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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올해가 황금복돼지해라는 말이 정말 사실인가 봅니다. 우리 막둥이가 새해부터 좋은 소식을 전해줬으니 말이죠.

83년생 돼지띠 우리 재현이가 당당히 그 어렵다던 부산교대에 단번에 합격하였습니다. 1번의 실패 끝에 거둔 성과라 더욱 동생이 자랑스럽습니다.

저는 동생이 참말로 미웠습니다

▲ 동생의 수능 시험 날. 동생은 밝고 자신감 있는 표정으로 시험장에 들어갔습니다.
ⓒ 김귀현
'장수생'이란 말 들어보셨어요? 재현이는 사람들이 흔히 얘기하는 장수생입니다. 23살에 수능 공부를 다시 시작해 남들 졸업할 25살에 07학번 대학생이 되었으니, 그야말로 대학생 중에선 늙디 늙은 '장수생'이죠. 흔히 얘기하는 '삼수생'의 벽을 넘어선 '칠수생'입니다.

군복무 후 멀쩡히 잘 다니던 대학을 포기하고 교대에 들어간다고 했을 때, 저는 말은 안 했지만 동생이 정말 미웠습니다. 얼른 졸업 후 취직할 생각은 하지 않고, 다시 수능공부를 하겠다니 말이죠.

당시 아버지는 다니던 회사에서 명예퇴직을 하시고, 어머니도 '비정규직 퇴출'이라는 오명을 쓰고 다니시던 직장을 나와야 했습니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에 그 들어가기 어렵다던 교대를 목표로 공부를 하고 있는 동생이 맘에 들 리 없었습니다.

제가 용돈과 학비를 벌기 위해 여기저기서 아르바이트를 할 때, 어려운 형편에 학원비로 50만원이나 받아쓰며 공부를 하는 동생이 탐탁지 않았죠.

지난해, 수능에 실패를 한 동생에게 저는 위로는커녕 '복학해서 얼른 취업이나 하라'는 말 밖에 해주지 못 했습니다. 이때는 아버지도 반대를 하셨죠. 하지만 어머니만은 동생을 믿으셨고, 동생의 꿈을 위해 어머니는 또 한 번 1년의 수험생 엄마 생활을 자처하셨습니다.

'수험생 엄마'만 5년, 이제 편히 쉬세요

▲ 어머니께선 동생이 시험장에 들어간 후, 멍하니 시험장을 바라 보셨죠.
ⓒ 김귀현
동생의 기상시간은 새벽 6시, 그리고 어머니의 기상시간은 5시였습니다. 아침 일찍 학원에 가는 동생의 아침과 도시락을 챙겨주시기 위해서였죠.

어머니는 무려 5번의 '수험생 엄마' 생활을 하셨습니다. 시골에서 도시인 우리 집으로 유학 온 막내외삼촌을 뒷바라지한 1992년, 저의 고3 스트레스를 모두 받아주시던 1999년, 그리고 연년생인 동생이 고3이던 2000년까지 쉼 없이.

그리고 2005년과 2006년, 어머니는 또 다시 5시에 일어나서, 다시 수험생이 된 동생을 챙겨주셨습니다. 한 번도 힘들다는 '수험생 엄마' 생활을 무려 5년이나 하셨습니다.

올해 어머니께서는 다리가 많이 아프셨습니다. 제대로 걷지도 못할 정도로 아프신 와중에도 동생 걱정뿐이었습니다. 동생 걱정에, 저만 병원에 두고 아버지는 집에 내려 보내셨습니다.

동생은 결국 병원에 한 번도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어머니의 병실을 지키며 전 정말 동생이 원망스러웠습니다. 어머니가 이렇게 아프신데, 얼굴 한 번 비추지 않는 동생이 정말 미웠습니다.

하지만 이제야 깨닫습니다. 어머니가 정말 걱정되면서도 병원에 오지 못한 채, 독한 마음먹고 들어오지도 않는 책을 보았던, 동생의 마음도 정말 아팠을 것이란 것을...

어머니 이제 편히 쉬세요. 5년의 수험생 뒷바라지 하며, 곱디곱던 어머니의 주름이 더 늘어나신 것 같아요. 당신의 두 아들, 이제 곧 우리의 꿈을 이룰 것입니다. 조금만 기다리세요. 아들은 '미국이다, 일본이다' 여기저기 다닐 때, 어머니 한 번도 못 가보신, 바다 건너 해외 구경 꼭 시켜 드릴게요.

동생과 꼭 소주 한 잔 기울이고 싶습니다

올해 수능을 일주일 앞두고 전 어머니께 화도 냈습니다. 평소 근처도 안 가시던 교회에 가셔서 동생을 위해 기도를 하고 만원이나 헌금으로 내고 오셨다고 해서, 제가 버럭 화를 냈죠.

"재현이는 지금 다니는 토목과 나와서 취업하면 되는데, 뭘 그렇게 교대에 집착하세요. 모의고사 성적표 보니까 교대 갈 실력도 안 되더만!"

@BRI@제가 본 동생의 성적이 그렇게 좋지 않았거든요. 그래도 그렇게 희망을 가지고 있는 어머니가 전 정말 답답했었나 봅니다. 괜히 이러다 또 떨어지면 어머니의 안타까움이 더 크실 것 같아서 일부러 그렇게 말했나 봅니다.

제가 그렇게 말 했을 때, 어머니의 떨리는 눈빛을 잊을 수 없습니다. 이제 와서 말씀드립니다. 어머니 정말 죄송합니다. 어머니의 손을 꼭 잡아 드리며 "우리 재현이, 잘 볼 수 있을 거에요"라고 말씀드렸어야 했는데…. 제가 정말 못 됐죠.

그동안 동생에게도 못 된 형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대로 잘 해준 적도 없었습니다. 여자친구에게 10만원도 넘는 선물을 사주고, 친구들과 질펀히 술 한 잔 하는 데 쓰는 돈은 아깝지도 않으면서, 동생에게는 뭐가 그리 아까운지 제대로 밥이라도 한 끼 사준 적이 없습니다.

동생과 단 둘이 술 한 잔하며 서로 마음에 있는 이야기를 해 본 적도 없네요. 오히려 가족이란 이름으로 더 소홀했던 것 같아요. 동생이 부산에 내려가기 전에 꼭 근사한 곳에서, 단 둘이 소주 한 잔 기울일까 합니다. 그리고 이 말을 꼭 해주고 싶네요.

"재현아, 그동안 수고 많았다. 꼭 훌륭한 선생님 되라! 그리고 우리 꼭 효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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