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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들이 낸 '여성의 전화' 후원회비 영수증
아들이 낸 '여성의 전화' 후원회비 영수증 ⓒ 조명자
얼마 전 우리 집에 군대 간 아들 앞으로 우편물 한 통이 배달되었다. 편지 받아 볼 주인공이 없어 보낸 이를 확인하려고 봉투를 슬쩍 쳐다봤더니 희한하게도 '여성의 전화'에서 보낸 우편물이었다. 여성의 전화하고 우리 아들은 도통 상관이 없는 사인데 무슨 일일까?

너무 황당한 일이라 선 채로 봉투를 뜯어봤다. 그런데 세상에, 그 속엔 회원들에게 보내는 안내문과 함께 1년치 후원회비 6만5천원짜리 영수증이 들어 있는 것이었다. 내 아들이 여성의 전화 후원자? 갑자기 웃음이 터졌다.

우리 아들놈은 스포츠나 게임 빼고는 어느 분야도 관심이 없는 녀석이다. 신문이나 뉴스도 정치, 사회면은 다른 사람 소관이고, 대학 진학 후에도 축구 동아리 외의 단체는 모르쇠로 일관했던 놈이다.

@BRI@총학생회 회장단 선거 소식을 물어도 "몰라요"로 대답해서 우리 집안에 어떻게 저런 별종이 나왔나 한심했을 정도인데 '여성의 전화' 후원자라니 놀라 자빠질 일 아닌가.

강원도 전방에서 눈 치우느라 정신이 없는 졸병한테 이게 무슨 편지냐고 득달같이 전화할 수도 없고…. 궁금했지만 사연은 뒤로 미루고 속으로 흐뭇한 웃음만 지었다.

어떤 동기에서인진 모르지만 그 빠듯한 용돈에서 6만5천원이라는 거금을 쾌척했다면 우리 아들 심경에 아주 커다란 변화가 찾아온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하여튼 일단 안심이 됐다. '여성의 전화'가 어디인가. 여성의 인권, 특히 매 맞는 여성을 적극 보호하는 단체가 여성의 전화 아니던가. 이런 단체에 후원을 할 정도면 적어도 이 다음에 제 아내에게 손찌검할 위험부담은 그만큼 덜어졌다고 치부해도 무리는 아니란 생각마저 들었다.

나도 아들 있는 엄마라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자식이 맞고 들어와도 속상하고, 때리고 들어와도 속상한 것이 자식 키우는 부모 마음이다. 예전엔 차라리 때리고 들어오면 들어왔지 맞고 들어온 꼴은 더 못 참겠다는 것이 엄마들 마음이었는데, 요즘 같아서는 함부로 사람을 쳤다간 제 신세를 망치기 딱 알맞을 정도로 폭력에 대한 경계심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게 대두한 것 같다.

얼마 전 무지막지하게 얻어터진 어느 여자 연기자의 사진이 공개돼 모든 사람이 충격을 받은 적도 있지만 폭력, 그중에서도 '가정폭력' 문제는 보통 심각한 일이 아니다. 친구들하고 어울리다 발생하는 사소한 주먹다짐 정도는 젊은 혈기에 그랬노라고 애교로 봐 줄 수도 있지만, 폭력도 습관이다보니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것은 초장에 버릇을 잡지 않으면 큰일이 날 일이다.

'세 살 버릇이 여든까지 간다'고 아들 있는 집의 부모들은 절대 주먹질은 안 된다는 주문을 아이에게 어려서부터 귀에 못이 박이도록 읊어대지 않으면 안 되게 생겼다. 요새는 매 맞는 남편들도 심심찮게 있다고 하지만, 가정폭력 중에서도 가장 빈번한 부부간의 폭력에선 가해자가 대부분 남자들이기 때문이다.

하여튼 나도 아들 있는 엄마라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든다. 더구나 우리 아들은 몸으로 하는 것은 종류 불문하고 다 잘하는 아이라 말보다는 몸이 더 빠른 아이다.

혹시 이담에 장가가서 부부싸움이라도 하다가 주먹이 먼저 나가면 어쩌나? 제 아내가 먼저 싸움을 걸어 울화통을 터뜨렸어도 끝까지 말로만 해결해야 하는데 그놈에게 그런 인내심이 있을까?

하긴 앞질러 걱정을 끼고 사는 나도 예전에 우리 아들이 반 친구들과 패싸움을 해 이겼다는 소리를 들었을 때 얼마나 든든하고 기특했는지 모른다. 우리 아들 초등학교 때, 반에서 3번을 못 벗어난 내 아들이 친구들에게 얕잡아 보여 괴롭힘이라도 당하면 어쩌나 하는 것이 큰 걱정이었기 때문이다.

오기 창창한 아들놈 성격에 누구한테 모욕이라도 당한다면?

그 땅꼬마가 초등학교 4학년 때 낯설고 물 선 광주 땅으로 전학을 했다. 어느 날 불쑥 만나게 된 반 친구들. 공부도 남이고 키까지 작은 전학생이 무슨 재주로 새 친구들과 쉽게 친해질 수 있겠는가. 초등학교 고학년쯤 된 남자아이들의 힘자랑은 부모와 선생님까지 모두 힘겨워하는 부분, 당연히 걱정이 태산이었다.

학교생활 괜찮으냐고 몇 번이나 아들에게 물었지만 그때마다 아들은 아무렇지 않게 문제없다고 대답하며 한 술 더 떠 "만약 나한테 까부는 놈이 있으면 가만 안 놔둘 거예요"라고 큰소리까지 치는 것이었다.

그러나 걱정과 달리 축구를 워낙 잘한 덕인지, 아들은 친구도 많이 사귀고 학교생활도 아주 재미있게 하면서 무사히 졸업까지 갔다. 중학교 1학년 때였을까? 제가 친구들에게 얼마나 인기가 좋았는지 자화자찬을 한참 늘어놓다가 무용담을 꺼내드는 것이었다.

"엄마, 내가 전학 온 다음다음 날인가 몇 놈이 나를 보자는 거예요. 그래서 근처 중학교 운동장으로 갔는데 세 놈이 같이 와 나를 때리려는 거야."

"뭐 그랬어? 그래서 많이 맞았어?"

"에이∼ 엄마는…. 내가 어디 맞을 놈으로 보여요? 1대 3으로 붙어 세 놈을 죽사발 냈지. 그 다음부터 감히 나를 건드리는 새끼들이 없었다니까."


아들 말을 듣고 차마 그 앞에서 잘했다는 말은 못했지만 나도 모르게 입이 헤벌쭉 벌어졌다. 적어도 저놈이 밖에 나가 남한테 얕잡아 보이지는 않겠구나 하는 안도감에서 무진장 마음이 오지던데 지금은 또 그런 면 때문에 걱정이 앞서기도 한다.

오기 창창한 아들놈 성격에 누구한테 모욕이라도 당한다면 과연 그 분기를 잘 다스릴 수 있을까? '여성의 전화' 후원자인 우리 아들. 이제 그런 쓸데없는 걱정은 놓아버려도 되겠다. 아무렴. 피같이 아까운 용돈 쪼개 후원회비 내는 녀석이 나약한 여자에게 함부로 주먹 휘두르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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