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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공해 항균 수세미 실. 세제가 필요 없습니다.'
웬만한 주부들이라면 요즘 위의 문구가 어디에 쓰여 있는 것인지 다 안다. 바로 그렇다. 주방 수세미 제조용 아크릴 실 꾸러미 상표에 붙은 문구다. 우리 집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우리 집 주방에도 자랑스럽게(?) 아크릴 수세미가 주방 싱크대에 자리 잡은 지 오래다. 하지만 무식한 게 죄라고. 그동안 선물 받은 아크릴 수세미를 사용하면서 세제를 예전 그대로의 양을 묻혀서 사용하고 있었던 게다.
그러다가 텔레비전에서 방영하는 교양 오락프로그램에서 아크릴 실의 진가를 본 후 우리의 무지를 깨닫게 되었다. 식용유를 잔뜩 묻힌 식기를 양쪽으로 똑같이 나누어 한 쪽은 세제를 묻힌 일반 수세미로 닦고, 한 쪽은 세제를 전혀 묻히지 않은 아크릴 수세미로 닦은 후 결과를 보는 프로그램이었다.
결과적으로 속도와 청결 면에서 모두 아크릴 수세미가 승리했다. 실제로 눈으로 보고 나니 아크릴 수세미를 푸대접한 우리 내외는 괜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걸 발견하고 보급하는 사람들의 노고를 헛되이 한 거 같아서다. 청결, 항균, 속도 등 이 세 박자가 아크릴 수세미 안에서 다 해결된다는 것.
이 방송을 본 후 나는 주방에서 열심히 설거지를 한다. 바로 그 '무공해 항균 아크릴 수세미'로 말이다. 세제 안 쓰고 하니 속도 빨라 좋고, 세제를 써야만 지워졌던 그릇을 보면서 늘 뒷맛이 씁쓸했는데 이젠 그럴 필요 없어 좋다. 또 그릇을 문지르면 어김없이 '뽀드득' 거려서 좋다.
원래 대한의 남아로서 설거지하는 것이 즐겁다고 글까지 썼던 나였지만 아크릴 수세미 덕분에 늘 뒷맛이 씁쓸한 기분마저 확 날려 버려 금상첨화가 따로 없다.
아내는 요즘 아크릴 수세미 만드는 재미에 푹 빠졌다. 심지어 저녁 12시가 넘어가도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뜬다. 아내는 만드는 게 너무 재미있단다. 짧은 시간 내에 결과물을 볼 수 있으니 해냈다는 보람을 수시로 느낄 수 있다는 게다. 들인 시간에 비해 완성된 작품은 아주 예쁘고 다양하니 보는 즐거움도 만만찮다. 그런 아내에게 내가 또 태클을 건다.
"왜. 또 실을 자꾸 사다 날라요?"
"아. 당신은 또 잔소리. 다 이유가 있어서 그렇지요."
"그게 뭔데요."
"이 색깔은 떠서 언니네 주고, 이 색깔은 떠서 지석이네 주고, 또…."
아내가 도인에게 잔소리한다는 듯 일일이 설명해준다. 순간 약간 아내에게 미안했지만, 옆에 있는 실들이 참 예뻐서 바로 거기로 눈길이 간다. 위기를 모면하는 나만의 노하우인 셈이다.
"야. 실 참 예쁘다. 당신이 잘 만들어서 그런가. 어디 보자."
이렇게 화재를 돌리면서 평소 습관대로 카메라로 팍팍 찍어댄다. 아내도 나의 의도를 알고 실들을 배열한다.
다음날부터 아내가 남들에게 어떻게 주나 지켜봤더니 그것 또한 '한 재미' 한다. 완성한 작품을 가방에 넣고 다니다가 만나는 사람에게 수세미를 꺼낸다.
"와. 예쁘기도 해라. 이게 뭐예요?"
"세제 안 쓴다는 아크릴 수세미예요."
"아. 바로 그거 구나."
"이거 줄까요?"
"어머, 좋아라."
그렇게 간단하게 인터뷰(?)를 끝내고 작품 칭찬해준 값인 양 건네주면 받는 사람도 주는 사람도 싱글벙글이다. 마치 명품 선물을 주고받은 사람들처럼. 그러고 보니 이것 참 좋은 문화가 아닌가 싶다. 아크릴 수세미를 혼자서 쓰지 말고 자신이 직접 떠서 이웃들에게 나눠주는 문화 말이다.
굳이 '무공해 아크릴 수세미를 사용하여 자연을 살립시다'라고 선전하지 않아도 되니 얼마나 좋은가. 공짜로 준다는 데 마다할 이가 어디 있던가. 하물며 이렇게 예쁜 선물을 보면 어느 주부가 마다할까.
이거 참 좋은 문화 발견이다. 일거다득의 이 좋은 문화를 특허 낼까 싶다. 이런 문화를 발견하여 대중화시키는 데 앞장선 특허 말이다. 이 글을 쓰는 내가 특허 낸다는 데 누가 말릴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