그런 것을 성찰을 통해서 얻어지는 성찰권력이란 표현을 쓰는데, 사실 저에 대한 이야기를 쓰고 싶어서 그런 말을 썼습니다. 저와 같은 경우에도 예비군훈련을 거부하고, 부모성 함께 쓰기 등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제가 의도하든 의도하지 않았든 다른 사람들이 저를 깨어 있는 사람이라고 바라보거든요. 그런데 그것이 한편으로는 권력이 되는 거예요. 조심스럽지만 '성찰권력'이란 개념을 이 상황에 적용시켜 보면 일단 병역거부자들이 기존의 사회에 대해서 도전을 하는 상황이 있고 도덕적 우월감 등에 압도가 되다보니까, 애인이 뒷바라지하는 그런 관계를 보지 못하는 것이죠. 즉 성찰권력에 압도가 되는 것이죠. 그렇기에 이러한 부분들을 성찰할 수 있을 때까지 밀고 나가야 하는데 무척 어려운 부분인 것 같아요. 항상 긴장하면서 스스로를 돌아보지 않으면 말이에요.

권인숙 : 운동하던 사람들이 일종의 피해의식과 영웅의식이 결합 되어 있잖아요. 내가 내 조건을 박탈당했다는 피해의식이 있고, 큰 단위를 위해서 희생했다는 영웅의식 역시 함께 존재하죠. 저희 때도 보면 다른 쪽에서 우리만큼 희생하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 일방적으로 요구할 수 있다고 생각했고, 일반적으로 살아가는 소시민에 대해서는 냉정했어요. 보상의식이 굉장히 많았던 것 같아요. 그런 보상의식, 피해의식, 영웅의식 이런 것들이 활동하는 과정에서도 그렇고 자신을 점검하는데도 이롭지 못한 면이 많은 것 같아요. 살아가는 하나의 방식으로 선택했고, 그 선택에 따라서 행동한 수준에서 끝내야 하는데, 대인관계에서 그런 것들에 대한 보상욕구들이 드러나니까 문제가 생기죠. 우리 때는 굉장히 심했죠.

남녀가 다른 것은 여자들은 그것에 대한 보상욕구가 남자들에게 안 나타나요. 남자들은 여성들에게 보상의식을 받고자 하는 게 강하죠. 남자들은 뒷바라지해줄 수 있는 여자를 고르잖아요. 여자들은 자기 동지를 골라서 결국에는 자신이 뒷바라지 하는 사람이 되어버리곤 하죠. 아까 성찰권력이라 했는데 그런 상태에 몰입했을 때 쉽게 빠지는 감정의 함정이란 게 있고, 남녀 간의 관계 속에서 남성들이 여성 속에서 확인받으려고 하는 욕구의 문제, 여성들이 끊임없이 뒷바라지 했던 역사의 문제 등이 얽혀있는 거죠.

저항폭력을 넘어 비폭력저항을 말하기 위해서

임재성 : 책에서 80년대 학생운동이 군사화 되어 있는데, 그 한 양태로 폭력시위 속에서 군사화가 이루어지고 또한 폭력의 정당화가 이루어진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그 속에서의 성별분업이 강화되는 점 역시 지적하셨는데요. 그렇다면 폭력시위라는 양태 속에서 정당한 폭력이란 개념과 군사주의가 확산된다면 그러한 시위방식을 극복하는 것이 평화운동의 유용한 목표가 될 수 있을까요?

권인숙 : 구체적으로 말하면요?

임재성 : 쉽게 말하면 평화시위를 주장하는 것이지요. 물론 정권에서 말하는 준법시위가 아닌 비폭력직접행동의 모습이겠만 말이에요. 언론매체들이 왜곡해서 대서특필하는 시위대의 폭력에 대해서 평화운동가들이 어떤 관점을 취해야 하는지 고민스러운 부분들이 있어요. 저항폭력들을 역시 그 안에서 주체들을 군사화 시킨다면 반대의 목소리를 내야 하겠지만 사회적 약자가 행하는 폭력에 대한 비판은 너무 민감한 문제니까요. 그 맥락을 면밀하게 살피기도 해야 하고요.

권인숙 : 그래도 폭력시위에 대한 비판을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임재성 : 그러나 만약 그러한 주장을 한다면 돌아오는 반응은 저희의 목표와는 전혀 다른 쪽이 되겠지요. 선생님 책에서도 나온 것처럼 '평화'라는 단어의 느낌이, 특히 투쟁의 방식으로 '평화'가 언급되었을 때 포기나 기권, 투항 등을 연상하니까요.

나동혁 : 그 부분과 관련해서는 민감해요. 병역거부운동 내에서도 비폭력에 대해서 완전한 합의가 되지는 않아요. '폭력을 절대 쓰지 말자'까지가 제가 고민하는 비폭력의 원칙이에요. 하지만 간디나 마틴 루터 킹을 읽으면서 불편한 것이 폭력을 쓰지는 않지만 폭력에 맞서는 방식이 굉장히 거칠잖아요. 때리면 맞아죽자는 것인데, 이것 자체도 엄청난 결의와 폭력에 대한 공포를 극복해야 하는 것이죠. 그렇기에 비폭력을 말할 때 두 극단을 생각하는 것 같아요. 하나는 비겁한 사람들, 물리력이 무서워서 도망가는 사람들. 그게 아니라면 비폭력활동가들, 즉 폭력을 극복하기 위해서 굉장한 용기를 기르려 하죠. 때리면 맞는 그러한 저항. 그런데 이런 식으로 비폭력에 대해서 극단적인 접근을 하면 구체적으로 투쟁에서 뭘 하자 하는 문제가 나오면 결국엔 전술적인 문제로 가죠. 그러면 사실 상상력이 빈곤하죠.

권인숙 : 난 사실 그러한 시위효과에 대해서 잘 모르겠어요. 방송사나 신문사는 자기네 입맛에 맞으면 그것은 폭력성이든 비폭력성이든 다루자나요. 폭력을 써야 더 효과적으로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고 봐요. 효과라는 것은 조직 동원세를 확인하는 것과 외부적으로 알리는 것이었잖아요. 시위의 방법이 가지고 있는 효과라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했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들어요. 팔십 년대에 우리가 화염병을 안 던지고 다른 방식으로 했다면, 유월항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인가? 이런 것은 나는 원인과 결과로써 맥락이 잘 안 이어지는 것 같아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라는 영화를 최근에 봤는데, 내내 이러한 생각이 계속 저를 압도했어요. 결국 반식민지 투쟁이 북아일랜드 안에서 내전으로 전화되는데 악순환의 고리잖아요. 계속해서 유혈투쟁의 명분을 쌓여나가고, 그 명분하에 충돌이 계속되고. 시민전쟁을 겪고 났던 나라들에서 그 갈등의 고리를 빠져나가는 문제는 식민지 하의 상황보다도 무섭고 어려운 경우가 많거든요. 한 사회에서 사람들의 삶의 질이라는 것들을 결정하는 데 있어서, 시민전쟁으로까지 몰고 가는 게 더 나은지 아니면 식민화 상태에서의 역사적 조류 속에서 다른 방식으로 저항을 할 것인지는 진지하게 고려해 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는 시민전쟁, 즉 무력충돌에 의한 갈등해소의 부정적 효과가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지배적인 것 같아요. 특히 여성의 입장에서는 광주시민전쟁의 군사화가 우리시대 80년대 운동에 미쳤던 영향, 상처, 그때 죽었던 사람으로 시작을 해서 시민전쟁이 가지고 있는 영웅성이 위험하다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물론 이런 저항문화에서 폭력성의 효과는, 특히 시민전쟁은 정말 크죠. 그렇지만 그 구성원들의 질을 생각하면 잘 모르겠어요. 그게 더 나은 거다. 그래서 그런 희생을 치르는 거다. 시민전쟁이 명분을 얻어내기 위해서 굉장히 많은 삶의 갈등고리와 원천적인 분노를 심어내는 과정들이 굉장히 위험한 역사적 선택인 것 같아요. 식민화의 어려움이 사실은 과연 어디서 왔는가를 따져본다면 무력적인 대응 때문에 만들어낸 분노가 식민화의 어려움을 가져왔을 수도 있어요. 함부로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니지만. 저항에서 폭력시위에 대해서는 긍정하지 못해요. 누군가가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식상한 수준의 반복성이 있고, 그 관성적인 부분을 비판하지 않는 것은 아닌 것 같아요.

임재성 : 출소했을 때 평택투쟁이 한참이었어요. 어느 술자리에서 누군가가 냉소적으로 물어보더라고요. 개미 한 마리 못죽이는 병역거부자들이 평택에서도 비폭력 외칠 거냐, 오월광주 마지막 도청에 총 안 들었겠느냐. 이 활동가가 병역거부나 비폭력에 대한 왜곡된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그런 질문을 했지만, 방금 권인숙 선생님도 이야기하셨지만 이 부분은 참 민감해요. 특히 광주에 대한... 광주의 시민군도 부정할 것이냐. 전쟁을 멈추는 가장 좋은 방법은 전쟁이다. 특히 한국의 운동에서 항일 무장투쟁에 그 역사적 근원을 두는 그룹이 많기 때문에 더욱 그런 거 같아요.

권인숙 : 엄청나게 미화되죠. 그런데 무력투쟁은 그 나라에선 멋있고, 남의나라에서는 테러가 되죠. 그 사회에선 가장 영웅이 되며 가장 적극적이고 찬양받게 되죠. 우리도 그러잖아요. 특정 전투를 기억하고, 그 전투에서 적 몇 명이 얼마나 죽었는지 기억하고. 그러한 방식이 가장 효과적이고 적극적인 해결방식 같아 보이지만 전 아니라고 봐요. 물론 저는 기본적으로 저항에 대해서는 좋아하지만 그것과 폭력, 무장화는 다른 맥락인 것 같아요. 실질적으로 무기를 들지 않으면, 폭력투쟁이 아무 의미가 없는 게 대부분이에요. 그런데 무기를 들기 시작하면 그 갈등은 본질을 벗어나서 결코 해결될 수 없게 되죠. 내 동지 죽으면 싸워야 하고, 상대 쪽도 자신의 동지가 죽으면 싸워야 하고. 그 악순환 속에서 명분과 결의로 계속 싸워야 하기 때문에 어떤 해결도 불가능하죠.

▲ 권인숙 교수와 '행복한 책읽기'에 함께한 이들이 함께 기념촬영
ⓒ 임재성

나동혁 : 예정되었던 시간보다 훨씬 오래 이야기를 나눴던 모임이었습니다. '대한민국은 군대다'라는 책을 바탕으로 해서 평화운동의 현재적 과제들에 대한 풍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던 시간이었습니다. 오랜 시간 좋은 말씀해 주신 권인숙 선생님께 감사의 말씀을 모두를 대신해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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