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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두 달쯤 전에 프리랜서가 되셨다. 굴비 엮는 프리랜서. 어느 굴비 가게에도 소속되지 않고, 부르면 달려가서 일하는 사람. 프리랜서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물론 굴비를 잘 엮어야 한다. 두 번째 조건은 자신이 엮을 지푸라기는 가지고 다녀야 한다. 엄마도 저절로 항균 작용을 한다는 지푸라기 30만원어치를 사셨다.
나는 올해 설에 조여사의 월급봉투를 보았다. 프리랜서로 나섰다고 해서 월급이 크게 달라진 것도 아니었다. 하루 일당 3만5000원. 시간외 수당으로 22만원이나 31만원, 45만원이 붙어 있었다. 시간외 수당이라는 것은 저녁 7시 넘어서부터 다음 날까지 밤을 지새우고 일한다는 뜻이다.
설이 다가오면서 엄마는 거의 밤 12시까지 이어지는 야간작업을 하셨다. 설이 바짝 닥쳐왔을 때는 꼬박 나흘을 밤샘 작업하셨다. 엄마 조여사는 이번에 처음으로 이제 이녁도 늙었구나를 깨달았다고 하셨다. 일이 무서웠고, 그래서 죽을 것 같았다고 하셨다.
'대략 난감' 수준인 조여사의 '부조' 씀씀이
조여사가 낮에도 굴비를 엮고, 밤에도 굴비를 엮어서 받는 월급은 110만원에서 140만원선. 엄마는 그 돈을 쪼개신다. 봉투 하나에 10만원씩 넣지만 특별한 경우에는 30만원을 넣어서 친척들을 뵙거나 친구들을 만난다. 그렇지만 조여사는 어린 시절 농사 많이 짓는 집 큰딸로 자라서인지 늘 부족한 뭔가를 느끼신다.
보통 때 조여사의 '부조' 씀씀이는 '대략 난감' 수준이다. 월급을 통째로 하거나 돈이 없으면 가불을 하거나 월급날이 당 멀었는데도 생활비 전체를 내 버리는 사람이다. 그래서 명절 때면, 이녁 월급을 갈라 넣은 봉투에다가 색다른 '화폐'까지 곁들인다.
조여사 집에는 난방을 하지 않는 방이 있다. 거기에는 선물로 들어온 사과, 배, 멸치, 새우가 있다. 그것들을 따로 몇 개의 묶음으로 만든다. 그리고 냉동실에서 파지(굴비를 엮는 사람들의 전문용어, 완성품으로 내기에는 조금 모자란 굴비만 따로 묶어서 싸게 파는 굴비)를 꺼낸다.
조여사는 봉투를 안 해도 되는 외삼촌과 이모, 그리고 우리 자매한테는 군더더기 없는 '화폐'를 주신다. 예전에 엄마 조여사가 살던 아파트 옆 공터에 텃밭을 가꿀 때에는 배추나 무를 이용하셨다. 우리 집 현관문이 열리면, 딸네 집에 다니러 온 엄마보다 커다란 상자에 담긴 배추나 무가 먼저 들어왔다. 농사 실력이 좋아졌는지, 종자가 커졌는지, 조여사 무는 갈수록 커졌다.
조여사가 우리에게 주는 화폐 '파지 굴비'
두 해 전부터 조여사가 우리에게 주는 '화폐'는 파지 굴비다. 나는 생선 구이는 좋아하면서도, 생선이 눈 뜨고 있는 모습을 보면 급격하게 식욕을 잃어버린다. 그래서 조여사는 파지 굴비를 사와서 집에서 다듬을 때에 아예 머리를 잘라버린다. 우리 자매는 그걸 '두절 굴비'라고 부른다.
설 명절을 앞 둔 며칠 전에 엄마가 동생 지현이한테 전화를 하셨다.
"내 시째(동생 지현의 어릴 적 이름), 완전히 좋은 파지를 사 놨네이."
"엄마, 아냐! 그거 다른 사람 줘. 나 잘 안 먹어. 언니도 저번에 준 거 냉장고에 그대로 있어."
조여사는 힘이 빠졌을 게 분명했다. 나는 따로 엄마한테 전화를 걸었다.
"조여사, 파지 존 놈으로 사 놨소? 지현이가 파지 필요 없다고 해서 기분이 별로였제? 내가 지현이보고 싸가지 없다고 혼내줬소. 나는 조여사가 다듬어 놓은 '두절 굴비'를 겁나 좋아허요."
엄마가 진짜 돈을 자식한테 줄 때 얼마나 자랑스러워하시는지는 알고 있다. 4년 전, 해남 강진으로 내려가는 길에 조여사 집에 들러서 한 밤을 잤다. 엄마는 아침에 일하러 나가면서 "내 지영이, 제규랑 둘이 맛있는 것 사 먹으소"하면서 5만원이 든 봉투를 주셨다. 그 때 조여사는 조금 모자란 사람처럼 너무 환하게 웃으셨다.
엄마 조여사는 딸들이 이녁한테 진짜 화폐를 쓸 때면, 부끄러움을 느끼긴 하지만 절대 거절하지 않으신다. 그게 옷이면 더욱 그렇다. 엄마는 얼굴이 빨개지면서도 반드시 비싸고 좋은 옷을 고르신다. 집을 잃고, 식구끼리 떨어져 지내던 시절에도, 엄마나 우리 자매들은 허영심을 버리지 않았다.
가끔 우울증에 걸리는 조여사를 '사모님'처럼 모시고 싶다
이번 설에는 아빠가 눈이 시고 눈물이 많이 난다고 하셔서 안경을 맞추러 갔다. 안경사가 아빠 시력을 재고, 아빠가 안경을 고를 때에 엄마는 "비싼디... 내 딸들 껍질을 다 벳겨먹는디"라고만 하실 뿐이셨다. 좀 더 낮은 가격대의 물건을 고르라거나 다음에 하라는, 이녁의 마음속에 없는 말은 안 하셨다.
명절이면 조여사가 딸들한테 주는 '화폐'는 '두절 굴비'에 품목 한 가지가 더해진다. 거의 한 달은 너끈하게 먹을 수 있게 재운 갈비다. 딸들은 고기를 잘 먹지 않으니 이녁 사위와 손자한테 주는 '화폐'인 셈이다. 올 설에 조여사가 재운 갈비를 꼼꼼하게 챙겨주지 못했다는 걸 아신 것은 우리가 조여사 집을 나서고 30분이 지나서였다.
소심하고 발표력이 없는 조여사지만 박력 있게 차를 돌려오라고 전화를 하셨다. "고속도로 진입 전이야"라고 해도 안 통했다. 애원해야 할 쪽은 조여사인데 차를 돌려오라는 '급호통' 뿐이셨다. 엄마 집에 가보니까 1시간 전에 헤어질 때 눈물을 흘리던 조여사는 간 데 없었다. 엄마는 '화폐 전달식'이 끝나자마자 참으로 홀가분하게 집으로 들어가 버리셨다.
공선옥의 <마흔에 집을 나서다>를 보면 옛사람들이 '부조'한 내력들이 나온다. 어떤 아저씨의 어머니 회갑 잔칫날에 동네 사람들이 백두 소두 두 되, 검은 고기 다섯 마리, 새(꿩) 한 마리, 피륙 몇 감, 계란 몇 개를 주었다. 그 때에는 그게 '화폐'였다.
나는 오랜 세월이 흘러도 조여사가 주시는 머리 잘라낸 '두절 굴비'를 받고 싶다. 프리랜서지만 돈도 많이 못 벌고, 집도 잃어서 가끔 우울증에 걸리는 조여사를 '사모님'처럼 모시고 싶다. 조여사 방식대로 싸서 폼 나지 않는 '화폐'인 '두절 굴비', 멸치, 사과, 배를 차에 싣고서 이녁이 가자고 하는 곳에 무조건 모셔다주는 운전수 노릇을 하고 싶다.
덧붙이는 글 | 2월 18일에서 19일 사이에 있었던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