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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일 법무부 여수출입국관리사무소 외국인 수용시설 화재로 27명이 죽거나 다치는 참변이 발생한 가운데 국내 외국인 보호시설의 관리 소홀과 이주노동자에 대한 비인권적 처우 등이 주목받고 있다. <오마이뉴스>는 13일 이주노동자 아노아르 무하마드(36·남·방글라데시)씨를 통해 들은 보호시설 상황을 1인칭의 경험담으로 재구성했다. 그는 지난 2005년 5월 청주보호소로 연행돼 1년간 머물렀다. <편집자주>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1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이주노동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여수 외국인보호소 화재참사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이 13일 오후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이주노동자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렸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13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열린 '여수 화재 참사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아노아르 무하마드씨.
13일 서울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앞에서 열린 '여수 화재 참사 규탄 기자회견'에 참석한 아노아르 무하마드씨. ⓒ 오마이뉴스 권우성
방화? 이래저래 미심쩍다. 원칙적으로 보호소에 들어갈 때 입고있던 옷을 반납하고 보호소에서 주는 옷만 입어야 한다. 소지품까지 모두 반납해야 하는데 라이터를 소지하고 있었다니….

도망가기 위해 불을 질렀다는 것 또한 이해할 수 없다. 어차피 보호소 안에 불이 나도 도망갈 구멍이 없기 때문이다. 창문은 이중 쇠창살로 막혀있고, 굳게 잠긴 철문을 열 수 있는 열쇠는 1층 관리실뿐이다. 갇혀있는 사람의 답답한 심정이야 십분 이해하지만, 방화를 저지를 만큼 그 중국 동포는 어리석었던 것일까.

지켜지지 않은 원칙이 라이터 소지 뿐이겠는가. 내가 청주보호소로 잡혀갈 때도 원칙은 없었다. 왜 잡혀가는지는 알고 있었지만, 아무도 내게 어디로 가는지 설명해주지 않았다. 20여명의 출입국관리소 직원들은 아무 설명 없이 수갑을 채웠다.

나는 2005년 5월 13일 새벽 1시께 지하철 2호선 뚝섬역에 내리자 곧바로 경찰에 잡혔다. 2002년 월드컵 당시의 1년 등록 상태를 제외하고, 입국한 해인 1996년부터 미등록 상태였기 때문에 잡혀가는 이유는 알고 있었다.

좁은 방엔 자물쇠에 이중 쇠창살까지

1년간 갇혀있었던 경험에 비춰볼 때, 청주보호소는 이름을 바꿔야 한다. '청주교도소'로 말이다. 그 안에서 이주노동자들이 받은 대우는 보호가 아니라 통제·감시·인권침해가 더 많았다. 원칙은 그 안에서도 지켜지지 않았다.

일단 들어가자마자 온갖 욕을 들으며 옷을 갈아입어야 한다. 소지품도 압수당한다. 지문도 찍어야 한다. 서류는 한국어·중국어·영어로만 적혀 있는데, 질문은 사절이다. 머뭇대다간 욕만 더 먹는다.

7명이 써야 할 크기의 방에서 12명 정도가 생활한다. 15명 정원인 방에는 22명이 들어가야 했다. 그마저도 작은 창문이 이중 쇠창살에 막혀 있었고, 방문은 커다란 자물쇠 2개로 잠겨있다. 화장실과 방의 경계는 90㎝ 정도의 칸막이가 전부다.

그 곳은 잘 공간뿐만 아니라 음식도 턱없이 모자랐다. 그래도 시설이 열악하고 식사가 부실한 것은 보호소 '예산' 문제라고 치자. 이것 말고도 문제는 많다.

방마다 설치된 감시 카메라는 화장실 '볼 일'까지 관찰한다. 매일 30분 배정된 운동시간도 안 지켜지기 일쑤다.

하지만 무엇보다 보호소 내에 부족한 것은 감독관들의 이해력이다. 수감된 이주노동자 대부분은 집으로 돌아가고 싶어도 가지 못하는 신세. 체불임금을 못 받았거나, 산재처리 등을 기다리지만 보호소에 묶인 처지에서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누구라도 붙잡고 물어보려고 하면 짜증부터 낸다. 욕도 들어야 한다. 상담실로 끌려가 맞고 돌아오는 친구들도 있었다.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쌓이기만 한다. 중국 친구들은 단식 투쟁까지 불사했다.

11일 전라남도 여수시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불이 나 외국인 27명의 사상자가 생긴 가운데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여수 성심병원에서 한 외국인이 조문을 마치고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11일 전라남도 여수시 법무부 출입국관리사무소에서 불이 나 외국인 27명의 사상자가 생긴 가운데 합동분향소가 마련된 여수 성심병원에서 한 외국인이 조문을 마치고 침통한 표정으로 앉아 있다. ⓒ 광주드림 안현주
이번 화재로 처우 달라질 수 있을까

보호소에 들어가기 전에는 정말 들어가서 보호를 받는 줄 알았다. 각자 고국으로 돌아가기 전 신분이 확실하지 않은 이들이 보호받는 곳 말이다. 미등록 상태에서 집 앞 구멍가게도 마음 편하게 가지 못하는 신세라면 차라리 보호소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그 곳은 감옥이었다. 무시당하고, 억압당했다. 늘 불안했다. 좁은 면적 안에서 감시당하는 것은 짜증 그 자체였다.

안 되겠다 싶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접수했다.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노동조합 설립을 위한 법적 조치도 밟았다. 병원 검사 결과 우울증 증세까지 보여, 바깥의 친구들은 부랴부랴 보증금 500만원을 모아 나를 잠시 빼내줬다.

하지만 미등록 이주노동자 합법화 요구에 대한 정부의 '무시정책'은 변함이 없었다. 보호소 밖이나 안이나 이주노동자들이 억압받는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다. 이번 화재로 이주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가 주목받고 있지만, 이마저도 '반짝' 하고 끝나지는 않을지.

과연 우리는 범죄자였을까. 이주노동자 40만 시대에, 합법적 체류기간을 넘겨서도 한국에 머무르는 것이 그토록 큰 잘못일까.

시간은 가고, 세상은 변함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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