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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이 바뀌었다고? 이게 무슨 '자다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가. 어머니가 나를 낳은 날, 내가 태어난 날인 생일은 한 번 정해지면 끝까지 가는 거지 어떻게 도중에 생일이 바뀐다는 말인가.

혹시 모르겠다. 죽음 직전까지 간 사람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난 뒤 자신의 잉여 인생이 감사해서 그 날을 새로운 생일로 지킨다면 이야기가 좀 달라지겠지만 말이다.

@BRI@그런 극적인 일도 없었던 내가 멀쩡하게 있던 생일을 바꾸게 된 사연을 들어보시라.

요즘 아이들은 거의 예외없이 양력 생일을 쇠고 있다. 하지만 내가 어렸을 때만 하더라도 음력 생일이 많았다. 물론 양력 생일을 가진 사람도 있긴 했지만 말이다.

우리 부모님 역시 내 음력 생일을 호적에 올렸다. 그래서 내가 태어난 해는 양력 1월이었지만 음력을 찾아 올리다보니 그만 전(前) 해인 12월이 내 생일로 둔갑한 것이었다.

졸지에, 태어난 해도 한 해 앞서고 나이도 공(空)으로 더 먹게 된 것이다. 지금이야 좀 억울한 느낌이 들지만 나이 먹는 게 좋았던 어린 시절에는 공으로 올린 한 살이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양력을 사용하는 요즈음에 와서는 좀 어이없는 일이 종종 벌어지곤 한다. 예를 들면, 카드 회사나 내가 고객으로 등록된 회사에서는 매년 이맘 때가 되면 생일 카드를 보내온다. 예쁜 그림과 노래가 나오는 이메일 카드도 보내오고 종이카드도 보내온다. 물론 내 진짜 생일이 아닌 양력 12월 14일에.

물론 그런 카드야 내 생일을 진심으로 축하해주는 마음 담긴 카드가 아니어서 크게 신경 쓸 일은 아니다. 그런데 미국에 와서 살게 되면서 가끔 난감한 경우가 있어서 생일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게 되었다.

"나영, 생일이 언제예요?"

나와 친해진 미국인이 친근감의 표시로 생일을 물어오는 경우가 있다. 내 생일을 챙겨주고 싶어서일 것이다. 그런데 그에게 정확히 알려줄 내 생일을 사실은 나도 잘 모른다.

"저, 달력 봐야 알거든요. 내 생일을 알려 주려면…."

자기 생일이 언제인지 몰라 머뭇거리는 나를 어떻게 생각할까. 물론 문화적인 차이가 있고, 내가 말해준 생일이 양력이 아닌 음력 생일이어서 해마다 바뀌고 그래서 달력을 찾아봐야 안다고 설명해 주긴 한다.

하지만 몽롱한(?) 표정을 짓는 그에게 음력 날짜가 적혀 있지 않은 미국 달력에서 내 생일을 표시해두고 기억해 달라고 하는 건 솔직히 무리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래서 이참에 내 생일을 양력으로 바꿀 것을 고려중이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더욱 부채질하게 된 사건(?)이 얼마 전에 있었다.

내가 일하게 될 대학의 한 기관에서 강사 미팅을 갖게 되었다. 가족같은 분위기의 미팅이었다. 그런데 그곳에서 회의를 진행하던 코디네이터가 강사들의 생일을 적어내라고 했다. 왜냐하면 학생들과 더불어 생일을 축하해주기 위해서라고 했다.

'생일이라고? 그럼 진짜 생일을 알려줘야 하는데….'

그래서 그 때 확실히 마음먹었다. 이참에 아예 양력 생일을 찾아 해마다 같은 날 생일을 쇠자고.

사실 이 나이 들어서 생일이란 게 내게는 특별한 의미가 있을 리 없다. 다만 어머니가 나를 낳았던 그 날을 정확히 알고 해마다 바뀌는 생일이 아닌 '붙박이 생일'을 가져보겠다는 의도일 뿐이지.

그런데 솔직히 말하면 내 양력 생일을 찾는다는 건 공식적으로 나이를 한 살 뺄 수 있다는 속물적인 판단도 있긴 하다. 순전히 심리적인 이유겠지만 말이다. 오뉴월 하루 볕을 따지는 판에 1년을 거저 잘라낼 수 있다는 유혹은 얼마나 강력한 것인지…. 하여간 나는 몇 일 전 부터 내 가족들에게 새로운 생일의 카운트다운을 나팔 불고 다녔다.

"엄마 생일은 이제 1월 12일이야. 앞으로 O일 남았어. 외할머니가 엄마를 낳은 날도 실제로 양력 1월 12일이었으니까 이제야 비로소 내 생일을 찾은 셈이야."

남편에게도 새로운 생일을 고지했다. 그리고는 은근히 '남편표 미역국'을 기대했다. 요리를 즐겨 하는 남편이 내 생일이면 늘 미역국을 끓여주었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올해는 남편의 반응이 영 신통찮았다.

"가짜 생일에 무슨 미역국을 먹으려고 해?"
"가짜는 무슨…. 내가 태어난 날이 진짜 그 날이잖아. 1월 12일."

하지만 남편과는 달리 애들의 반응은 진지했다. 수첩에 미리 '엄마 생일'이라고 표시해 둔 딸들이 그날 학교에 가면서 내게 생일 카드를 내밀었다.

▲ 엄마, 당신은 사랑과 이해와,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엄마의 지혜’로 나를 격려해 줍니다.
ⓒ 한나영
"엄마, 당신은 사랑과 이해와, 돈으로 살 수 없는 소중한 '엄마의 지혜'로 나를 격려해 줍니다."

카드에 인쇄된 내용도 감동적이었지만 딸이 직접 적은 봉투와 카드 내용도 나를 행복하게 했다.

▲ 두 딸이 건네 준 카드. '진짜' 생일 축하 드려요.
ⓒ 한나영
엄마의 매우 사랑스러운 딸의 아빠, 그 아내되시는 분께

해피 버스데이. 처음으로 맞이하는 '진짜' 생신을 축하합니다. 오래 오래 즐겁고 행복하고 건강하게 사세요. 하나님이 축복하시는 멋진 일년 보내시고 내년 생일에는 (안 싸우고) 사랑하며 지내다가 만나길 원합니다. 사랑해요."


작은 딸도 행복한 한 마디로 나를 기쁘게 해 주었다.

"영원히 젊은 우리 엄마, ^^ 생신 축하해요. 건강히 사시고 즐겁게, 행복하게 사세요. … 엄마를 '사모'하는 작은 딸 드림"

그나저나 내가 억지로 주장한 생일을 신통찮게 여겼던 남편은 미역국을 끓여 줬을까?

학교 가는 아이들을 위해 새벽밥을 지으려고 일어난 나는 주방에서 낯익은 큰 냄비를 발견했다. 냄비 안에는 한 솥 끓인 미역국이 들어있었다.

'언제 일어나서 끓인 것일까. 여보, 고마워요.'

그리고 그 날, 내 전자메일함에 가장 먼저 도착한 메일도 바로 생일 축하 메일이었다. 코디네이터인 리사로부터 온 메일이었다.

▲ 코디네이터 리사로부터 온 이메일.
ⓒ 한나영
"올해부터 내 생일은 1월 12일입니다. 앞으로는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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