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가옥들은 절반 가량 철거된 상태로 마치 전쟁터를 방불케 하는 을씨년스러운 분위기이다. 마을은 아무도 살고있지 않는 폐허 그 자체다. 마을을 내려다 보고있는 형세인 뒷편 야산엔 분묘이장 공고판이 꽂혀있는 몇 기의 묘지들이 남아있다.
봉분의 규모와 세월의 이끼가 묻어있는 비석, 어렵지 않은 몇 개의 비석문을 해석해 보면 수백 년 전 꽤 높은 벼슬자리에 있었던 양반가문의 음택(陰宅)임을 알 수 있다. 모두 떠나고 아무도 없는 마을의 작은 야산엔 이렇듯 몇 기의 묘지만이 마을을 지키고 있을 뿐이다.
이곳에 음택을 마련한 옛 사람은 수백년 후 자신의 영원한 안식처가 다른 곳으로 옮겨야 한다는 사실을 알지는 못 했을 것이다. 분묘이장 공고의 번호판이 묘지마다 꽃혀있어 그 후손들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다. 역시 세월의 무상함이 느껴지는 곳이다.
마을에 들어서면 옹기종기 모여있는 가옥들 사이로 마을 중심부를 관통하는 길이 놓여있다. 그 길을 따라 이웃 마을의 소식과 주민들간 정(情)들이 오고 갔을 것이다. 삼거리에는 작은 구멍가게의 흔적이 남겨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마을 주민들이 살갑게 이용했을 그런 곳이다.
시골답게 한옥과 양옥구조의 가옥들이 섞여 하나의 마을풍경을 이루고 있다. 물론 시멘트 블록과 벽돌, 슬레이트로 간단하게 지은 가옥들도 있다. 사람이 살고있을 때는 그나마 온기가 남아있었을 것 같은 가옥들은 이제는 죽은 생물체처럼 차갑게만 느껴진다.
한 가옥의 대문입구 안쪽 처마 위에는 작은 새 둥지가 있다. 집이 완전히 철거되면 조만간 이 새 둥지도 함께 사라질 터. 사람이 살아가는 공간일지라도 이 땅에 사는 다른 생물체들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공간임을 깨닫게 된다.
이곳은 지난 2005년 택지개발지구로 지정이 확정되고 그동안 토지보상작업이 마무리되었다. 그러나 많은 영세 세입자들과 무허가로 공장이나 비닐하우스를 꾸려가던 주민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섰던 흔적은 이곳도 예외는 아니다.
폐허가 다 된 마을에는 이제 몇 개의 벽보만이 휑하니 남아있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