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2월 8일 전북지역 시민사회단체들은 전주MBC 이진영 전 아나운서(사진 가운데) 복직을 요구하는 공동기자회견을 열었다.
ⓒ 전국여성노조 전북지부
"이진영 아나운서를 원직에 복직시켜라!"
"비정규직의 비참한 현실을 아는가!"


지난 8일 오전 10시30분 전북지방경찰청 기자실. 전북지역 26개 시민사회단체들이 이례적으로 지역언론사를 겨냥한 기자회견을 연 현장에서 쏟아낸 말들이다.

이날 기자회견은 경찰청 출입기자들 앞에서 시민사회단체 관계자와 이진영 전 전주MBC 아나운서 등이 참석한 가운데 1시간가량 진지하게 진행됐다. 이진영 전 아나운서가 마이크대신 자신이 다니던 회사를 향해 '공영방송답게 비정규직 고용안정과 차별해소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라'는 구호가 새겨진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선지 꼭 한 달 만이다.

이들 단체가 주장한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전주 MBC는 이진영 아나운서를 즉각 원직에 복직시키라'는 것이다. 또 '전주 MBC는 성차별 발언 관련 이진영 아나운서에게 사과하고 공영방송답게 비정규직 고용안정과 차별해소를 위한 대책을 수립하라'는 내용이다.

경찰청 기자실은 주로 1~5년차의 날카롭고 빛나는 눈빛을 가진 사회부기자들이 포진해 있는 곳이다. 그 어떤 권력과 돈보다 펜이 강하다는 자부심을 지니고 있을 연차들이다. 상식적으로 놓칠 리 없는 뉴스소스였다.

그런데 다음날. 그 많던 기자들의 글발과 음성이 지면과 영상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늘 차가운 머리보다 뜨거운 가슴으로 영혼이 담긴 기사를 쓰라던 선배들의 마음에 차지 않은 때문일까. 평소 같으면 사진과 함께 큼지막하게 전달됐을 메시지였건만, 이날 20개가 넘는 시민사회단체들의 공동기자회견 내용의 기사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었다.

10개가 넘는 지역 일간지들과 방송사들은 1단기사로도 다루지 않았다. 이에 대해 당사자인 이진영 전 아나운서는 물론 시민사회단체 관계자들은 "예상은 했지만 어느 한 곳도 기사를 내보내지 않은 게 오히려 민망할 정도"라고 말한다.

가지 많은 신문사가 방송사에 보험을?

"기자회견 당시 자리를 함께 했던 많은 기자들이 사진도 찍고 취재도 했는데 기사는 눈 씻고 찾아봐도 단 한 줄도 보이질 않았다"며 이날 참여단체 관계자들은 허탈한 심경을 토로했다. 심지어 "엿(광고나 촌지)으로 바꿔 먹을 기사거리도 아닌데 어디로 사라진 걸까"라며 의아해 한다.

두 부류다. 내부 게이트키핑 과정에서 기사가 원천 봉쇄된 케이스. 또 하나는 회사차원의 보류조치다. 소위 보험에 가입한 것이다. 당시 기자회견에 참석했던 한 지역일간지 기자는 "분명히 취재를 했고 편집회의 전에 기사메모도 냈는데 기사화가 이뤄지지 않았다"며 "데스크에서 기사를 뺐던지 아니면 어떤 모종의 압력이 개입됐을 소지가 크다"고 불만을 표출했다.

또 다른 신문사 기자는 "비정규직 문제가 마치 방송사 아나운서에 국한돼 공론화되는 것이 마뜩치 않았을 것"이라며 "방송사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훼손시키는 기사를 빼줬으니까 다음엔 우리 신문사나 모기업이 잘못해도 봐주겠지 하는 모종의 보험심리가 작용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가지 많은 신문사에 언제 불어 닥칠지 모를 강풍에 미리 대비하자'는 해괴한 논리다. 막내다 보니 기사가 어떻게 빠졌는지 내심 기분은 나쁘지만 강력하게 항변을 못하는 처지임을 못내 아쉬워하는 기자도 있다.

이처럼 이진영 전 전주MBC 아나운서가 언론사의 비정규직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거리로 나선 지 한 달이 넘었지만 시민단체와 당사자 그리고 그들에 의해 알려진 시민들 외엔 정작 언론은 관심이 없다.

언론의 '침묵 카르텔', 영원할까?

이른바 '대안언론' 또는 '독립언론'을 지향하는 인터넷과 월간 지역매체들이 이 문제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을 뿐 대부분 지역 일간지와 방송사들의 침묵은 계속되고 있다. '지역인터넷 대안신문' <참소리>와 '독립언론'을 기치로 내건 월간 <열린전북>이 이진영 전 아나운서의 문제를 특집으로 다뤄 오히려 눈길을 끈다.

스스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하면서도 언론계 내부의 고착화된 침묵의 카르텔은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자연히 체득하고 만다. 동종업계 비판에 대해서만큼은 철저하게 무뎌지는 습성이 아비투스(Habitus, 습속)와도 같다. 부르디외는 행위자들이 가지는 취향을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어떤 것이 아니라 행위자들이 스스로의 경험과 생활 속에서 획득한 후천적인 것으로 보았다.

오늘날 지역 언론계 현실은 사회학의 중심 개념 가운데 하나인 아비투스의 변화된 또 다른 메커니즘과도 같다. 언론비판 기능이 다양화되고 점점 채널이 확산되면서 언론사들끼리 상호비판을 금기시하는 '침묵의 카르텔'이 해체돼 가고 있지만 중앙이나 지역이나 기득권을 고수하려는 주류매체들 간에 상존하는 카르텔은 습속에 다름 아니다.

최근 <시사저널>이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지만 그토록 언론의 자유를 외치던 조중동을 비롯한 주요 언론사들은 꿀 먹은 듯 아무 말도 없다. 이른바 재벌권력에 길들여진 탓이다.

언론이 악의적인 침묵으로 일관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이론세계에서 귀한 대접을 받는 언론비판이 현실세계에선 전혀 적용되지 않는 경우가 있으니 그게 바로 동종 언론사간에 부르짖는 역지사지(易地思之)라는 걸 독자나 시청자들이 모를 리 없다.

닭 잡는 칼로 소 잡으려니 무섭나?

▲ 평일 오후 전주객사 주변에서 피켓시위를 벌이는 시민단체와 이진영 전 아나운서에 많은 시민들의 시선이 집중되고 있다.
ⓒ 열린전북
쉽게 말하면 "같은 처지에서 누가 누굴 욕하고 때릴 수 있겠는가?"라며 침묵하는 경우지만 따지고 보면 참으로 고약하고 얄궂은 처지에서 이 같은 관행이 통용되고 있음은 불행이 아닐 수 없다. 이는 매우 우호적인 언행 같지만 실제론 독자와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멀게 하고 나아가 언론의 본질을 훼손시키는 업보가 될 수 있다.

정치인과 관청을 때리는 일은 곧 잘하면서 왜 동종언론을 비판하는 일은 어렵고 무섭게 생각하는지, 닭 잡는 칼로 소 잡으려니 일단 두려워서 못하겠고, 그래서 늘 지역은 당해도 싸다는 소릴 듣는 건 아닌지. '소통불능' 상태가 한 개인이나 소수집단의 문제라기보다는 언론계 내부의 문제는 아닌지. 지역언론 개혁의 '뇌관'은 바로 '침묵의 카르텔'이 아닌지 곰곰이 성찰해 볼 때다.

그나마 지역의 시민사회단체들이 릴레이 성명과 피켓시위를 통해 길거리로 내몰린 여성아나운서와 비정규직 종사자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어 넣고 있다. 이들은 특히 전주MBC에 성의 있는 대화 자세를 요구하고 있지만 전주MBC를 비롯한 지역의 주류 언론매체들은 굳게 입을 다물고 있다.

무려 한 달 동안이나. 마치 '기자 이전에 침묵하는 인간이 되어라'는 주술에 걸린 것처럼.

"네가 무슨 독립군이냐?, 이런 문제가 어제 오늘의 일이냐?"라고 뻔히 욕먹을 줄 알면서도 이 글을 쓴 이유는 후배들보기에 너무도 부끄럽고 자괴스러워서이다. 정작 언론계 내부에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은 보지 못하고 사회적 현상만을 나무라고 훈계하고만 있으니 얼마나 손가락질 하겠는가.

태그: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정의가 패배하고, 거짓이 이겼다고 해서 정의가 불의가 되고, 거짓이 진실이 되는 것은 아니다. 이성의 빛과 공기가 존재하는 한.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