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멍핀의 다락논. 규모의 엄청남에 말문이 막힌다. 저 논에 깃들어 하니 사람들이 산다.
멍핀의 다락논. 규모의 엄청남에 말문이 막힌다. 저 논에 깃들어 하니 사람들이 산다. ⓒ 최성수
불량식품과 낙서가 있는 멍핀의 초등학교

멍핀(勐品)의 라이스 테라스 내려가는 가파른 언덕에는 하니족 사람들이 마치 매달리듯 살고 있다. 다닥다닥 붙은 집은 아랫집 처마와 윗집 마당이 붙어 있다. 집들도 서로 등 기대고, 어깨 걸고 살아가는 것 같다.

좁은 언덕길을 내려가는데, 어디선가 팔짝팔짝 뛰며 노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돌아보니 제법 널찍한 어느 집에서 나오는 소리다. 집 앞에는 감자를 볶아 파는 아주머니도 있고, 조잡스러운 먹거리와 학용품들을 늘어놓은 아주머니도 있다. 아들인지, 아직 학교도 들어가지 않았을 나이쯤의 아이도 같이 물건을 판다.

좁디좁은 골목에 웬 장사치인가 궁금해 하며, 건물 안을 들여다보니 여자 아이 몇이서 고무줄넘기를 하며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 아이들 주변으로 다른 아이들도 신이 나서 뛰어놀고 있다. 웬 집에서 이렇게 많은 아이들이 놀고 있담? 의아해서 집 대문을 다시 쳐다보니, 거기 글씨가 가로로 길게 써 있다. 맹품소학교다. 허름한 외양에 마당처럼 좁은 곳이지만, 아이들은 신이 나서 운동장을 가로지른다.

학교 앞 좁은 골목길에 있는 노점상은 우리로 치면 불량식품 가게쯤 될까? 몇몇 아이들이 그 노점상에 몰려와 군것질을 한다. 군것질이라야 기껏 감자 볶은 것이나 멀건 죽 따위다. 그래도 그것을 사 먹는 아이는 형편이 좀 나은 편인지, 다른 아이들은 그저 입맛을 다시며 구경만 할 뿐이다. 마치 내가 서울로 전학 왔던 1960년대 후반의 어느 날로 돌아간 것 같다.

맹품 초등학교 앞 철제 대문 위의 낙서. 아이들은 어디나 같다.
맹품 초등학교 앞 철제 대문 위의 낙서. 아이들은 어디나 같다. ⓒ 최성수
학교 대문과 마주선 철제 대문에는 아이들의 낙서가 가득하다. 친구 이름을 적어놓은 것에서부터 만화처럼 얼굴을 그려놓은 낙서까지, 그 모든 것이 오래 전 내가 겪었던 풍경을 고스란히 떠올리게 한다. 나는 한동안 그 낙서를 바라보며 서 있었다. 거기 어디서 '철수 바보'나 '얼레리 꼴레리 영훈이랑 미정이랑 사랑…' 같은 말을 찾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멍핀 역시 라이스 테라스로 이름 난 곳이다. 멍핀에서 바라보는 계단식 논은 그저 말문이 막히게 한다. 내려다보이는 모든 곳이 물 가득 찬 논이다. 그 아득한 논에서 아이들이 자란다. 아이들은 논의 옆구리쯤에 해당되는 초등학교에서 뛰어놀고, 배우고, 그리곤 자라서 다시 그 논에 들어가 땀 흘리며 이승의 한 시절을 보낼 것이다.

나는 멍핀의 계단식 논을 바라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우리는 너무 바쁘게 살고 있다고, 저 다락논 한 귀퉁이에 들어가 발 걷어 부치고 모 심으며 살아도 괜찮겠다고, 마흔 넘으면 세상은 다 같은 것이라고, 내가 그동안 지니고 살았던 숱한 것들, 학벌이니 사회적 지위니, 명분이니 하는 것들은 이 계단식 논 앞에서 아무 것도 아니라고, 그저 바람처럼, 햇살처럼, 아니 하니족 마을의 짙은 안개처럼 살다 가도 아름다운 것이 이 세상이라고.

그런 생각으로 바라보는 멍핀의 다락논에는 아까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팔짝팔짝 줄넘기 하던 아이들의 순하고 착한 얼굴이 얼비쳐 보이는 것도 같았다.

사람과 자연이 서로 깃들어 사는 하니 민속촌

길 가 허름한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길 가에 나와 건너편 산을 바라본다. 거기도 다락논이다. 논 끝에는 안개가 뭉실뭉실 피어오른다. 안개는 어디서 일어나 어디로 가는 걸까?

하니족 마을의 안개는 잠시만 방심을 해도 그 틈을 금방 비집고 든다. 이젠 걷혔겠지 싶어 고개를 한 번 돌렸다 다시 바라보면, 어느 새 안개다. 언제 제 모습을 보였느냐는 듯, 안개는 빈 자리마다 금방 파고든다.

아래서 바라본 다락논. 저 아득한 높이까지 논을 만든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아래서 바라본 다락논. 저 아득한 높이까지 논을 만든 사람들의 마음은 어떤 것이었을까? ⓒ 최성수
그 안개가 잠시 멈춘 사이, 재잘대는 아이들 소리가 들린다. 부드럽게 굽어진 돌담길을 따라 학교가 끝난 아이들이 돌아오는 길이다. 카메라를 들이대자 얼른 포즈를 취해 준다. 그리고는 손을 내민다. 돈을 달라는 뜻인가?

여기 아이들도 이렇게 세상에 물들어 버리고 말았구나, 그런 생각을 하는데, 아이들이 손으로 입을 가리킨다. 먹을 것이 있으면 달라는 말이다. 나는 내 지레짐작이 부끄러워진다. 일행 중 하나가 마침 가지고 있던 초콜릿을 나누어주자 아이들 얼굴이 환해진다.

콧노래를 부르며 아이들이 사라진 길 너머로 또 안개가 밀리기 시작한다. 저 아이들이 맞게 될 하니족의 미래는 어떤 모습일까? 자연에 깃들어 살던 사람들이, 그 자연을 우습게 보게 만드는 외부적 요인에 의해 파괴되고 나면, 그들의 삶은 얼마나 팍팍하고 허망할 것인가? 나는 새삼 상업 자본이 무서워진다.

자본은 모든 것을 파괴해 버리리라. 돈이 안 되는 논 대신 대규모 차 밭이 들어서고, 논농사를 짓던 하니 사람들은 차밭의 일용 노동자가 되거나 혹은 자신들이 대대로 깃들어 살던 땅을 버리고 돈이 흔한, 그러나 더 팍팍한 세상으로 떠나리라. 그래도 생은 아름다운 것일까? 나는 그런 덧없는 생각에 잠겨 하니족 아이들이 사라진 길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런 발길을 재촉해 하니족 민속 마을로 간다. 골짜기 저 편은 여전히 안개다. 그 안개 사이로 난 길을 걸어 하니족 민속 마을 가는 길은 아름답다. 수로를 따라 졸졸졸 물 흐르는 소리가 들리고, 부드럽고 아늑한 곡선을 지닌 계단식 논들이 반기는 길이다.

하니족 민속마을 가는 길의 논. 부드러움과 아늑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하니족 민속마을 가는 길의 논. 부드러움과 아늑함이 그대로 느껴진다. ⓒ 최성수
내려다보는 계단식 논이 말문을 막히게 할 정도로 어마어마하다면, 곁에서 보는 계단식 논은 금방 그 안에 들어가 첨벙거리며 모를 쪄내도 될 만큼 친근하다. 그러다보면 어디쯤에서 들밥 내오는 구수한 소리가 들릴 법도 하다. 촘촘히 돌을 박아 만든 길도 재미있다. 전에 샹그리라에 갈 때, 도로에 돌을 박아 넣던 사람들을 보며 놀라워한 적이 있는데, 이 길에도 그렇게 사람들은 돌을 박아 넣어 포장을 한 셈이다.

적당히 발을 찔러주는 돌들과, 물 가득한 논의 아름다움, 논을 운동장인양 여유만만 헤엄을 치고 있는 오리 떼 구경을 하며 천천히 걸어가고 있는데, 하니족 아주머니 두 분이 등에 바구니를 메고 길을 거슬러 올라오고 있다. 어디 밭이나 논으로 가는 길일까? 환하게 웃으며 반겨주는 표정이 친근하기 그지없다. 얼른 카메라를 꺼내며 한 장 찍어도 되겠느냐고 물으니, 부끄러운 듯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자세를 취해 준다. 우리네 시골 마을의 아주머니들 같다.

하니족 마을에 들어서니, 촘촘하게 집들이 모여 있다. 좁은 골목길로는 야채를 지고 가는 아주머니와 그런 아주머니의 치맛자락에 매달려 부끄러운 듯 숨는 아이들도 있다. 아이를 업고 감자 따위를 볶아 파는 하니족 아주머니의 모습도 보인다. 구멍난 주전자를 때우는 아저씨 곁에는 사람들이 잔뜩 모여 있다. 모두들 주전자를 고치러 왔겠거니 하고 보니, 대부분은 그저 구경꾼이다.

민속마을에서 노는 아이들. 저 아이들이 꿈구는 하니족의 미래를 어떤 것일까?
민속마을에서 노는 아이들. 저 아이들이 꿈구는 하니족의 미래를 어떤 것일까? ⓒ 최성수
하니족의 집들은 대개 지붕이 높게 솟아있다. 지붕은 나무껍질이나 풀로 얹었다. 지붕이 높은 것은 늘 안개가 끼어 습도가 높기 때문에 눅눅함을 줄이기 위한 방편이리라. 높이 솟은 지붕 너머로 또 안개가 밀린다. 안개와 하니족 마을은 결코 분리할 수 없는 관계에 있다.

안개가 비를 내리고, 비는 논을 채우고, 그 논에서 농사를 지어 먹고 산다. 그러니 안개와 하니족 사람들은 어쩌면 한 몸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듯싶다. 그래서일까. 하니족 마을에서 만난 모든 사람들은 안개처럼 아득하고, 안개처럼 은은하다.

마을 중심인 광장에서는 아이들의 팽이치기가 한창이다. 나무를 깎아 직접 만든 팽이를 아이들은 광장의 누각에서 잘도 돌린다. 팽이치기에 신이 난 아이들이 내지르는 소리가 광장을 가득 메운다. 그 높고 환한 목소리가 하니족의 미래일까? 나는 저 아이들의 목소리처럼 하니족의 미래가 희망적이기를 빌며 광장 옆 좁은 골목길로 돌아선다.

하니족 민속마을의 골목골목은 내가 어릴 때 살았던 성북동 산동네의 좁디좁은 골목 풍경을 닮아있다. 겨우 한 사람이 지나가면 꽉 막힐 것 같이 좁은 골목, 그 골목 사이로 야채를 멘 아주머니가 지나가고, 아이들이 번개처럼 사라진다. 저 골목 사이에서 아이들은 꿈을 키우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마음을 던지리라.

민속마을 입구, 지나가던 하니족 아주머니가 사진 포즈를 취해주었다. 그 순하고 고운 마음씨가 보이는 듯 하다.
민속마을 입구, 지나가던 하니족 아주머니가 사진 포즈를 취해주었다. 그 순하고 고운 마음씨가 보이는 듯 하다. ⓒ 최성수
골목을 마주하고 돼지우리가 있다. 돼지는 금방이라도 우리를 탈출할 것처럼 꿀꿀거린다. 그러나 정작 골목 밖으로 나온 돼지들은 갈 곳이 없다는 듯, 좁은 골목에서 퍼질러 잠을 잔다. 골목은 사람들의 통행로이면서 동시에 돼지들의 침실이기도 하다. 어디 돼지들 뿐일까? 오리떼가 골목을 휘젓고 다니기도 한다.

하니족 마을 아래에 있는 논에서 신나게 헤엄을 치던 오리들이 갑자기 골목을 향해 뒤뚱거리며 달려들더니, 마을이 밀집되어 있는 윗동네까지 한 달음에 내달린다. 그리곤 골목 옆 수로로 미끄럼 타듯 내려온다. 수로 아래쪽에 이르자 다시 논으로 가려던 오리들이 우리를 보자 낯설었는지, 홱 돌아서 물길을 따라 올라선다.

"이곳이 아닌가벼."

우리 중 누군가가 오리의 마음을 흉내내 그렇게 한 마디 한다. 그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오리들은 위로 올라갔다가 다시 내려와 우리 곁에서 다시 올라가기를 반복한다. 아, 어쩌면 생의 모든 길이 저렇게 오리가 가는 길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늘 걸어와 놓고는, 이곳이 아닌지 모르겠다며 아쉬움의 한 숨을 내 쉬는 일, 그것이 우리네 삶이 아닐까?

나는 하니족 민속 마을의 거대한 시소가 있는 공터에서, 아득하게 발 아래로 밀리는 안개와, 산 그림자 비친 논물을 바라보며, 그런 아득한 생각을 했다.

해와 달이 된 하니족 오누이 전설

하니족(哈尼族)은 운남성 서남부 지역에 살고 있는 소수 민족 중의 하나다. 하니는 '10'을 뜻하는 하니족 말이라고 한다. 현재 인구는 약 140만 정도인데, 문자는 없고 하니족의 말만 있을 뿐이다. 기원 4세기에서 8세기 경에 지금의 란찬강 지역으로 이주하여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고 한다.

하니족은 찹쌀을 주로 먹으며, 나미파파(糯米粑粑)라는 찹쌀을 구워 만든 빵을 즐겨 먹는다. 아이가 태어난 뒤 노인이 그 아이를 안아주면 복이 두 배로 들어온다고 믿기 때문에, 먹을 것을 아이의 이마에 얹어놓고 아이의 아명을 가만히 불러주는 풍습이 있다.

아이의 아명이 생기면, 할머니는 마당에서 아이의 배내옷을 태워 재를 대나무 통에 넣어둔다. 아이가 태어난 지 사흘이 지나면 아버지는 찹쌀 경단을 만들고 닭고기와 함께 우리네 돌상 차림같이 상을 차려준다.

만약 아이가 아들이면 이웃 사내아이를 불러 대나무 찹쌀밥을 먹인 뒤 일옷을 입고 호미를 들고 집 밖의 땅을 파 논을 매는 시늉을 하게 한다. 딸이면 여자 아이를 초대하여 찰밥을 짓고, 큰 칼로 모녀 앞에서 세 번 내리 찍는 시늉을 하게 한다.

지붕 높은 하니족 전통 가옥. 지붕 위로 안개가 걸리는 날이 많다.
지붕 높은 하니족 전통 가옥. 지붕 위로 안개가 걸리는 날이 많다. ⓒ 최성수
하니족 풍습에 찹쌀이 많이 등장하는 것은 이들이 계단식 논에 찰벼를 주로 심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사내아이의 경우 논 매는 시늉을 하는 것은, 농사가 사내의 몫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풍습이라고 할 수 있다. 여자아이의 경우 칼로 허공을 내려찍는 것은 장작을 패는 행위를 본뜬 것이다. 집안 살림이 여자의 몫이었다는 데서 나온 풍습이다.

하니족의 결혼 풍습 또한 특이하다. 하니족은 결혼을 할 때 결코 양가의 부모에게 셜혼 사실을 알리지 않는다고 한다. 결혼 후 사흘이 지나서야 남자 쪽 집에서 두 명의 중매쟁이를 여자 쪽 부모에게 보내 결혼 허락을 얻는다고 한다.

이때 찹쌀밥 두 보자기를 넣어 보내는데, 그 중 하나에는 달걀을 넣어 보낸다. 이는 두 사람이 이미 결혼했음을 알리는 표식이다. 달걀은 대표적인 난생 설화의 소재다. 결혼의 풍습에 이렇게 달걀을 보내는 것은 아마도 난생 신화가 변형된 모습일 것이다. 이때 알은 다산, 다복을 상징한다.

매년 처음 천둥 번개가 치거나 우박이 쏟아지거나 거센 바람이 불면 모든 일을 멈추고 쉬며, 용수(龍樹)는 결코 베어서는 안 되며, 매년 용수에 제사를 지내는 기간에는 산의 나무와 식물을 베거나 뜯을 수 없고, 마을로 가져들어와서도 안된다는 풍습을 지킨다.

이런 풍습은 모두 다락논을 일구며 자연 속에서 살아온 하니족의 생활 풍습이 생활 속에 배어 만들어진 것으로 짐작된다. 산을 일궈 어마어마한 다락논을 만들면서도 숲의 성장을 거스르지 않는 태도, 천둥과 번개 같은 자연의 현상을 자신들의 삶 속에 넉넉하게 받아들일 줄 아는 하니족의 자세가, 오랜 세월 그 어마어마한 계단식 논을 만들면서도 자연과 함께 살아올 수 있게 만든 바탕이리라.

올망졸망 늘어선 하니족 전통 가옥.
올망졸망 늘어선 하니족 전통 가옥. ⓒ 최성수
하니족의 해와 달 신화도 그런 하니족 사람들의 마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득하게 높은 다락논 곁에 어머니가 딸 둘을 데리고 살았다. 큰 딸은 아배였고 둘째 딸은 아뉴였다. 그런데 이 마을에는 불행하게도 해와 달이 없었다. 요괴가 해와 달을 먹어치웠기 때문이었다.

어느 날이었다. 우물로 물 길러 갔던 어머니는 요괴인 묘르묘노에게 잡아먹히고 말았다. 어머니를 잡아먹은 욕괴는 어머니로 변해 두 딸을 잡아먹기 위해 참대나무 물통을 지고 집으로 다가갔다. 요괴는 방문에 다가가 소리를 질렀다.

"미리, 미리(하니어로 어린 아이를 부르는 말), 문 열어라, 엄마가 왔다."

그러나 언니는 엄마 목소리가 아니라는 걸 알고, 손가락을 보여 달라고 한다. 털이 숭숭한 요괴의 손가락을 보고 엄마가 아니라는 것 눈치 채고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 그때 동생이, 엄마라면 벽 구멍으로 들어왔을 거라고 하는 바람에 요괴는 벽 구멍으로 들어오고 말았다.

요괴는 두 아이가 잠든 뒤 동생부터 잡아먹을 생각이었다. 그런 눈치를 챈 아배는 눈을 부릅뜨고 잠들지 않으려 했다. 그러나 쏟아지는 잠을 참을 수 없어 깜박 잠이 들고 말았는데, 갑자기 어적어적 무엇을 씹는 소리가 들렸다. 어둠 속에서 가만히 보니, 요괴가 동생 아뉴를 잡아먹고 있었다.

아배는 오줌을 누러 가는 척 일어나 문 밖으로 달아나버렸다. 밤새 달려 아배는 어느 우물가에 이르렀다. 우물곁에는 커다란 돌배나무가 서 있었다. 아배는 돌배나무 위에 올라가 숨었다.

먼동이 틀 무렵, 요괴는 우물가에 이르러 아뉴의 두개골을 물에 씻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보고 놀란 아배가 침을 흘리자, 요괴는 나무 위에 아배가 있다는 것을 눈치 채고 말았다.

요괴는 아배를 다독이기 위해 배를 따 달라고 했다. 아배는 커다란 배를 따서 요괴의 입으로 내 던졌다. 요괴는 그만 배가 목에 걸려 숨이 막혀 죽고 말았다. 그런데 죽은 요괴는 가시덤불로 변해 돌배나무 아래를 감싸버렸다. 가시덤불 때문에 내려올 수 없게 된 아배는 어쩔 줄을 몰라 나무 위에서 안절부절 하고 있었다.

그때 한 할아버지가 물을 길러 왔다가 그 모습을 보고 도롱이를 펼쳐 아배를 내려오게 해 주었다. 할아버지는 신령스런 분이었다.

아배가 죽은 동생을 살려달라고 하자, 할아버지는 동생 아뉴가 소몰이꾼을 따라갔다고 말해주었다. 아배는 소몰이꾼에게 가 동생이 어디 있느냐고 물었다. 소몰이꾼은 동생이 소 대가리를 물고, 소 뿔 지팡이를 짚고, 소 꼬리 빗자루를 들고 오리 몰이꾼을 따라 갔다고 대답했다.

오리 몰이꾼을 찾아가 묻자, 오리 대가리를 물고, 오리발 지팡이를 짚고, 오리 꼬리 빗자루를 쥐고 닭 몰이꾼을 따라갔다고 대답했다. 닭 몰이꾼을 찾아가자, 그는 닭 대가리를 물고, 닭발 지팡이를 들고, 닭 꼬리 빗자루를 들고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고 알려주었다.

아배는 바다를 찾아 길을 떠났다. 온갖 고생을 무릅쓰고 아배는 일흔 이레만에 일흔 일곱 고래를 넘고, 일흔 일곱 강을 건너 마침내 바다에 이르렀다. 바닷가 바위 위에 큰 두꺼비가 한 마리 앉아 있었다. 아배가 두꺼비에게 동생의 행방을 묻자, 두꺼비는 자신이 바닷물을 다 마셔버리면 아뉴를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하며, 천천히 바닷물을 마셔버렸다.

두꺼비가 바닷물을 다 마시자 동생이 나타났다. 두 자매는 서로를 부둥켜안고 눈물을 흘렸다. 두 자매는 서로 없어진 해와 달이 되기로 하고 소원을 빌었다. 그래서 언니는 달이 되고, 동생은 해가 되었다. 그 뒤부터 하니족 마을에는 낮에는 해가, 밤에는 달이 떠 세상을 환하게 밝혀주게 되었다.

창문이 예쁜 하니족 집. 하니 사람들은 작은 것에도 마음을 담을 줄 안다.
창문이 예쁜 하니족 집. 하니 사람들은 작은 것에도 마음을 담을 줄 안다. ⓒ 최성수
우리나라 <해와 달이 된 오누이>와 비슷한 유형의 이 신화는 온갖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살아온 하니족 사람들의 심성을 그려내고 있다.

하니족 사람들은 자연을 숭배하고 만물에 신령한 기운이 서려 있다고 믿는다. 부지런하고 용감하며, 온화한 성품에 예의를 지킬 줄 알며, 서로 돕는 품성을 지녔다는 하니족 사람들. 손님을 맞으면 열정적으로 대접할 줄 안다는 하니족 마을은, 계단식 논의 그림 같은 풍경 속에 포근히 안겨 있다.

세상 어디를 가도 자연에 깃들어 사는 사람들은 다 아름답다. 여행은 그 아름다움을 찾아 가는 길인지도 모른다. 문명의 더하고 덜함이 무슨 소용이랴. 아니, 그 문명이라는 것 또한 인간이 만들어 낸 허상에 지나지 않을 지도 모른다.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더불어 살 줄 아는 하니족 사람들의 삶을 떠올리며, 나는 내가 어깨 무겁도록 지고 살아온 일상의 삶이 얼마나 사소한 것인가를 새삼 느낀다.

햇볕 속에 하염없이 앉아있던 하니족 소녀. 골목에 소도 몇 마리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무거운 일상을 지고 살아왔다는 느낌을, 이 풍경을 보며 시리게 새겼다.
햇볕 속에 하염없이 앉아있던 하니족 소녀. 골목에 소도 몇 마리 해바라기를 하고 있었다. 나는 너무 무거운 일상을 지고 살아왔다는 느낌을, 이 풍경을 보며 시리게 새겼다. ⓒ 최성수
하니족 민속 마을의 어느 골목길, 따사로운 햇볕을 받으려 세상 모든 것을 저 밖으로 밀쳐 둔 채 오래도록 움직이지 않고 자신의 생을 곱씹어보고 있는 듯하던 어느 소녀와, 그 소녀 곁에서 소녀와 같은 생각을 하듯 느릿느릿 되새김질을 하고 있는 소 몇 마리를, 하니족 민속 마을을 떠나며 나는 떠올렸다.

그 풍경은 내 마음 속으로 들어와 온 가슴을 충만하게 만들었다. 아, 이 낯선 것들과의 행복하고 느긋한 만남이여! 그 만남으로 더 설레는 어느 순간의 삶이여!

덧붙이는 글 | *하니족 민속마을에 대한 더 많은 사진은 제가 운영하는 카페 http://cafe.naver.com/borisogol.cafe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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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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