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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나운 바람이 옷자락을 헤집고 들어오던 2월 14일 수요일 오후 1시 30분. 취업을 원하는 14명의 고령구직자와 함께 동행면접길에 나섰다. 세찬 바람도 어르신들의 취업 열기를 잠재우지 못했다. 면접을 보러 가는 봉고차 안에서 고령 일자리에 대한 어르신들의 끊임없는 열망들이 이어졌다.

▲ 새출발 ! 올드 보이 취업특강을 듣고 있는 중
ⓒ 이명숙
청춘과 맞바꾼 세월이 30여 년. 앞만 보고 달리는 경주마처럼 살아왔다는 박형기(58) 어르신은 살아온 날들이 한바탕 꿈을 꾼 듯하다고 하셨다. 온 몸이 천근만근 일 때도, 때로는 모든 속박으로부터 도망치고 싶을 때도, 이대로 물러서면 도태된다는 생각에 이를 악물고 버텨온 세월들이었다.

세월의 흐름에 떠밀려 뒤돌아보니 중년이라고 하기에도 노인이라고 하기에도 어정쩡한 나이가 되어 있었다. 가정에서도 직장에서도 자신이 지키고 있을 자리가 없어져 버렸다는 허망함에 오랫동안 우울증을 앓았다는 박형기 어르신은 그대로 주저앉아 있기에는 억울한 생각이 들어 고용지원센터를 찾으셨단다.

이삼십대는 시계 만드는 회사에서, 중년에는 시계를 파는 자영업을, 오직 시계와 함께 보낸 세월이 30년. 경기 불황으로 더 이상 할 수가 없어 자영업을 접은 후 아파트 경비로 근무하다 실직을 한 장준석(57) 어르신.

대기업에서 27년간 근무 후 작년 말에 명예퇴직을 한 강형준(57) 어르신을 비롯한 14명의 어르신들의 한결같은 바람은 일자리를 나이로 재단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것이었다.

나이로 일할 능력 재단하지 말았으면

"육십이 환갑이라는 것은 과거에나 통용되는 것이지 지금 육십이면 한창이잖아요. 나이가 들면 할 수 없다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났으면 좋겠어요. 젊은층들은 일이 힘들면 금방 포기를 하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일자리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힘들어도 견뎌내거든요."

"퇴직을 하고 보니 아침저녁으로 출퇴근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즐거움인지 알겠어요. 일할 수 있다는 즐거움은 일자리를 박탈당해 보지 않은 사람들은 몰라요. 일할 때는 몸도 건강, 정신도 건강, 가정도 건강했는데 일자리에서 퇴직을 당하고 보니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버렸어요."


▲ 회사에 대한 설명을 듣고 있는 중
ⓒ 이명숙
어르신들과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새 면접을 볼 업체에 당도했다. 14명의 어르신이 면접을 볼 곳은 대기업 아웃소싱업체였다. 회사 담당자로부터 간략한 회사소개와 취업이 되면 해야 할 일들에 대해 설명을 듣는 어르신들의 표정은 진지했다.

▲ 면접지원서류를 작성 하는 중
ⓒ 이명숙
"힘들다고 며칠 하시고 그만두시려면 처음부터 안 하시는 게 낫습니다. 제조업체 생산현장에서 근무를 하셔야 되기 때문에 처음에는 힘드실 겁니다. 하지만 고비를 넘기고 나면 오히려 젊은 사람들보다 더 왕성하게 일을 하십니다. 그 분들의 한결같은 말씀은 산업현장에서 젊은 사람들과 같이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대해 보람을 느끼신다고들 하십니다."

구체적인 업무내용은 물론 마음가짐까지 설명이 이어졌다. 본격적인 면접이 시작되기 전 동행한 담당자는 다시 한 번 면접시 주의사항을 일러주면서 선전을 다짐하는 파이팅을 외쳤다.

▲ 면접에 앞서 파이팅을 외치며
ⓒ 이명숙
"어르신들과 면접을 가 보면 용돈이나 벌러왔소라는 답변을 하시는 분들이 꽤 많습니다. 절대로 그렇게 답변하시지 마시고 일을 하려고 하는 적극적인 의지를 보여주셔야 됩니다."

그날 면접 본 14명 중 8명의 어르신이 채용되셨다.

갈수록 고령 구직자들이 늘고 있다. 어르신들은 이구동성으로 일할 수 있는 터전을 요구하신다. 인생의 단맛 쓴맛을 다 겪어 봤기 때문에 삶 자체를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 있으니 건강만 허락한다면 남은 여생을 스스로 경영해 갈 수 있는 일을 하다가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씀들을 하신다.

혼자서 고민만 할 때는 막막했는데 고용지원센터에 오니 일자리도 소개시켜주고 면접 볼 업체까지 같이 가 주어 참 고맙다는 어르신들은 아직도 주변에서 모르고 있는 분들이 많다며 홍보의 필요성을 말씀하신다.

고령구직자들을 위한 다양한 취업지원서비스

▲ 고령자를 위한 일자리 정보 여행
ⓒ 이명숙
고용지원센터에서는 고령자들을 위한 다양한 취업지원서비스를 하고 있다. 일하고자 하는 의욕이 낮고 일자리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한 분들에게는 현장견학을 통해 인식전환을 해주는 '일자리 정보여행'.

고령자들에게 취업에 대한 희망과 새로운 출발을 도와주는 '시니어 희망심기', 5일 동안 하루 6시간씩 고령자들과 함께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고 이후 삶을 설계하면서 취업에 대해 전문적이고 체계적으로 준비를 할 수 있게 도와주는 '성실프로그램'.

면접을 볼 업체를 고용지원센터 담당자와 직접 동행을 해서 면접을 보거나 인사담당자가 고용지원센터를 방문해 면접을 보는 '새 출발! 올드 보이 구인·구직 만남의 날 행사' 등 다양한 서비스들이 이뤄지고 있다.

면접에 합격해 취업을 하신 8명의 어르신도 탈락의 고비를 마신 6명의 어르신도 '그래, 인생은 이제부터야'라며 어깨를 쫙 펴고 당당하게 새출발을 하실 수 있는 제 2의 인생이 되었으면 좋겠다.

* 이어지는 기사는 60세 이상 고령구직자들과 함께 한 '취업희망이야기' 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국정브리핑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올드보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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