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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초 한 친구와의 만남에서 '아크릴 사 수세미'란 얘기를 처음 들었다.
"뭐, 아크릴 사 수세미? 그게 뭔데?"
"너 아직 깜깜하구나. 요새 여러 시민단체에서 이것 보급하려고 홍보 많이 하던데…. 아무튼 아크릴 사 수세미는 '세제 없이' 설거지를 할 수 있는 수세미인데, '아크릴 사'라고 하는 털실로 만드는 거야. 너, 한 뜨개질 하니까 한번 떠서 쭉 돌려봐라."
"한 뜨개질은 무슨…. 뜨개질도 수학공식이라서 구체적으로 들어가면 싫어. 공식에 따라 코 늘이고, 줄이고, 건너뛰고, 전체적 윤곽 머리에 짜야 되고 등등 머리 아파. 내가 잘하는 것은 바늘땀을 고르게 뜨는 것뿐이야. 오버하지 말어."
"야, 그래도 수세미 하나야 못 만들겠냐? 한번 '뜨개방' 같은 데 가서 알아보고 도전해봐."
"그래. 냄비 받침대만 한 수세미 정도야 그냥 되겠지."
친구와의 만남 후 우연히 동네 문구사에서 마침 털실이 눈에 보여 가게 주인에게 물었다.
"저거 혹시 아크릴 실이에요?"
"아닙니다. 그냥 실입니다."
그것이 아크릴 실이었으면 당장 손뜨개를 한번 해 보는 건데 하는 아쉬움을 안고 가게를 나왔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는 '정토회' 홍보지에서 '아크릴 사 수세미'를 떠주실 봉사자를 찾는다는 문구를 발견하였다.
그 문구를 보자 '아크릴 사 수세미'가 정말 세제의 효과를 내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정말 세제 없이 설거지를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한 환경운동도 없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뭔가 마음을 먹으면 한시가 급해지는 성격 탓에 당장 광고책자를 보고 뜨개 실을 파는 곳을 찾았다. 찾고 보니 내가 사는 동네에도 그런 곳이 한곳 후미진 곳에 있었다.
생각보다 세척력이 놀라워
내가 산 아크릴 사는 세 개가 묶음으로 하나에 4000원씩 합이 1만2000원이었다. 그리고 '수세미라고 해서 늘 우중충하라는 법이 있나'하며 아주 색이 밝고 고운 빨강, 노랑, 주황이 든 세트를 골랐다.
집에 와서 당장 코바늘을 찾아 뜨기에 집중했다. 그런데 하도 오랜만에 뜨개질을 하다 보니 하나 뜨고 나니까 손가락이 얼얼했다. 그래서 잠시 쉴 겸 아크릴 사 수세미의 효험도 증명해 볼 겸 해서 라면을 끓여 먹고 그 라면 냄비와 그릇을 내가 뜬 아크릴 사 수세미로 설거지를 해보았다.
그런데 과연 놀라웠다. 몇 번 문질러 씻은 다음 냄비를 만져보니, 세제를 쓴 것 마냥 뽀득뽀득했다. 정말이지 아크릴 사 수세미는 세제를 한 방에 날려버릴 저력을 갖고 있었다. 건조도 빨라 그냥 손으로 물기를 꽉 한 번 쥐어 짜주니 반절은 보송보송했다. 그러다 문득 삶아도 괜찮을까 하는 의문이 들어 행주 삶듯이 삶아 보았다. 오그라들면 어쩌나 했는데 삶아도 형태변화가 없었다.
'띵 호아!' 나는 이 깜찍한 아크릴 사 수세미에 100점 만점을 주었다. 정말 나무랄 데가 없었다. 평소 저공해 세제를 쓴다는 이유만으로 그냥 스스로 합리화하며 살았는데 아크릴 사 수세미를 써보니 이젠 저공해 세제도 필요 없을 것 같았다.
이 수세미를 직접 사용해보기 전에는 '뭐 설마 기름때까지 제거하기야 하겠어?' 했는데 써보니 그만하면 충분했다.
프라이팬을 씻어본 결과, 기름은 수세미가 저만 먹고 프라이팬은 깨끗했다. 다만 기름기가 아주 많은 팬을 씻었을 경우 수세미가 뿌여니 좀 미끌미끌해졌는데, 그땐 소량의 세제를 뿌려 쭈물쭈물해서 씻으면 거품을 별로 내지 않으면서도 금세 깨끗해졌다.
무엇보다 설거지 시간 대폭 절약
설거지는 쉽고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래도 매일 하자면 힘이 든다. 특히 매일 같이 기름기가 있든 없든 세제로 설거지를 하자면 힘은 배로 든다. 기름기 있는 것 따로, 없는 것 따로 분리해서 씻어도 보지만, 어차피 수세미에 거품이 남았는데 하면서 기름기 없는 것도 세제를 두르기가 쉽다.
이처럼 늘 세제를 쓰다가 세제 없이 설거지를 하려니 처음에는 뭔가 덜 씻은 듯 찜찜하였다. 그러나 습관 되니 오히려 세제를 썼을 경우가 더 끔찍했음을 느끼게 되었다. 무엇보다 아크릴 사 수세미를 쓰니, 미끈미끈한 세제 찌꺼기를 없애고자 여러 번 벅벅 문질러 가며 헹구는 수고를 생략할 수 있기에 설거지가 훨씬 간편해서 좋았다.
아무튼, 아크릴 사 수세미를 알게 되어 기쁘다. 내게 아크릴 사 수세미를 언급해준 친구를 만나면 그녀의 원대로 그녀의 이미지에 맞는 멋진 수세미를 하나 만들어 주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