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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물머리에서 바라본 양수대교, 저 다리를 건너 강원도로 향하던 날들이 떠오른다.
두물머리에서 바라본 양수대교, 저 다리를 건너 강원도로 향하던 날들이 떠오른다. ⓒ 김민수
입춘이 지난 후 날씨가 많이 풀렸습니다. 아직 꽃샘추위가 두어 차례 몰아닥칠는지 모르겠지만 꽃샘추위가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몸은 이미 봄이 온 것을 직감했는지 오랜만에 쉬는 휴일임에도 불구하고 이른 새벽에 깨어납니다. 요 며칠간 출근을 할 때 안개가 많이 끼어있었고, 어젯밤 기상정보에도 안개가 많이 낄 것 같다는 예보가 있었기에 두물머리(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지점)의 안개낀 풍경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지요.

서울에 와서 제일 먼저 달려간 곳이 두물머리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하룻밤만 더 자면 서울생활 1년이 됩니다. 몸이 일찍 깨어난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차일피일 미루던 일, 해가 뜨면 또 일상의 삶으로 돌아갈 것이니 아침 전에 부지런히 다녀오라고 일찍 깨어난 것 같습니다.

두물머리의 느티나무 사이로 양수대교의 불빛이 들어온다.
두물머리의 느티나무 사이로 양수대교의 불빛이 들어온다. ⓒ 김민수
이른 새벽, 도시로 돌아오는 길은 한가한데 강원도로 향하는 차들이 분주합니다. 양수대교를 건너간다고 다 강원도를 가는 것은 아닐 터인데 그렇게 생각이 드는 것은 아마도 저의 강원도 여행길 코스이기 때문인가 봅니다. 강바람이 제법 차가웠습니다. 일찌감치 산책을 나온 노부부가 돌아가자 두물머리에는 나와 강바람, 늘 그 곳을 지키고 있는 나무들만 남았습니다.

강바람에 몸이 차가워집니다. 다행스럽게 자판기가 있어 밀크커피 한 잔으로 추위를 달랠 수가 있었습니다. 온 몸이 얼어있을 때 마시는 따스한 차 한 잔은 습관적으로 마시는 차와 다릅니다. 하얀 김이 모락모락 올라오는 커피, 종이컵일지라도 손에 전해지는 따스한 기운이 남다릅니다.

강 건너편, 희미한 불빛이 그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려준다.
강 건너편, 희미한 불빛이 그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음을 알려준다. ⓒ 김민수
강 건너편, 그 곳에도 사람이 살고 있는 흔적이 희미한 불빛을 타고 옵니다. N사진동호회 젊은이들이 최신형카메라로 중무장을 하고 몰려옵니다. 그 중 일행 하나가 "야, 여기 지겹도록 많이 보는 거기 아니냐. 저기에서 찍으면 일출 그 사진 나오고...지겹다 지겨워. 여기 뭐 찍을게 있냐? 찍어봤자 그게 그건데 날씨도 안 좋고..."합니다. 그 말에 기분이 묘했습니다.

참 차가운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속으로 "네겐 지겨울지 몰라도 내겐 너무도 소중하다"고 하며 성산일출봉을 떠올렸습니다. 차로 10분만 달려가면 되는 거리에 성산일출봉이 있을 때는 몰랐습니다. 그 곳에 있을 때에는 두물머리가 그렇게 그리웠지요. 여기서는 '10분만 가면 성산일출봉에 가는데 그 곳을 안가?'하고 거기서는 '30분만 가면 두물머리가 있는데 종종 가야지'했는데, 그게 사람의 마음이겠지요.

그 차가운 말을 내뱉은 청년은 사진기술이 뛰어날지 몰라도, 고가의 카메라일지 몰라도 따스함이 담긴 사진을 찍지는 못할 것 같았습니다.

두물머리의 상징인 느티나무, 그 나무에도 머지않아 푸른 잎이 돋아날 것이다.
두물머리의 상징인 느티나무, 그 나무에도 머지않아 푸른 잎이 돋아날 것이다. ⓒ 김민수
따스함, 그것은 생명을 살리는 일을 합니다. 우리 사람들과의 관계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자연도 그러합니다. 대지가 따스해지고 햇살이 따스해지면 얼었던 얼음이 녹고 이내 푸름의 행렬이 이어지듯 우리네 사람살이도 그러했으면 좋겠습니다.

어디에나 동전의 양면처럼 긍정적인 면이 있는가 하면 부정적인 측면도 있습니다. 완벽하게 100% 부정인 것도 긍정인 것도 없을 것입니다. 문제는 무엇을 보고, 무엇을 말하느냐일 것입니다. 긍정의 말, 즉 따스한 말은 사람을 살리고 자기를 살립니다. 그러나 부정의 말, 즉 차가운 말은 상대방을 죽이고 결국 자기도 죽입니다. 자화자찬이 아닌, 따스한 말들이 많은 세상이면 좋겠습니다.

봄을 맞이한 듯 녹은 강과 아직 녹지 않은 겨울강이 공존하고 있다.
봄을 맞이한 듯 녹은 강과 아직 녹지 않은 겨울강이 공존하고 있다. ⓒ 김민수
춘강(春江)과 동강(冬江)이 공존하고 있습니다. 아직도 얼음을 간직한 그 곳까지도 봄의 기운이 가득할 즈음이면 버드나무의 축축 늘어진 가지에도 푸른빛이 돌고 새순이 돋아나겠지요. 공존,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더불어 함께 있으면, 그것은 참 좋은 것입니다.

사진사들이 하나 둘 몰려오고, 또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사진사들이 하나 둘 몰려오고, 또 썰물처럼 빠져나간다. ⓒ 김민수
사진을 찍는 분들이 제법 많습니다. 저마다 렌즈를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보는 맛을 아는 분들이겠지요. 그들의 뷰파인더에 비춰진 세상은 어떤 세상일까 궁금합니다.

이른 새벽부터 저속셔터를 많이 사용한데다 날씨가 추워서 그런지 배터리가 다 되었습니다. 그러나 방법은 있지요. 배터리를 꺼내서 따스하게 해주는 방법입니다. 손으로 비벼주고, 호주머니에 넣고 다시 장착을 하면 한 두 컷은 더 찍을 수 있답니다. 이렇게 해서 10컷 이상을 더 찍었으니 성공한 셈이죠. 이하의 사진들은 그렇게 방전된 이후 손으로 배터리를 비벼가며 열을 내서 찍은 사진들이랍니다.

안개와 여러가지 기상상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일출을 보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담은 느티나무.
안개와 여러가지 기상상태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면서 일출을 보지 못하고 돌아오는 길에 담은 느티나무. ⓒ 김민수
기다려도 기다려도 해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시계를 보니 여느 때 출근길, 백미러에 비춰진 각진 건물사이로 해가 떠오를 시간이 훌쩍 지났습니다. 그래도 제법 먼 길을 달려왔는데 서운했지만 발길을 돌릴 수밖에요. 그래도 아쉽고 또 아쉬웠습니다.

아쉬워 잠시 강물에 앉아있는 시간, 서운할까 해가 인사를 한다.
아쉬워 잠시 강물에 앉아있는 시간, 서운할까 해가 인사를 한다. ⓒ 김민수
잠시 강가로 내려가 차가운 강물에 손을 담가봅니다. 그런데 그때 구름 사이로 해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와! 해다!" 그러나 위에서 밝혔듯이 배터리가 다 되어 담지 못할 것 같습니다. 부지런히 배터리를 꺼내 비비고 또 비비며 한 장 한 장 찍는 사진, 나에겐 소중한 사진으로 남을 것 같습니다.

그렇게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새롭게 맞이한 하루, 그 하루는 축복의 시간이다.
그렇게 또 하루가 시작되었다. 새롭게 맞이한 하루, 그 하루는 축복의 시간이다. ⓒ 김민수
오늘 하루, 이렇게 강바람을 맞으며 두물머리에서 시작했습니다. 문득 IMF시절, 잠시 실직을 했을 때 한강으로 출퇴근을 하며 '강바람'이라는 닉네임을 얻었던 시절이 떠올랐습니다. 기대했던 일출을 만나지는 못했지만, 기대했던 물안개도 만나지 못했지만 오늘 그 곳에서 서서 아침을 맞이했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합니다.

덧붙이는 글 | 2007년 2월 11일 새벽에 두물머리에서 담은 풍경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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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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