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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가 감기에 걸렸다. 내가 그랬다. 다정스럽게….

"어여 어여 병원 가~"

그 말까지만 했으면 참 좋았으련만… 그 다음 내가 한 말!

"그러다 애들에게 감기 옮기면 어떡해?"

흐르는 콧물 닦아내기 귀찮은지 휴지를 돌돌 말아 콧물 생산의 원천지인 콧구멍을 아예 봉쇄하고 있던 아내, 큰 눈을 새우 눈으로 만들곤 "그렇게만 해 봐 어디!"하면서 가뜩이나 추운 거실에 찬바람을 쌔앵~ 일으키더니, 자기만 따뜻한 방 안으로 들어가 문을 탁 잠가 버린다.

대략 난감! '아니, 해석을 꼭 저리하시나? 자기도 빨리 가서 나으라는 소리고, 또 어른이야 아파도 좀 견딜 수 있지만 애들은 아프면 어린 것이 불쌍하니 옮기기 전에 가라는 말이거늘 어찌 저리 낭군의 마음을 곡해한단 말인가?'

혼자서 중얼중얼, 투덜투덜 하고 있는데 녀석들이 배가 고프다고 엄마를 부른다. 잘 닫히지 않는 안방 문 틈 사이로 코 맹맹 아내 목소리가 들리니, "엄마 감기 걸려서 엄마가 밥 하고 반찬 하면 너희들에게 옮겨서 안 돼. 그러니까 아빠에게 해 달라고 해." 엄마 말 들은 녀석들이 하는 말 "아빠가 하래!"

▲ 괜히 말 한 마디 실수하는 바람에, 우리 집에 아내가 품은 서리가 내리고 있다.-_- 덕분에 밥 하고 청소하고 설거지하고, 애들하고 놀고...에궁, 정신이 없다.
ⓒ 장희용
병원 안 가는 첫 번째 이유 : 나에 대한 복수와 편한 생활 오래 누리기 위해

에궁, 말 한마디 실수했다가 청소도 내가 다 하고, 애들 먹이고 씻기고 재우고 놀아주는 거 나 혼자 다 하고 있다. 아내는 애들에게 감기 옮긴다는 내 말을 아주 자주 인용하면서 모든 일을 나에게 떠맡기고는 편한 생활을 만끽하고 있다.

할 수 없이, 청기 대신 백기 들고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빨리 병원가라고 했다. 지금이 좋다며 안 간단다. 오늘 아침에는 머리 감더니 반팔 차림으로 음식쓰레기 버리고 오더라.

'아예 병을 키우려고 작정을 했구만 작정을 했어!'

그날 저녁에는 아이들이 동화책을 산더미처럼 들고 와서는 다아~ 읽어달라고 하기에, 아내에게 반성과 함께 도움을 청하는 눈빛을 보냈더니, 뭐 자기도 양심에 조금 찔리던지 절반 뚝 떼어서 동화책을 가져간다.

뭐가 어쩌구 저쩌구 하면서 동화책을 읽어주는데 우리 딸이 하는 말이 있었느니….

"엄마 목소리 예쁘다!"
"그치? 엄마 목소리 예쁘지! 꼭 성우 같지^^"
"성우가 뭐야?"

"목소리 멋지고 예쁜 사람들을 성우라고 그래."
"응! 엄마 성우 같아."

'성우는 무슨 성우? 성우가 울고 가겠다.'(이건 내가 속으로 한 말)

아내는 목소리 예쁘다는 말에 열심히 책 읽는다. 근데, 코맹맹이 목소리로 동화책 읽는 데 웃겨 죽는 줄 알았다. 동화책은 등장한 주인공을 실감나게 하기 위해 제각각 목소리를 달리해야 아이들이 흥미를 느끼는데, 코맹맹이 소리로 각각 주인공 목소리를 내니 왜 이렇게 웃기던지.

▲ 일단 어제 병원에 갔다 오기는 했는데... 다 나을 때까지는 아내의 심통이 계속될 것 같습니다.
ⓒ 장희용
병원 안 가는 두 번째 이유- 감기 걸린 자기 목소리가 예쁘다나 뭐래나!

내가 막 웃으니까 읽는 자기도 멋쩍은지 따라 웃는다. 순간, 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틈타 "내일 병원 가지?" 했더니 화해무드 사라지고 다시 냉정 무드로 돌아서니, "안가! 이렇게 오래 오래 아플 겨"한다. 으이그 저 심통!

동화책 다 읽고나자 녀석들이 말한다.

"엄마! 내일도 예쁜 목소리로 엄마가 읽어줘?"
"당근이지! 어때 내가 자기한테 감기 옮겨줄까? 멋진 목소리 갖게?"
"됐네요. 아, 진짜 병원 안 가? 빨리 병원이나 가~"

"왜? 좋구만. 안가! 난 지금처럼 예쁜 목소리로 살 거야. 그나저나 진짜로 내 목소리 예쁘지 않아?"
"어이구, 나이가 몇 꼭지인데… 철딱서니 없기는 쯧쯧!"

아무튼 아내는 여전히 병원에 안 갈 태세다. 쩝! 언제까지 이 생활 계속해야 하나? 근데, 감기라며 왜 열도 안 나고, 기침도 안 하고, 목소리만 저러는 거지? 저런 감기도 있나? 별로 아픈 것 같지도 않던데… 혹시 꾀병 아냐?

덧붙이는 글 | 지난 7일~10일까지 있었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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