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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5년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와 전경련 회장단이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지난 2005년 당시 이해찬 국무총리와 전경련 회장단이 만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경제'는 이제 '정치'다. 정확하게는 '이제 정치'인 것이 아니다.

유사 이래 인류에게 있어서 먹고 사는 문제만큼 정치적인 것은 없었다. 노사로 대변되는 경제 주체들 간의 대립과 갈등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정치적이다. 그것을 풀어나가는 것이 바로 '정치'다.

교육부가 그 정치의 한복판에 섰다. 그것도 전경련과 한 편이 돼 섰다. 전경련과 공동으로 제작한 차세대 '경제교과서 모형'이 뜨거운 쟁점이 되고 있다. 논란이 되자 교육부는 공동저자에서 교육부(와 전경련) 이름을 빼는 것으로 '편향된 교과서 시비'를 우회하려 하고 있다.

하지만 쉽지가 않다. <경향신문>은 노동계도 노동조합의 입장이 반영된 경제교과서 모형 개발을 교육부와 함께 추진하기로 했다고 전한다('노동계도 '경제교과서' 추진'). 민주노총은 "재계와 사용자 입장에서 서술된 교과서가 나온 만큼 노동계의 시각이 반영된 교과서도 있어야 사회적으로 균형을 이룰 수 있다"며 "교육부에 경제교과서 모형의 공동 개발을 제의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라고 한다.

교육부가 어떻게 나올까? "노동계가 공식 제안해 오면 그 때 가서 타당성 여부를 검토해 보겠다"고 한다. 재계의 논리에 편중된 이번 교과서 모형의 수정에 대해서는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입장이다. 거센 비난 여론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버티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어디서 이런 배짱이 나올까?

<조선>도 정부도 한 마음 한 뜻 "차세대 교과서가 좋다"

@BRI@<조선일보>는 '경제교과서, 무슨 내용이길래...' 이렇게 논란이 되는지를 다시 살폈다. "노조활동 때문에 임금이 오르고 고용도 줄어든다는 의미를 정면으로 담고 있는 등 노동계나 진보단체를 자극하는 표현이 상당수 있기 때문"이라는 재계의 시각을 전하고 있다. '정부개입'이나 '노조' '성장-분배' '기업의 이윤추구' 같은 민감한 논점을 다룬 내용들이 많이 포함돼 있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게다가 "하필 신문 확장 문제를 예로 들어 주요 언론들과 불편한 관계인 청와대가 달가워할 리 없다"는 해석도 전했다. 어떤 내용이길래 그럴까?

"정부가 신문을 돌릴 수 있는 최대 부수를 제한한다고 하자. 새로운 사람이 이웃에 이사 왔을 때 (신문배달원인) 나는 그에게 신문을 구독하도록 노력하겠는가? … 정부의 개입은 나에게 이익의 감소를 초래할 뿐 아니라 사회 전체적으로 손해를 초래한다. (경제교과서 모형 49쪽)"

정말이지 청와대는 물론 이 정부로서는 달가워할 리 없을 듯 하다.

그러나 <조선일보>의 다음 기사 내용을 보면 어리둥절해진다. "11일자 청와대 국정브리핑도 '균형 잡힌 차세대 경제교과서'라고 치켜세우며 '이번 차세대 경제교과서는 시민단체·언론계·학계·노동관련 전문가·현직교사 등 다양한 이사로 구성돼 균형성을 확보했다'고 평가했다"는 것이다.

정말 그랬을까? <조선일보>가 적시한 11일자 <국정브리핑>(국정브리핑은 '청와대'가 아니라 '국정홍보처'에서 낸다. 청와대 브리핑에 그것을 링크해 실어놓았을 뿐이다)을 보자.

'균형 잡힌 차세대 경제교과서 모형 나왔다'가 기사의 제목이다. <조선일보> 기사 대로다. 내용을 보면 한 술 더 뜬다.

"현재 중3·고1이 배우는 사회과 교과서의 경제관련 내용과 고2·3학년용 경제교과서에 대해 기업은 지나치게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고 있다고 주장하는 반면, 노동계는 노동과 노동자에 대한 편향된 시각이 많다고 주장하는 등 논란이 많았다"는 점을 이번 '경제교과서' 제작의 배경으로 밝히고 있다.

"그러나 이번 차세대 경제교과서는 경제계 뿐 아니라 시민단체·언론계·학계·노동관련 전문가·현직교사 등 다양한 이사로 구성돼 균형성을 확보했다는 것이 교육부의 설명이다. 교과서 내용은 현 시장 경제 체제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을 바로잡고, 우리나라 경제 체제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제시하는데 중점이 맞춰졌다.”

그러니, 교육부가 내용을 수정할 수 없다고 버티는 것도, 예정대로 저자 이름만 바꿔 올 3월에 배포하겠다는 것도 이해가 된다. 가장 모범이 될 만한 '교과서 모형'인데 문제될 게 뭐가 있겠는가?

참여정부의 정체성, 그 본질은...

<국정브리핑>이 소개한 기존 검정교과서에 대한 '논란'과 전경련과 합작해 만든 '경제교과서 모형'에 대한 교육부의 평가를 보면 교육부, 아니 이 정부가 스스로 검정한 '경제교과서'들이 문제가 있다고 자인한 꼴이나 마찬가지다.

왜 교육부의 일을 정부 차원으로까지 확대시키느냐고? 교육부 혼자 한 일이 아니니까 말이다. 재경부 등과 손발을 맞춰 전경련과 '협약'까지 맺어 추진한 일이다.

<조선일보>는 교육부가 청와대와 접촉한 직후 배포를 중단하고 교육부의 이름을 빼달라고 한 데 대해 재계 관계자의 말을 빌려 "이런 식으로 하니까 좌파정부라는 비판을 받는 것 아니냐"고 비아냥됐다.

그러나 그 같은 촌평은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이런 식으로 하니까 참여정부가 도대체 무슨 정부인지 헷갈리는 것 아니냐"고 말이다.

참여정부 정체성의 혼란을 극명하게 드러내는 또 하나의 사례로 기록될 것 같다. 아니, 그대로 강행 배포하겠다는 것을 보면 '정체성의 혼란'이 아니라 '정체성의 본질'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것일 수도 있겠다.

'차세대 경제교과서'를 소개한 <국정브리핑> 기사.
'차세대 경제교과서'를 소개한 <국정브리핑> 기사. ⓒ 국정브리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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