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의 한 장면.
모차르트를 몹시도 사랑하는 안드레이(주인공 안드레이의 아들)는 '모차르트는 개뿔이다'를 복창하라는 고참의 명령을 끝까지 듣지 않는다. 취침시간까지 방독면을 써야하는 수모를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모차르트를 모욕하는 말을 할 수는 없었던 것이다. 이 영화는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그린 작품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모차르트 음악에 대한 주인공의 순애보를 느낄 수 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이쯤 되면 모차르트는 '18세기를 살다간 천재 작곡가'라는 존재에 머물지 않는다. 모차르트는 안드레이에게 일종의 신앙의 대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이 책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를 읽고 영화 속 안드레이가 떠오르는 것은 이 책의 지은이의 모습이 안드레이의 모습과 닮았기 때문이었다.
<내가 사랑하는…>는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한 남자가 쓴 모차르트의 이야기이다. 지은이 스스로도 밝혔듯 이 책은 '나의 모차르트 사랑을 솔직하게 피력한 일종의 간증같은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모차르트의 음악에 대한 전문적인 해석이나 비평을 주 내용으로 삼고 있지 않다. 그 대신 모차르트를 사랑하는 자신과 자신만큼이나 모차르트에 푹 빠져있는 모차르트 마니아들의 모차르트에 대한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지은이는 어떤 연유로 모차르트에 푹 빠지게 되었을까? 중학교 1학년 시절, 누이의 유품에서 발견한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뮤직'의 3악장이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것을 듣는 순간 지은이는 갑자기 세상이 밝아진 느낌을 받았다. 그러나 모차르트가 그 즉시 그의 마음을 사로잡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밖에 나가서는 모차르트에 대한 사랑을 숨겨야만했다. 왠지 그래야 될 것 같은 생각 때문이었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면서 생의 어려운 고비 고비마다 지은이를 붙들어준 것은 다름 아닌 모차르트였다. 모차르트를 처음 만난 지 30여년이 지난 지금, 지은이는 남 몰래 가슴속에 품어왔던 모차르트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고 있는 것이다.
모차르트 음악을 이해하는 키워드, '사랑'
문화방송 PD이기도 한 지은이는 작년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기념하여 다큐멘터리 2부작 '비엔나의 선율- 마음에서 마음으로'를 제작했다. 이 책에는 다큐멘터리 제작과정에서 만난 세계적인 음악가들과 나눈 대화도 소개되어있다.
@BRI@이 시대 명바이올린니스트 중 한 사람인 기돈 크레머, 비올리스트 유리 바쉬메트, 모차르트 스페셜리스트로 불리는 피아니스트 미츠코 우치다, 소프라노 엠마 커크비가 각자 모차르트 음악은 자신에게 어떤 의미로 존재하는 이야기하고 있다.
그중 사춘기 시절, 자살을 결심했다가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을 보고 난 후 삶의 의미를 되찾았다는 에릭 엠마뉴엘 슈미트의 이야기는 감동적이다. 또 그는 어느 날 택시 안에서 우연하게 듣게 된 모차르트의 클라리넷 협주곡을 듣고는 삶의 지혜를 깨달았다고 말한다. 그가 말하는 모차르트는 음악의 천재일 뿐 아니라 지혜의 천재라는 것이다. 또한 그의 삶을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말한다. 작가인 그는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을 맞이하여 <모차르트와 함께 한 내 인생>을 출판하기도 했다.
'그의 음악은 밝고 즐겁고 그야말로 기쁨이 넘치지요. 모차르트는 '우리에게 죽음을 포함해서 우리의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현실로부터 도망치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거지요.'(194쪽)
지은이가 말하는 모차르트의 음악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바로 '사랑'이다. 사랑이야말로 모차르트 음악을 이해하는 중요한 키워드라는 것이다. 여기서 사랑이란 '인간 존재를 확장시키는 것'에 다름 아니다. 사람과 사람을 결합시키고 삶을 긍정하게 만드는 음악의 위대한 힘과 같은 의미라고 지은이는 힘주어 말하고 있다.
이 책에는 영화 아마데우스에 나타난 모차르트의 진실을 추적하는 '영화 아마데우스, 어디까지 사실일까' 코너도 소개되어있다. 모차르트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의 구미를 당길만한 대목이다. 또한 지은이가 난생 처음으로 지휘봉을 잡게 된 사건과 모차르트의 교향곡 40번을 연주하면서 생긴 에피소드를 적은 '좌충우돌 모차르트를 지휘하다' 코너도 흥미롭다.
| | "모차르트야말로 가장 대중적인 음악" | | | [인터뷰] 지은이 이채훈씨 | | | |
| | | | ⓒimbc | - 우선 이 책을 내게 된 동기가 궁금하다.
"평소 모차르트에 관한 책을 내는 게 오랜 소망이었다. 마침 작년이 모차르트 탄생 250주년이었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빈필하모니’에 관한 다큐멘터리 촬영했는데 그 과정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의 인터뷰와 취재기 등을 그냥 묻히기 아까웠다. 그래서 이번 기회에 책으로 묶게 되었다."
- 요즘과 같은 시대에 모차르트의 음악은 일반 대중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할 것 같는데.
"모차르트 음악이야말로 대중적이다. 주위를 둘러보면 광고배경음악, 시그널 등 모차르트의 음악이 자주 쓰이고 있음을 깨달을 수 있다. 일례로 교향곡 40번과 '아이네 클라이네 나하트 뮤직'같은 음악은 우리들에게 매우 친숙하다. 무엇보다 모차르트는 클래식 애호가만이 듣는 것이라는 편견은 버렸으면 한다."
- 모차르트 음악의 본질은 사랑이라고 했는데 구체적으로 말한다면 무슨 뜻인가.
"모차르트 음악은 요즘 팝송이나 가요가 담고있는 보편적 감정을 똑같이 담고있다. 즉 인간본성의 심연에서 흘러나오는 '사랑타령'이 그 바탕을 이룬다. 다만 대중음악과 다른 점이 있다면 더 순수하고 정제된 형태의 음악이라는 것이다."
-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었다면 무엇일까.
"모차르트와 관련된 원서를 번역하는 일이 어려웠다. 특히 모차르트가 살던 18세기 독일어를 이해하는 작업은 가장 중요하면서 또한 난해한 작업이기도 했다."
- 모차르트 음악을 처음 접하고자하는 사람들에게 권하고 싶은 곡이 있다면?
"책에서도 수차례 인용한 교향곡 40번(K.550)과 현악 5중주곡(K.516) 그리고 오페라 마술피리(K.620)의 DVD를 권하고 싶다." / 안소민 | | | | |
덧붙이는 글 | 내가 사랑하는 모차르트/ 이채훈 지음/ 도서출판 호미/ 1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