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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자식은 귀한 걸 줘도 안 먹네. 너 이거 얼마짜린 줄 알아? VIP한테도 안 내놓는 거야, 임마."
친구는 갑갑하다는 듯 한숨을 내쉬기 일쑤였다. 10여 년 전, 친구는 제법 커다란 한식집의 지배인이었다. 고위 공무원이나 땅 부자들이나 되어야 드나든다는 그곳의 주 메뉴는 생등심, 꽃등심 등 소위 1등급 한우였다.
@BRI@어린 시절 술맛을 알게 해준 친구. 무슨 이야기를 나누어도 온 밤이 즐거운 술벗, 친구는 일이 끝난 밤이면 연락을 하곤 했다. 정성을 들여 차린 술상, 고기는 물론 최상급이었다. 문외한의 눈에도 흰 눈이 내린 듯 촘촘히 박힌 마블링(근내지방도). 가격은…. 제 값을 치르자면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내가 몇 점 먹지 않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도 별다르지 않지만 두툼한 소고기는 '내 과'가 아니다. 딱히 고기를 싫어하는 것도 아니지만, 좋다고 덤벼들게 되질 않는다. 친구는 그게 불만이었다. 정말 미안했지만 입맛에 맞지 않는 데는 도리가 없었다.
몇 년 뒤 친구가 그곳 일을 그만두었을 때 시장 좌판 한구석에서 술잔을 기울였다. 흰 눈이 나풀거리던 날이었고 술은 입에 착착 감겨왔다. 그리고… 그날의 안주는 거칠고 투박한 돼지 막창구이였다. 술이 넌지시 오를 때쯤 친구는 고백했다.
"거기 소고기가 비싸고 귀한 편이니까 챙겨주려고 그랬던 거지. 사실 내 입에도 별로더라. 나중엔 나도 삼겹살이니 곱창 사다 구워먹고 그랬어. 고기는 돼지 아니겠냐. 한잔 먹자, 오늘 막창 죽인다!"
돼지막창 집은 늘 불편해야만 할까?
돼지막창. 돼지와 막창이 주는 어감이 얼핏 친절한 메뉴 같아 보이지 않는다. 왠지 고된 노동의 끝에 막걸리 한잔과 어울려야 제법일 듯도 싶다. 게다가 막창 그 자체를 즐길만한 곳이 흔한 편도 아니다.
학창시절 '이거다' 싶을 만큼 막창을 제대로 하는 단골집이 있었다. 학교 담벼락을 끼고 있었다. 학생들을 위한 가게라기보단, 동네 어르신들을 위한 장소를 학생들이 자주 찾았다고 하는 편이 더 정확하다.
매콤한 양념을 묻혀 연탄불에 구워내던 그 맛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하지만 그 집은 막창을 제외한 모든 것이 불편했다. 막창뿐인 메뉴, 딸려 나오는 것이라곤 마늘과 상추 몇 잎이 고작. 김치나 파절임은 물론 흔한 어묵국물도 없었고 심지어 공기밥도 팔지 않았다.
가게가 세월과 함께 늙은 것은 그렇다치더라도 불편한 화장실은 여학생들은 물론 남학생도 인상을 찌푸리게 했다. 게다가 가격마저 친절하지 않았다. 낭만을 벗 삼기엔 그만이었지만, 딱 거기까지. 매일 '출근도장'을 찍기엔 2%가 부족했다.
이전보다는 TV나 언론을 통해 막창구이집이 많이 소개되는 편이다. 지글지글 피어오르는 연기 속에 건배를 나누는 모습은 언제라도 맛깔스럽다. 그런데 그런 집들의 공통점은 하나같이 편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마치 '막창은 이런 곳이 아니면 맛이 나지 않는다'라고 이야기하듯 애써 장소의 협소함이나 불편함을 낭만으로 돌리려는 듯한 태도다. 꼭 그래야만 할까. 막창은 시장통 비좁은 곳에만 어울리는 메뉴일까?
여성들이 더욱 즐긴다는 쫄깃함과 부드러움
경기도 파주 시청 부근의 한 막창구이 가게. 실내는 밝고 깨끗하다. 입에 대지도 않는 음식이었는데, 그만 그 맛에 빠져버렸다며 한성희 시민기자가 동료 시민기자 몇몇을 불러낸 자리였다.
'그래봤자, 이제 막 막창구이에 맛을 들였나 보지'라고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만 접시에 담긴 모습에 깜짝 놀라 버렸다. '어쩜 이리 예쁘고 곱지?'라며 고개를 갸우뚱한 것. 9시간을 숙성했다는 막창의 빛깔이 담백하게 새하얗다. 친구가 대접해주던 소고기의 마블링과 다를 바 없다.
'이것 봐라'하며 감탄을 하고 있을 때 다른 반찬들이 자리를 잡는다. 빛깔 좋은 콩나물 무침이 눈에 들어온다. 그런데 일반 가게의 그것과 다르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파와 무가 함께 무쳐져 있다. 사각사각한 식감이 입 안에 가득 퍼진다.
막창이 어느 정도 익었다. 하얗던 지방은 깨끗하게 빠져 있다. 16가지 견과류를 섞어 만들었다는 소스를 찍고 드디어 입으로 투하한다. 부드럽다. 쫄깃함보다는 고소한 부드러움이 먼저 와 닿는다. 다시 몇 번을 씹자 가볍게 찰랑이는 쫄깃함이 다가온다.
쉬지 않는 젓가락질이 이어지고 나서야 곁에 있는 물김치가 눈에 들어온다. 이런 건 손으로 잡고 들이마셔야 제 맛이다. 그런데 물김치가 아니다. 무를 통째로 절인 '짠지'다. 설탕이나 사이다를 탄 달달한 맛이 아닌 진득한 짭짤함이 목을 적셔온다. '크으' 소리를 내자 곁을 지나던 주인이 섞은 것은 물과 실파뿐이라고 일러준다.
부드러운 계란찜, 집된장으로 끓였다는 찌개와 거기에 어울리는 누룽지까지 모두 추가주문 없이 딸려 나온다. 마늘 한 쪽까지 자연산 농산물이라는 가격이 일인분 8천원이면 수긍이 간다. 거친 모주꾼이 아닌 가족들끼리의 외식으로도 손색이 없다.
그래도 괜한 궁금증이 일어 주인을 붙잡고 물어보았다. 아무래도 나이 든 남자 손님이 많이 찾지 않냐고. 그런데 예상과는 전혀 다른 답변이다. 7대 3 정도의 비율로 여자 손님들이 더 많단다. 그것도 20대 여성들이 대부분이란다. 그 이야기를 증명하듯 우리 쪽의 자리가 파할 무렵 너댓 명의 젊은 여성들이 가게로 들어선다.
편견… 그렇다. 나 역시 스스로의 작은 편견에 젖어 있었다. 막창 집은 왜 비좁고 불편할까라고 불평하면서도 때로는 그것이 거친 남자들만의 음식이 아닐까 하는. 혹 나는 그간 앞자리에 앉은 여성들의 '생각보다 맛있네요'란 이야기를 은근히 즐겨왔던 것은 아닐까.
단지 기호품일 담배에 세상의 권위가 덧씌워진 것처럼, 막창은 막창일 뿐이다. 막창은 투박할 거란 편견도, 그것을 파는 가게역시 불편할 거란 예상도 단지 선입견일 뿐이다. 시대가 바뀌면 음식을 담아내는 문화도 바뀔 뿐이다. 그날 나는 그렇게 추억속의 막창에 이별의 건배를 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