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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은행나무
<무시(moosi)>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이 시대를 사는, 우아하지 못하고 우울하기만한 '백조'의 생활일기입니다. 백조 이혜란은 말합니다.

"moosi는 메마른 오늘을 살아가는 내 안의 또 다른 나입니다. 마이너한 '그녀'의 일상에서 건져 올린 삶의 철학을 그림과 함께 글로 옮겨보았습니다"

전파를 타고 전달되는 그녀의 목소리는 밝기만 합니다. 책머리를 장식한 '나는 외롭다'는 울림은 아무래도 거짓말처럼 느껴졌습니다. 그러나 전화와 이메일, 그리고 문자메시지로 인터뷰를 진행하면서 점차 외롭다는 그녀의 생각에 동의하게 됐습니다.

목소리와는 달리 텍스트는 여전히 우울한 백조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자신이 만든 캐릭터를 살리기 위해 직접 책을 내고 실제로 캐릭터를 팬시상품으로 만들어 낸 그녀의 애착에서 큰 희망을 보게 됩니다.

그녀와의 일문일답입니다.

@BRI@- 책 잘 봤습니다. 읽었다기보다는 (독특한 그림 때문에)봤다는 표현이 맞을 듯싶습니다. 고백하자면 내내 가슴이 답답했습니다. 작가의 마음이 전해져서일까요? 아직도 책처럼 백조로 살고 계시나요?
"저는 동정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저의 책을 읽은 사람들은 저를 향해 불쌍하다는 표정을 감추지 못합니다. 그리고 저에게 이게 당신의 삶이냐는 질문을 던집니다. 사실 난감합니다. 대답을 한다는 것이 말입니다. 긍정을 해야 할지, 부정을 해야 할지, 저는 망설이다가 가볍게 웃어넘기고 맙니다.

긍정을 하기에는 허구가 많고, 부정을 하기에도 진실이 많이 담겨 있습니다. 현실감이 너무 강했던 것 같습니다. 저의 근황은 책이 출판되기 이전이나 지금이나 별로 변한 게 없습니다. 방에 처박혀서 그림을 그리는 게 저의 주요 생활패턴이며 가끔 서점을 방문하고, 하루에 한 번 이상은 동네 한 바퀴를 걷는 게 일상입니다."

저자 이혜란과 캐릭터 '무시'. 닮은 듯 닮지 않은 그들은 모녀관계와 같다.
저자 이혜란과 캐릭터 '무시'. 닮은 듯 닮지 않은 그들은 모녀관계와 같다. ⓒ 이혜란
- 자신을 나타낸 캐릭터가 아주 독특합니다. 호감이 가는 캐릭터가 아님에도 미워할 수 없네요. 캐릭터에 대해 설명해 주세요. 두툼한 눈두덩, 헤어스타일, 강조된 콧구멍 등. 예쁘게 만들지 않은 이유도? 그림은 어떤 툴로 그리는지요?
"moosi의 캐릭터는 장애여성으로부터 시작된 캐릭터입니다. 학창시절 눈이 비정상적으로 큰 장애여성을 본 적이 있고, 그 인상이 강하여 캐릭터로 만들고자 시작된 캐릭터입니다. 대학시절 저는 캐릭터를 들고 출판사라는 곳을 방문했습니다.

그들의 반응은 이 캐릭터가 무섭다, 징그럽다, 일반 사람들이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당시 저는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고집 있게 끝내 예쁘장한 것을 거부하고 무섭다는 캐릭터가 세상에 나올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 캐릭터는 슬픔을 표현해야 하기 때문에 예쁘장할 필요는 없었습니다. 사람들의 생김이 다 다르고 미의 기준이 다른데 왜 저의 캐릭터는 안 된다는 것인지 저는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 캐릭터를 통해 우리 사회가 얼마나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회인지를 절감했습니다. 사실 저에게는 moosi가 예쁘기만 합니다.

캐릭터 작업과정은 이러합니다. 연필로 그려서 수정하고, 스캐닝하고, 일러스트레이터라는 프로그램으로 그래픽 처리를 합니다. 그림이 간단해 보여도 아주 힘든 작업입니다. 모든 것은 손을 거치고 다시 보고 다시 수정하고 이런 식입니다."

"순수 창작물은 인터넷보다 책으로 먼저 선보이는 게 중요"

- 글이 참 재미있습니다. 그런데 매번 글 속에 의미를 담으려고 애쓴 흔적이 보입니다. 의도적으로 뜻을 함축해 담으려고 했는지 아니면 원래 글쓰기 패턴이 그런 것인지 궁금합니다. 책에 나온 내용이 개인홈페이지 또는 블로그 등의 형식으로 인터넷으로 발표된 것인가요?
"처음에는 유머러스한 토막글을 쓰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감지하셨겠지만 일관성이 좀 떨어집니다. 가볍게 부담 없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지만 쓰다 보니 무언가를 담고 싶은 유혹에 빠졌다는 표현이 적절할 듯합니다. 제 자신이 무거운 사람이라 그런가 봅니다. 점차 글이 무거워졌습니다.

이 책에 나온 내용은 개인 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의 형식으로 인터넷으로 발표된 적이 없습니다. 순수창작 캐릭터와 글을 저는 책의 형태로 출간하는 게 먼저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다음에는 개인홈페이지나 블로그 등에 올릴 수는 있겠지만 저에게는 책으로 출간되는 게 중요했습니다."

책 본문에 있는 '교활한 바나나' 삽화.
책 본문에 있는 '교활한 바나나' 삽화. ⓒ 이혜란
- 책을 내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본인의 희망이었나요, 아니면 출판사의 제의가 있었나요?
"저는 기성 작가가 아닙니다. 당연히 출판사의 제의가 아닙니다. 저는 일러스트레이터나 캐릭터 디자이너가 되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동화는 캐릭터와 마찬가지로 거절되었고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캐릭터에 마음을 들이부은 상태이기에 포기를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시간이 흐른 후 다른 구상을 하게 됐습니다. 이 캐릭터를 버릴 수 없어 이야기는 시작되었습니다. 이야기가 먼저가 아니고, 캐릭터가 먼저입니다. 이야기는 제가 처한 현실을 담기 위해 혹은 현실에서 상처받은 이들을 위로하기 위해 구상되었습니다."

"힘들어도 자신을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 됐으면"

- 끝으로 우리나라 청년실업에 대한 단상과 백수, 백조들에게 한마디 해 주세요. 그리고 나름의 해결방안을 제시한다면?
"저 역시 그들과 같은 처지인데 무슨 말을 할 수 있겠습니까? 해결방안을 물으시니 웃음이 나올 뿐입니다. 그림 그린다고 이것저것 쌓아 놓고 비좁아진 방 안에서 생활하는 제가 그들에게 어설픈 이야기를 늘어놓을 처지가 못 됩니다.

저의 처지보다 나을지도 모르는데, 감히….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만, 자신이 소중하다는 것을 항상 기억했으면 좋겠습니다. 자신이 소중하지 않으면 모든 것이 파괴되기 때문입니다. 그것만 지키면 다른 것은 나쁘더라도 괜찮습니다. 책에서 말한 것처럼 인생이 조삼모사이기 때문입니다. 불안하지만 기쁘기도 합니다. 얻는 것이 있고, 잃는 것이 있습니다. 누구도 모든 것을 잃는다거나, 모든 것을 얻지 않습니다. 한쪽만 보지 마십시오.

그리고 미안합니다. 저 역시 같은 처지라 많은 위로가 될 수 있는 글을 쓰고 싶었는데, 책을 출간한 이후 잡지사 기자 분이 힘이 되는 한 마디를 발췌해달라고 했을 때, 비로소 저는 알았습니다. 이 책 속에 힘이 되는 한 마디가 거의 없음을 말입니다. 하지만 서툰 낙관주의로 또 다른 상처를 주기는 싫습니다. 저는 그것이 때로는 더 나쁘다고 생각합니다."

이혜란의 자문자답
문 : "나는 무엇을 하고 있나?"

답 : 거리에서 더러운 것을 줍고 혀 안으로 밀어 넣는 것 같다는 기분이 들 때가 많습니다. 글을 쓸 때나 그림을 그릴 때나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을 버려진 것을 주워서 꾸역꾸역 나의 양식으로 삼는다는 생각을 할 때는 내 자신 스스로에게 비위가 상합니다.

왜 이 짓밖에는 하지 못 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가족에게도 미안할 때가 많습니다. 이해하시겠습니까? 그와는 상반되게 프린트된 결과물들을 벽 가득히 핀으로 고정시켜놓고 다섯 살 박이가 사탕을 물고 있는 표정으로 혼자 좋아합니다. 이게 제가 하는 짓입니다.

대기 가득히 슬픔으로 물들다가도 대기가 일순간 아름답다는 느낌에 사로잡히는 게 저인지라 이 짓을 하는 것을 슬퍼해야 할지 기뻐해야 할지 모를 순간이 많습니다. 얼마나 깨지기 쉬운 존재인가를 생각합니다. 기다림이란 얼마나 긴지 결코 올 것 같지가 않습니다.

하지만 간혹 아름다운 문장이나 그림을 볼 때면 기다림의 지난함을 잊고 맙니다. 그리고 이런 무한한 기쁨을 허락하신 이를 위해 나 역시도 하나만은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사로잡힙니다.

그리하여 저는 쫓기는 자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어디를 가고 있는지도 모르지만 계속 해나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고여 있고 싶지 않습니다. 아름다운 것을 향한 열망 그것이 제가 하는 무엇입니다. 대기가 품고 있는 온기를 다른 이들에게도 전해 주고 싶습니다.

덧붙이는 글 | moosi 

글ㆍ그림 : 이혜란(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디자인과졸, 일러스트레이터ㆍ작가) 
펴낸곳 : 은행나무 
쪽수 : 173쪽 
책값 : 9800원 
※ 책 구입시 무시 캐릭터 팬시상품을 받을 수 있다.


무시(moosi)

이혜란 글.그림, 은행나무(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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