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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
ⓒ 오마이뉴스 이종호
"며칠 후면 드러나지 않겠나?"

지난 20일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열린우리당 의원)의 당 복귀 여부를 알아보기 위해 만난 그의 한 핵심 측근(A씨)은 이같이 운을 뗐다. 내주께 드러날 한명숙 총리의 사의표명 시기와 맞물려 유 장관의 거취 방식도 결정될 것이라는 얘기다.

여러 가지 경우의 수가 있다. 장관 임기 1년을 끝으로 당으로 복귀하는 방식, 반대로 장관직을 유지하더라도 노 대통령의 탈당과 함께 자신도 당적을 버리거나 당적을 유지한 채로 차후 복귀를 기약하는 방식 등이 있다. A씨는 "전적으로 노 대통령 의중에 달렸다"고 말한다.

"유시민의 진심은 내년 2월 24일까지 대통령과 임기를 함께 하는 것이다. 책을 쓰며 자유롭게 할말 하면서 살고 싶어한다. '헌법카페'(가제)라는 출판 기획을 해놓은 것도 있다. 하지만 대통령 임기 끝까지 장관으로 남게 되진 않을 것이라 본다."

'유시민의 진심'과 무관하게 '노무현의 오더'가 있지 않겠냐는 예상이다. 유시민 장관은 최근 자신의 거취와 관련해 "한국인 100명에 대한 평전을 쓰고 싶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여운을 남겼다. "당 복귀를 하게 된다면 요즘밖에 없다"며 "대통령이 당으로 가라고 하면 가야지"라고 말했다.

노 대통령의 탈당과 유 장관의 출당

'유시민의 말'은 늘 화제를 낳았다. 하지만 지난 1년, 그는 달랐다. 지난해초 입각 당시 야당은 물론 당내 반대에 그는 낮은 포복으로 청문회를 통과했고, 이후 조용히 보건복지부 장관직을 수행했다. 정치 뉴스에 오를 발언은 극도로 자제해 왔다.

그러다가 최근 취임 1주년 출입기자들과 호프 미팅에서 예의 그다운 정치 입담을 발휘한 것. "분당으로 한나라당 집권 가능성 99%" "나치 정권의 쇼비니즘 등장 우려" "열린우리당 곧 소멸" 등의 제목으로 언론을 장식했다. 유 장관측은 "정치평론적 입장에서 분석한 것"이라고 해명했지만 파장은 컸다. 열린우리당은 즉각 반발했다. 해당행위라며 윤리위 회부, 출당 조치 주장도 나왔다.

노 대통령의 탈당이 임박한 상황에서 유시민 장관에 대한 출당 요구가 맞물리는 점은 흥미롭다. 두 사람은 열린우리당에서 추진 중인 통합신당론의 '걸림돌'이다. 열린우리당이라는 내려야 할 간판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에겐 "대통령이 알아서 판단하고 결정할 일"이라고 예의를 갖춰 탈당을 권고하고 있지만, 유 장관에겐 최근 발언을 빌미로 "나가라"는 얘기는 그런 점에서 매우 정치적이다. 당내에선 일찍부터 "유시민은 함께 못 갈 사람"이라는 얘기가 나왔다.

설령 '비보도'를 전제했다고는 하지만 유 장관의 최근 발언 역시 시기적으로 매우 정치적이다. 노 대통령이 개헌 카드로 정치 전면에 나서고 있고 최근엔 진보진영의 반노 세력과도 일전을 불사하겠다는 태도로 나오고 있는 상황. A씨는 "사전에 주고 받은 말은 없었을 것"이라며 "다만 상황 인식이 같기 때문 아니겠냐"고 말했다. 노 대통령은 탈당을 통해 외형상 중립 내각의 수반으로 정치에선 한발짝 물러서는 형태를 취하겠지만 그렇다고 '식물 대통령'으로 주저앉을 가능성은 적다. 대선 판짜기에 어떤 식으로든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예상이 많다. 특히 대선 정국,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진보보수, 여야를 막론한 집중 포화가 예상되는 바, '유시민 역할론'은 이 지점에 닿아있다.

2002년 여름으로 돌아가보자. 그 해 7월 시사평론가였던 그는 절필을 선언하고 정치판에 뛰들었다. '노풍'이 꺼지면서 민주당 내에서 후보 사퇴와 신당 추진 얘기가 나올 때였다. 유 장관은 당시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민이 뽑은 후보를 낙마시키려는 반노/비노 그룹의 행동은 사기"라는 "화염병을 들고 바리케이트로 뛰어드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노무현이 쫒겨날 판에서 그는 '노무현 구하기'를 자처했었다. 지금의 정치 상황과 닮아 있는 대목이다.

박성민 대표(정치컨설팅 '민')는 "반노 전선에서 논쟁을 벌일 수 있는 사람은 유시민밖에 없지 않냐"며 "노 대통령 본인이 직접 할 수도 없고 참여정부를 정리, 방어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그만한 인물이 없다"고 말했다. 논쟁의 중심에 서 온 노 대통령이 탈당 이후 자신의 메신저로 내세울 매력적인 카드라는 얘기다.

주류 운동권과의 노선 투쟁

진보와 보수측에서 협공을 받아온 노 대통령은 최근 "교조적 진보"와 "유연한 진보"라는 구분법으로 진보 진영을 갈라세웠다. 한귀영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연구실장은 "노무현 정권의 내리막길에 일말의 책임감을 느끼는 세력과 최장집, 손호철 교수처럼 급진적 비판세력으로 진보진영이 갈려 있다"고 전제한 뒤 "한미FTA 등 개방 문제를 안고 가야 하는 노 대통령의 입장에서 급진세력과 충돌이 불가피하다고 본 것 아닌가"라고 진단했다.

노 대통령이 진보 공격은 오래된 신념에 기반한 것이다. 비주류 운동권 출신인 노 대통령이 '실용적 좌파'라는 신진보의 길을 모색하는 과정이란 시각이다. 유 장관 역시 일찍이 "주류 운동권의 오만"이라며 진보진영 지식인들과 논쟁을 불사해왔다. 그런 점에서 노 대통령이 불지른 진보 논쟁이 대선 구도와 맞물리면서 여야를 막론한 최고의 논객 유시민은 고부가가치 상품인 셈이다.

박성민 대표는 "유시민은 보수는 물론 진보도 아닌 자유주의자"라고 전제한 뒤 "열린우리당, 한나라당 모두 40대 리더십이 구축되지 않은 상황에서 유시민은 독보적인 존재"라며 "신진보 , 자유주의 세력의 대표주자가 되기에 충분한 상품성을 지녔다"고 평가했다. 여기에 영남주자라는 상징성까지 겹친다.

"글이나 쓰고 싶다"는 유시민의 진심이 곧이 들리지 않는 이유들이다. 노 대통령의 신뢰는 전폭적이다. 작년 입각 파동 당시 여당 지도부가 청와대로 들어가 반대 견해를 내놨지만 노 대통령은 "일은 잘하지 않습니까?"라고 일축했다는 게 당시 참석자들의 전언이다. 유 장관의 발목을 잡는 대목이기도 하다. 이해관계의 충돌이 첨예한 의료법 개정안이나 연금 개혁안 등 사회적 난제들을 처리해야 한다. '실적'을 통해 리더십을 보여줘야 한다.

노 대통령의 탈당과 유시민 장관의 복귀가 어떻게 교차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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