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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바나나를 영어로 뭐라고 하는 줄 알아?"
"바나나!"
"아니야. (대략) 버네너~"
"오우~ 우리 딸 영어 잘 하는 데. 어디서 배웠어?"
"유치원!"
아이는 유치원에서 특별활동 형식으로 배운 영어 몇 단어를 아빠 앞에서 자랑스럽게 쏟아냈다. 내가 영어를 못 하는지라 그 발음이 좋은 발음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뭐 듣기에는 꽤나 훌륭하게 들렸다.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정기 과목으로 영어 가르친다는데, 영어는 어렸을 때부터 하는 게 좋다고 하니 영어나 한 번 가르쳐볼까?"
"하이고, 웬일이랴? 옛날에는 유치원도 안 보낸다고 하던 사람이."
"꼭, 영어를 잘 하기 위해서라기보다도 영어 때문에 애가 학교 들어가서 스트레스 받을 까 봐서 그러지."
예비 초등생 학부모가 되고 보니...
 | | | ▲ 여섯 살 때까지는 아빠랑 세상 모르고 부담 없이 놀고, 한글이나 숫자 공부도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나 딸이 일곱 살 예비 초등생이 되니 이런 저런 걱정이 앞서게 된다. | | | ⓒ 장희용 | | 요즘 고민 아닌 고민에 빠졌다. 바로 초등학교 1학년에게도 영어조기교육을 실시하겠다는 교육부 발표 때문이다. 이제 내년이면 초등학교에 들어 갈 딸아이가 있으니 이래저래 공부에 대한 걱정이 앞선다.
뭐, 지금 생각 같아서는 이 아빠랑 변함없이 놀면서 좋은 인성으로 자라기를 바랄 뿐이다. 하지만 마음 한 구석 영어, 한글, 수학, 한문, 피아노 등 아이가 해야 할 공부에 대해 다른 아이들처럼 미리 시켜야 학교 들어가서 공부에 대한 적응을 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있다.
아내도 요즘 걱정 아닌 걱정을 많이 하는 것 같다. 저녁에 퇴근하고 가면 이웃 아줌마들에게 들은 영어 공부에 대한 경험을 이야기하곤 한다. 아내 말에 따르면 대부분 '남들은 다 하는데 내 아이만 안 할 수 없는 것 아니냐? 미리 안하면 오히려 아이가 학교 들어가서 더 스트레스 받을 것이다'라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그까짓 것 영어는 무슨 영어?' 하면서 내 마음속에서 '쓸데없는 집착'을 버리고 싶다가도 이렇게 다른 사람들 말 들어보면 딱히 그렇게만 생각할 문제는 아니지 않는가 하는 생각에 갈등이 생긴다.
영어 등 공부를 잘하기를 바라기 때문에 공부를 시켜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혹여 다른 아이들은 미리 다 하는 데 내 아이만 안 시켰다가 학교 들어가서 공부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을까 해서이다.
벌써부터 '공부, 공부' 하고 싶지는 않지만...
솔직한 마음으로는 굳이 선행 학습이나 조기 교육이라는 이름으로 벌써부터 영어 등 공부를 시키고 싶지는 않다. 나는 우리 딸과 아들이 지금처럼 '놀아줘 대마왕'으로 재밌게 지내기를 원한다.
그리고 영어는 어릴 적부터 하는 것이 좋다고 하지만 그동안 아이들과 신나게 놀면서 본 아이들의 해맑은 미소만큼 아이들에게 값진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영어만 잘한다고 해서, 공부를 잘한다고 해서 더 나은 삶이 보장된다고 생각하지는 않기에 나는 영어조기교육이라는 말을 아예 내 머릿속에서 지워버리고 싶다.
 | | | ▲ 공부, 공부 하다가 이 아이에게서 웃음을 뺏는 건 아닌지? 필요하니 지금이라도 시켜야 하는지? 이 아이에게서 '공부'라는 명분을 들어 놀아야 할 일곱 살 추억을 뺏기는 싫지만, 다른 사람들이 다 시키니 고민이 앞서게 된다. | | | ⓒ 장희용 | | 하지만 자꾸만 혼돈스럽다. 물론 지금도 한글이나 숫자 공부 등을 조금씩 하고 있다. 그러나 기초적인 것이라 생각해 하는 것일 뿐 그다지 '공부'라는 개념을 적용해 아이에게 '공부, 공부'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내년이면 학교에 간다고 생각하고, 다른 부모들이 영어 등을 열성적으로 하는 것을 보니 괜히 불안해진다. 아이를 가졌을 때 '제도권 교육'에 대한 집착을 버리겠다 그리도 생각을 많이 했었는데, 시간이 지나 막상 현실로 다가오니 이런 나의 생각이 흔들리게 된다.
이런 생각 버려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그리고 설령 학교 공부가 다소 뒤쳐진다 해도 아이에게 공부로 인해 결정되는 삶이 아닌, 다른 방식의 참된 삶이 존재한다는 것을 어느 정도 알려 줄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러면서도 '어떤 것이 아이를 위하는 것일까?' 하는 생각에 자꾸만 고민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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