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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란덴부르크 문
ⓒ 이현민
1989년 11월 9일, 마침내 분단의 장벽이 허물어 졌다. 같은 민족이 동·서로 나뉘어 서로에게 총부리를 겨누었던 베를린 장벽에 숨통이 트인 것이다.

독일의 통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1971년 동독에선 에리히 호네커가 집권하면서 이전보다 합리적인 정책이 실시됐고, 서독에서는 빌리 브란트가 동방정책을 펼치면서 정치적 관계가 부드러워지게 되었다.

1985년 구소련에서는 미하일 고르바초프가 집권하면서 개혁·개방 정책을 실시하지만, 동독정부는 이를 거부하였다. 그러나 1989년 국경통제가 느슨해지자 동독인들이 대거 서독으로 넘어가게 되고 이런 와중에 수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기도 하였다.

통일은 정말 새벽처럼 다가왔다. 호네커의 실각으로 그 뒤를 이은 정권이 서독으로의 직접여행을 허락한다는 발표를 하였다. 그런데 이를 국경의 즉각적인 개방으로 잘못 알아들은 수 천 명의 동독 주민들이 그날 밤 국경을 넘었다. 그리고 며칠 동안 수 백 만 명이 뒤를 따랐다. 결국 베를린 장벽은 무너져 버렸다.

길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 아니다. 누군가가 처음 발자국을 남기고, 뒤를 이어 많은 이들이 따르면 길이 되는 것이다. 통일도 우리 마음속에 있다. 환경도 '생명과 평화의 공동체'도 이미 시작되었다. 다만 우리가 몰라서 헤매고 있거나, 함께 따를 용기가 없어 주저하고 있을 뿐이다.

분단과 통일의 후유증 앓고 있는 '독일'

ⓒ 이현민
베를린 역시 런던에 못지않게 큰 건물과 유서 깊은 장소, 박물관, 갤러리, 공연장 등으로 가득한 도시이다. 상대적으로 큰 건물의 수나 위용에 있어서 런던에 미치지는 못한다. 그러나 많은 유럽인들이 베를린을 찾는 가장 큰 이유는 음악과 문학, 미술 등 문화의 도시이기 때문이다.

Museumimsel(박물관 섬)이라 불리는 곳에는 구 국립박물관, 신 국립박물관, 터키의 유물을 아예 통째로 뜯어다 놓은 페르가몬 박물관, 보데 박물관이 몰려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에서부터 고호, 피카소의 작품을 볼 수 있는 국립미술관, 구 국립미술관, 신 국립미술관, 유태인 박물관, 영화 박물관, 구 동독의 유물을 볼 수 있는 슈타치 전시회, 독일 역사박물관, 체크 포인트 찰리 전시관 등.

헤아릴 수 없는 예술의 현장이 있다. 게다가 베를린 필하모니 콘서트홀까지(비록 카라얀은 없지만). 그러나 굳이 이런 곳이 아니어도 브란덴부르크 문, Bundestag(제국의회 의사당)에서도 웅장하고 화려한 건축물을 만날 수 있다.

그러니 일주일 이상을 베를린에 머물면서 발품을 팔고도 모자랄 수밖에. 한편으로는 한반도의 현실 때문인지… 곳곳에 남아있는 분단의 흔적과 상처를 자꾸 찾게 되었다. 어머님 고향이 이북인 까닭에, 어렸을 적 남북이산가족 찾기를 보시면서 눈물 흘리시던 모습이 가슴에 박혀, 성장한 이후에도 통일은 항상 가슴에 응어리져 남아있었다. 게다가 임수경과 문규현 신부님, 문익환 목사님의 방북 등 통일과 관련된 일들이 주위에서 터지면서 더더욱 마음 한켠에 업으로 남아있다.

▲ 독일의회의사당 건물 옆 모퉁이에 있는 분단의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곳이다. 촛불을 꺼뜨리지 않고 자리를 지키며 오가는 이들에게 지난 분단의 아픈 상처를 알리고 있다.
ⓒ 이현민
▲ Checkpoint Charlie
ⓒ 이현민
▲ Checkpoint Charlie 관련 독일 옛 모습 사진
ⓒ 이현민
독일 역시 분단과 통일의 후유증을 앓고 있다. 장벽을 넘는 이들에게 박수로서 환호하였던 서독 사람들 역시 지금은 그다지 달갑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통일 당시에는 10년 정도이면 동·서독이 거의 비슷해질 것이라 예상하였으나 실제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우리나라 교과서에도 등장하였던 '라인강의 기적'은 사라졌고, 450만이 넘는 실직자는 해결해야 할 우선의 문제가 되었다. 특히 구 동독 지역의 경제문제는 더욱 심각하다. 드레스덴을 포함한 이 지역에서 인종차별주의가 심하다는 것이다.

한 예로 2003년 신나치 활동을 금지시키려는 중앙정부의 시도가 헌법재판소에 의해 위헌으로 판정이 나면서 전국의 보수우익 단체들에게 날개를 달아주었고, 이 지역에서는 지난 지방선거에서 보수우익이 대거 집권하게 되었다.

베를린에서 친구가 배웅을 하면서 동부지구에 가면 조심하라고 신신당부했다. 공산주의 사회였던 지역에 네오나치즘이라니…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체크 포인트 찰리(Checkpoint Charlie)의 모습이다. 지금은 당시 검문소의 모습만이 남아있고 주위는 기념관을 짓느라 공사가 한창이다. 당시 이곳은 동·서를 출입하는 검문소로 사진에서만 그 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에너지 정책의 상징,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과 태양광발전

▲ 길을 찾다 우연히 발견한 베를린 주재 북한 대사관
ⓒ 이현민
▲ 독일 연방의회(들어가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이 보인다.)
ⓒ 이현민
1990년 12월 2일 자정, 독일의 통일을 의결하였던 곳이 현재 독일 연방의회 의사당(국회 의사당)이다. 베를린 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제국의회 의사당(독일 연방의회 의사당 Reichstag, Bundestag)은 아침 일찍 갔는데도 30분 이상을 줄을 서서 기다려야 했다. 현관에서 검색을 마치고 엘리베이터로 옥상에 있는 대형 유리 돔으로 올라갔다. 나선형으로 된 통로로 꼭대기까지 올라가니 의사당 건물뿐만 아니라 베를린 시내가 한 눈에 보인다.

독일을 대표하는 건물이자 에너지 정책의 상징인 이곳은 독일이 이산화탄소 배출을 25% 감축(1990년 기준)하는 것과 함께 재생가능 에너지를 2030년 30%, 2050년 50%로 증가시키기 위해 새로 짓는 모든 공공건물에 재생가능 에너지를 의무적으로 설치하도록 하는, 이른바 '태양 정부청사구역' 정책을 수립하고 만장일치로 통과시킨 곳이다.

이에 따르면 재생가능에너지가 건물 전체 소비량의 15% 이상을 의무적으로 차지하여야 한다. 이러한 정책을 중앙정부가 먼저 몸소 실천했다. 의회의사당과 수상청사, 대통령 궁, 교육부, 경제부 등 정부청사 등에 태양광 시설을 설치한 것이다.

독일 연방의회지붕은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을 재건하면서 이전처럼 지붕 위에 유리돔을 세웠는데, 영국의 노먼 포스터가 복구한 것으로 독일의 상징이 되었다.

▲ 독일 연방의회 옥상에 설치된 돔. 우리나라 국회도 모양만 유사한 돔이 있기는 하다.
ⓒ 이현민
▲ 독일 연방의회 옥상에 설치된 돔 내부 모습
ⓒ 이현민
연방의회 건물은 태양전지판으로 뒤덮여 있었다. 최대발전용량 120kW로 연간 9만kWh를 생산한다. 이와 함께 유리돔으로 들어오는 햇빛을 간접광으로 바꾸어 건물 안에 있는 본회의장을 비추도록 되어있다. 또 건물에는 바이오디젤을 이용하는 열병합발전기를 설치해 의사당 건물에서 사용하는 전기와 난방 등 에너지를 전부 자급하고 있었다. 맞은편의 수상청사는 최대발전용량 150kW로 연간 12만kWh를 생산하고 있다. 의사당에서 보이는 정부건물 곳곳에도 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독일 교통의 중심인 중앙역의 유리지붕에도 태양전지판이 깔려있다. 투과형 전지판을 유리지붕에 붙여서 전지판을 통과한 햇빛이 건물 안을 비추도록 하였다. 중앙역의 최대발전용량은 330kW이다.

대통령 궁은 의사당 건물과는 상당히 떨어져 있다. 철통같은 경비가 서있는 우리나라와는 다르게 길가에 자리 잡고 있었고, 그 앞을 지나는 시민들이나 마당에 경비를 서고 있는 이도 혼자서 한가로이 거닐고 있었다. 이곳에도 최대발전용량 44kW의 태양광 발전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것으로 대통령 궁 전기수요의 약 20% 정도를 충당한다고 한다. 정부 건물 중에서 가장 먼저 태양광 발전시설을 설치하였다고 한다.

역사에 따라 변하는 베를린 인민궁전

▲ 전기수요의 약 20% 정도를 태양광 발전으로 충당하는 대통령 궁
ⓒ 이현민
1943년 11월 22일 영국군의 폭격으로 무너져 버리고 서쪽 탑만이 남아있는 교회는 전쟁의 상처를 간직한 채 기념관으로 쓰이고 있다. 교회 건물은 그 자리에 새로이 현대식으로 지어져 있다.

기념관 안에는 예전 교회의 사진과 폭격당시 한쪽 팔이 잘려나간 예수상이 서 있다. '혀 잘린 하느님'이라는 민중가요가 생각난다. 교회 바깥에는 크리스마스 장(Weihnachtmarkt)이 서 있어 묘한 대비를 이루고 있다. 이 교회가 있는 근처에 Kurfuerstendamm(줄여서 Ku'dam이라 부른다) 이라 불리는 번화가가 있다. 우리로 보면 명동과 같은 거리이다.

베를린 알렉산더광장(Alexanderplatz) 인근에 마르크스(Marx)와 엥겔스(Engels)의 동상이 서있다. 마르크스 엥겔스 광장 뒤에 있는 인민궁전, 옛 동독의 의회를 비롯한 문화시설이 들어 있던 건물은 지금 공사 중이 아니라 철거중이다. 한 번에 철거하면 수압으로 인해 인근 건물에 문제가 생겨 천천히 조각조각 뜯어내고 있다.

▲ 마르크스 엥겔스 동상
ⓒ 이현민
▲ 공사중인 옛 인민궁전
ⓒ 이현민
1699년 완성된 샤를로텐부르크 성(Schloss Charlottenburg) 역시 1943년 폭격을 당했지만 아름다운 바로크 양식의 궁전으로 완벽하게 재건되었다. 프리드리히황제의 겨울궁이 가장 화려하다. 이와 함께 포츠담에는 상수시 궁전(Schloss Sanssouci)과 신궁전(Neues Palais)이 있다. 왜 불어이름이냐 물으니 옛날 독일 귀족들은 불어를 썼다고 한다. 1747년에 서운 로코코 양식의 궁전으로 내부가 화려하고 장엄하다. 두 궁전의 거리가 2km나 되고 공원자체도 십자로 형태의 미로처럼 나 있었다. 이곳의 백미로 알려진 중국관(Chinesisches Haus)을 들어가 보려 했으나 겨울에는 문을 열지 않았다. 볼테르의 얼굴을 한 원숭이 조각이 있다는데…. 쩝!

▲ 신 궁전
ⓒ 이현민
▲ 상수시 궁전
ⓒ 이현민

덧붙이는 글 | * 다음 기사에는 베를린의 호수와 공원, 숲길, 놀이터 등에 대해 기사를 작성할 예정입니다. 

* 생태지평연구소(ecoin.or.kr) 운영위원이자, 부안 시민발전소 소장인 이현민은 농사일이 끝난 지난 11월부터 영국 런던 - 독일 베를린 - 체코 프라하 - 독일 프라이부르크 - 라이프찌히 등 유럽 각지를 돌며, 교통 - 에너지 - 놀이 - 공원 - 여가 등 우리의 모든 일상을 통해 유럽은 어떤 생태적 변화를 추구하며, 큰 흐름을 맞이하고 있는지 농부의 시선으로 찾아가보는 여행을 하고 있습니다. 이후 농부가 바라본 유럽과 환경에 대한 소박한 시선의 연재는 계속 진행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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