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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주의 한 폐교에서 열린 영상체험캠프 현장.
ⓒ 나영준
"감독님, 여기서 제가 먼저 지나가는 게 어때요?"
"아, 맞다.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

지난 9일. 며칠 전 내린 눈이 운동장은 물론 나뭇가지 사이마다 소복이 쌓여있는 시골 초등학교 한구석. 이제 막 5학년에 올라간다는 아이들이 제법 진지한 얼굴로 무언가를 의논 중이다.

▲ 촬영 카메라를 설치하고... 목과 머리의 스커프는 아이들이 직접 천연염료로 물들인 것이다.
ⓒ 나영준
가까이 다가가 보니 삼각대 위에 놓인 비디오카메라를 둘러싼 채 제법 심각한 표정들이다. 종이를 말아 쥔 아이, 팔짱을 낀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이 등 여남은 명이 모여 각자의 생각을 나누고 있었다.

이곳은 경기도 파주에 위치한 이시소(이시대의 좋은 소리) 자연문화체험학교다. 폐교인 영장초등학교를 꾸민 아늑한 쉼터다. 8일부터 10일까지 일정으로 방학을 맞은 초·중등생 백여 명이 조를 편성, 이곳저곳에서 자신들만의 영상을 담아내고 있다.

아이들 스스로 만들어가는 <시네마천국>의 현장

▲ 이후 선생님과 촬영 분을 확인하는 아이들.
ⓒ 나영준
이번 프로그램은 겨울방학을 맞이한 청소년들에게 2박 3일 동안 영상·영화 교육을 통해 직접 영화를 배우고 만들어 보는 체험 캠프이다. 첫날 영화이론 강의를 받은 후, 밤사이 자신들만의 시나리오를 작성한 아이들이 역할 분담을 통해 한편의 영화를 만들어 나간다.

교실 그리고 운동장에서 아이들은 자유롭게 자신들이 담고 싶은 이야기를 만들어 가고 있었다. 그런데 극의 주 내용이 이른바 '왕따'에 관한 것이 많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고 하더니, 그건 아이들의 경우에도 어찌할 수 없는 듯했다.

"나… 왕따 당하나 봐. 너무 슬퍼."
"괜찮아. 우리가 있잖아. 너를 지켜줄게."

이 날의 도우미로는 계원예대 영상디자인학과 학생들이 나섰다. 제법 그럴싸한 아이들의 연기를 지켜보던 김경원(25)씨는 "시나리오부터 촬영까지 아이들이 서로 토론해서 만들어 나가기에 가르쳐 줄 것은 정말 없습니다. 순수하게 아이들의 힘이죠"라며 기특하다는 듯 웃음 짓는다.

이후 교실에 모인 아이들은 각자가 찍은 필름에서 OK컷을 골라내고 가편집과 상영회를 가졌다. 서로의 모습이 어색한 듯 킥킥대기도 하지만 열정만큼은 프로 영화인들의 그것에 못지 않다.

"상대적 소외계층에게 기회가 돌아갔으면…"

▲ 감독과 시나리오를 맡은 홍릉초등학교 임해나, 이예린양. 아직까지의 꿈은 '가수'라고.
ⓒ 나영준
지난 2001년 개원한 문화체험학교의 운영을 맡고 있는 김옥조 이화여대 도예과 교수는 "재작년부터 행사를 가졌는데 아이들의 반응들이 너무 진지해 매번 깜짝 놀라곤 한다"고 전했다.

김 교수는 평소 사비를 털어 독거노인, 장애인, 미혼모, 결식청소년 등 사회적으로 취약계층이나 소외계층을 대상으로 공예체험 등의 문화 사업을 펼쳐왔다. 때문에 이번 행사에 약간의 아쉬움은 남는다고 털어놓는다.

"서울 보다는 문화적 혜택이 고루 돌아가지 않는 지역의 아이들이 많이 참가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었지요. 문화의 냄새라도 맡았으면 했는데… 그런데 어떻게들 아셨는지 서울 쪽에서 연락이 많이 오더군요. 사정들 하시는데 안 된다고 할 수도 없고. 좀 더 골고루 기회가 돌아 가도록 노력 해야겠죠."

<미래를 준비하는 감성여행>이라는 테마로 구성 된 이번 행사는 방학 중 2번이 실시된다. 아직 1월 22~24일의 기회가 남아 있으며, 국가청소년위원회의 지원을 받기에 참가비는 일체 없다. 영화 뿐 아니라 도자기·염색 공예 등의 시간도 마련돼 있어 종합적인 문화체험의 기회이기도 하다.

따스한 눈길로 아이들을 돌아보던 김 교수는 "비록 학교는 폐교지만 언제나 문은 활짝 열어 두었으니, 부디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이곳에서 미래의 좋은 꿈을 꾸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해왔다. 창밖으론 식사를 마친 아이들이 그새 눈싸움 삼매경에 여념이 없었다.

▲ 상대적으로 찬 날씨에 눈이 녹지 않아 좋은 놀이터가 된 폐교.
ⓒ 나영준

덧붙이는 글 | '이·시·소 문화예술 아카데미'는 이화여대 공예학과 김옥조 교수가 세운 교육인적자원부의 학교·사회 문화예술교육을 전문으로 하는 비영리 지정교육기관이다. www.isison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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