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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물어질 듯한 집에서 추운 겨울 나고 있는 한 할머니 댁.
허물어질 듯한 집에서 추운 겨울 나고 있는 한 할머니 댁. ⓒ 유성호
토봉, 일봉, 따봉 할머니? 무슨 말이냐고요? 토봉, 일봉은 각각 토요봉사대, 일요봉사대의 준말입니다. '따봉 할머니'는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멋진 할머니'란 뜻입니다. 지난 주말(20일) 토요봉사대 일원으로 집수리를 갔다가 만난 멋진 할머니와 겨울을 녹이는 훈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드리겠습니다.

토봉

지난 1월 20일, 절기상 큰 추위가 있다는 대한(大寒)이다. 지구온난화 영향인지 아니면 봉사의 손길을 보살핌인지 날이 그다지 춥지 않다. 토봉(토요봉사대) 일꾼 20여명은 이른 아침 우이동길 한 골목 안에 사시는 김경옥(78) 할머니댁을 찾았다. 이미 선발대가 지난주 공사할 곳을 봐두고 온 터다.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환하게 맞아주시는 할머니. 허리디스크와 관절염으로 몸이 불편해 지팡이에 의지해야 걸음을 뗄 수 있다. 좁디좁은 방이지만 몸을 녹이라고 연신 손짓을 하며 들어오라고 성화다. 방에 들어서자 고개를 세울 수 없는 키 낮은 천장이 손님을 맞는다. 기다렸던 손주처럼 봉사대에게 과자, 귤 등 먹을거리를 내놓는 할머니 손길에 콧날 찡하다.

ⓒ 유성호
공사를 하고 있는 토봉ㆍ일봉 봉사자들.
공사를 하고 있는 토봉ㆍ일봉 봉사자들. ⓒ 오세현ㆍ유성호
사방 벽은 금세 허물어질 듯 비틀거렸다. 오래된 합판은 썩어서 문드러지고 창문은 틀만 남은 채 어디론가 사라졌다. 사라진 창문을 대신하는 것은 오래된 비닐 조각. 바람이 들이칠 때마다 비닐은 깃발처럼 펄럭인다. 펄럭임은 입김을 흔들고 할머니의 어깨를 오그라들게 했다. 손대면 으스러질 것 같은 건물. 할머니처럼 서글프게 늙어갔다.

시유지 위에 지어진 전세 500만원짜리 무허가 판잣집. 할머니는 봉사자들이 공구를 들고 일어나자 손사래를 친다. 추위도 다 갔고 하니 당신 집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위해달라고. 도봉노인종합사회복지관 재가복지담당 유버들씨는 "보증금 500만원에 해당하는 금액을 드릴 테니 집을 옮기시라고 했지만 더 어려운 이웃을 도우라며 한사코 거절하신 할머님"이라고 소개했다. 한마디로 '따봉 할머니'다.

따봉 할머니, "나보다 더 어려운 이웃을 도와라"

토봉팀은 합판과 스티로폼으로 사방 벽에 방한공사를 새롭게 했다. 이 분야 전문가부터 처음 봉사대에 합류한 완전초보까지, 일의 속도는 다르지만 마음 씀씀이는 한가지인 이들이 손에 손을 보탰다. 한쪽에선 합판을 자르고 다른 쪽에선 벽에 틀을 박고 스티로폼을 세워 바람을 막았다. 합판으로 마감을 하면 그 위에 벽지를 발라 깔끔한 마무리를 했다.

또 다른 한쪽에서는 부엌살림과 냉장고를 닦고 한 청년은 너덜거리던 화장실 문을 뜯어내고 튼튼한 새것으로 바꿔달고 있었다. 한 쪽에선 멋진 데이트를 반납하고 여자친구와 봉사로 보람된 하루를 보내는 청년과 자매가 도란거리고 있었다. 이들의 환한 모습이 햇살처럼 아름다웠다. 그 사이 할머니는 '쉬어가며 먹어가며 해라. 추운데 몸 좀 녹이라'며 손주 달래듯 따뜻한 말을 건넸다.

데이트를 봉사현장에서! 아름다운 청년들.
데이트를 봉사현장에서! 아름다운 청년들. ⓒ 유성호
매번 그렇지만 공사는 예정보다 항상 커진다. 마음 씀씀이가 커지는 만큼 손봐주는 곳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이날도 도배공사는 일부만 하기로 했지만 할머니가 보여준 사랑에 감동받은 토봉팀은 집 전체 도배로 마음을 바꿨다. 그래서 공사는 여느 때처럼 어둠이 완전히 내려앉은 후에야 마무리할 수 있었다.

할머니는 딸네 집을 다니러간 같이 사는 80세 된 '언니할머니'에게 자랑거리가 생겼다며 오랜만에 외풍 없는 훈훈한 밤을 맞았다. 돌아가는 발길을 멀리까지 배웅 나오신 아름다운 마음씨를 가지신 '따봉 할머니'. 외려 토봉 대원들이 위로받은 하루였다.

같은 시간 토봉의 또 다른 팀은 변순순(72) 할머니 집으로 출동했다. 조손세대로 할아버지마저 뇌졸중으로 와병중이다. 중1·고1인 2명의 손자를 건사하고 바라보며 사시는 할머니의 어깨는 무거워 보였다. 할머니가 원하신 싱크대와 손주들의 책상을 새것으로 바꿔 주었다. 환하게 이를 드러내며 웃으시는 할머니. 어깨에 실린 짐이 하루빨리 가벼워지는 축복을 기원했다.

일봉

겨울을 녹이는 훈훈한 사람들.
겨울을 녹이는 훈훈한 사람들. ⓒ 유성호
매주 주일마다 '사랑의 도시락'을 전달받는 독거노인 가정에서 이번엔 집수리 SOS요청이 들어왔다. 서울 노원구 상계동 김아무개(63) 할아버지, 심장질환과 통풍으로 1급 장애자로 어렵게 생활하신다. 슬하에 자녀도 없이 불편한 몸으로 정부 보조금에 의지해 겨울을 나기란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특히 하루 종일 방안에 있어야 하는 할아버지에게 집은 마지막 생명선이다.

그런데 문제는 집에 보일러가 없다는 것이다. 냉골에서 온전히 겨울을 나신 것이다. 도시락배달 봉사를 하는 김승진(39)씨는 "평일에는 복지관에서 나오는 점심 한 끼로 하루를 지내며 주일날에는 도시락 봉사대가 전해주는 도시락에 의지하는 분"이라며 "보일러를 놔드리고 싶은 마음에 SOS를 요청했다"고 말했다.

건축 전문가들이 참여하고 있는 일봉팀. 할아버지 댁에 최첨단 전기 온수 보일러를 설치했다. 두어 시간 공사 끝에 보일러를 돌리자 3평짜리 방에는 훈기가 돌았다. 조금 더 있자 '지져도' 될 만큼 뜨끈뜨끈해진다. 일봉 역시 할아버지께 감동을 받아서 예정보다 일을 크게 벌인다.

"할아버지, 할머니 오래도록 건강하게 사세요"
"할아버지, 할머니 오래도록 건강하게 사세요" ⓒ 유성호
도배는 물론 전기설비를 새롭게 하고 오래된 가스렌지와 부엌찬장도 교체했다. 끝으로 돌아오는 길에 부산 부모님 산소에 가보는 게 소원이라는 할아버지의 방에 여비 30만원을 두고 오는 것을 잊지 않았다.

예정보다 항상 커지는 공사... "감동 때문에"

일봉 팀은 서둘러 장소를 옮겨 도봉구 서원아파트 뒤편에 사는 정태율(80) 할아버지 집으로 달려갔다. 이 집 역시 창문이 허술해 보온이 안돼서 2중창으로 교체하고 전기공사를 새롭게 했다. 여성들은 주방과 가재도구를 닦고 할아버지를 위로해 드렸다. 봉사대원인 박상수(40)씨는 "겸손하고 남을 먼저 배려하는 할머니, 할아버님으로부터 오히려 많은 위로를 받는다"면서 "건강히 오래오래 사시면서 아프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한편 토봉과 일봉팀은 기독교 봉사단체인 한국기독교연합봉사단 소속의 자발적인 구호봉사팀이다. 이들은 매월 1회 토·일요일에 어려운 환경에 처한 이웃들을 돕고 있다. 봉사단의 본부는 서울광염교회에 두고 있으며 이 교회는 구제선교장학기금으로 지난해 33억5593만원을 지출했다. 이는 총 예산 59억7183만원의 56.2%에 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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