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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교에는 언제부터인가 '평교사-부장교사-교감-교장'이라는 계급화가 뿌리를 내렸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선생님! 담임을 서로 맡지 않겠다면서 부장은 서로 하겠다니 이래서 학교 꼴이 되겠습니까?"

'생명의 숲' 모임에 갔다가 참석한 한 교사로부터 들은 얘기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반복되는 홍역이 올해도 계속되는 모양이다. 학교에는 언제부터인가 상식적으로 이해 못할 관행이 정착되기 시작했다. 엄연히 부장교사라는 직책은 직급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평교사-부장교사-교감-교장'이라는 계급화가 뿌리내린 것이다.

사실이 이렇다보니 부장이라는 자리는 능력 있는 교사가 맡게 되고 자연스럽게 '선생님'하는 정감어린 호칭보다 '부장선생님!' 이렇게 부르는 게 부장교사에 대한 예의로 통하는 분위기가 됐다.

계급이 된 부장 자리는 학기 초가 되면 당연히 선호의 대상이 되고 유능한 교사(?)가 맡게 된다. 여기다 승진 가산점까지 있으니 임명권자인 교장 눈에 벗어나면 부장교사를 맡기조차 어렵다. 인사위원회라는 것이 있기는 하지만 자문기구라 사실상 교사들의 불만을 걸러주는 정도 이상의 역할을 하지 못한다.

선호의 대상이 된 부장 자리?

@BRI@현실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기 초가 되면 부장을 하겠다는 교사들이 경쟁을 하게 되고 담임은 힘없는(?) 젊은 교사나 전입자 순으로 맡게 된다. 이러한 분위기는 정작 나이 많은 교사가 경험을 살려 소신 있게 부장직을 수행하려 하면 욕심으로 비치기도 한다.

승진점수로 경쟁을 시켜 유능한 교사는 교감이나 교장이 되고 힘없고 무능한(?) 교사가 아이들을 맡아 가르치게 되면 교육이 살아날 수 있는가? 승진제도의 모순으로 학기 초가 되면 이러한 모순이 반복된다. 학교가 교육목적을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교사 개개인의 소질과 특기를 살려 적재적소에 업무를 분담시켜야 한다. 그러나 해마다 학기 초가 되면 원칙도 없이 교장선생님에게 잘 보인 사람(?)이 부장을 맡는 기현상이 반복되기도 한다.

이런 얘길 하면 속도 모르는 학부모들은 '담임을 맡지 않겠다니 그래 놓고도 교원평가를 받지 않겠다는 거냐?' '그런 자질 부족 교사를 위해서라도 교원 평가를 반드시 실시해야 해!' 하고 분통을 터뜨릴지 몰라도 내용을 알고 보면 그렇지만은 않다. 7차 교육과정이 시행된 후 교사들은 지치고 피곤하다. 날이 갈수록 늘어나는 수업시수며, 시간에 쫓기는 공문처리며 끝도 없이 말썽을 부리는 아이들 등살에 교재연구조차 할 시간이 없다. 그런가하면 능력별 반편성이다 뭐다 하는 수월성 교육으로 교사들은 만신창이 되어가고 있다.

전교조가 교원들의 '수업시수 법제화' 하자고 하면 수구언론이나 보수적인 학부모들은 말한다. '수업을 적게 하고 편하게 살려는 교사들의 이기적인 생각'이라고.그러나 정말 이기적인 생각 때문에 '수업시수 법제화'를 하자는 것일까? 교사들이 시간에 쫓겨 준비도 없이 수업에 임하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학생들에게 돌아간다.

교사들에게 주어지는 여유시간이란 쉴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지만 교재연구를 할 수 있는 충전의 기회다. 공문을 만들고 결재를 받기 위해 뛰어 다니고 학생 개인 상담이며 청소지도를 하다 준비도 없이 수업에 들어가면 제대로 된 수업이 가능하겠는가? 내신 성적 반영비중이 높아지면서 수업시수에 계산도 하지 않는 복수 시험 감독까지 맡고 있다.

교사도 사람인 이상 이해관계에 초연할 수는 없다. 좀 더 여유를 가지고 학생들에게 질 높은 수업을 위해 충분한 자료를 준비해 재미있게 수업을 하고 싶다. 그러나 수업시수가 늘어나 쫓기듯 살아가는 교사들에게 질 높은 수업, 재미있는 수업이 가능할 리 없다.

교원들을 경쟁시켜 질 높은 수업을 하겠다는 게 교육부의 방침이지만 정작 질 높은 수업이란 교사들에게 수업을 잘 할 수 있도록 여건을 마련해 주는 것이 선결문제다. 더구나 입시위주 교육에서 아이들에게 평가를 잘 받기 위해 코미디(?)를 해야 할 교사들을 생각하면 회초리로 그들의 잘못을 일깨울 교사가 얼마나 될 지 걱정스럽다.

사실 잘못된 정책을 두고 교사들만 닦달한다고 교육이 잘 되지 않는다. 특수학급 교사자격증이 그 좋은 예다. 읍면지역에는 특수학교가 없어 시군단위 한 학교에 특수학급을 운영한다. 그런데 이상한 일은 학기 초가 되면 그 힘들고 어려운 특수학급을 서로 맡겠다는 기현상이 벌어진다.

특수학급을 맡겠다는 기현상이 벌어지는 이유

▲ 학기 초가 되면 부장을 하겠다는 교사들이 경쟁을 하게 되고 담임은 힘없는(?) 젊은 교사나 전입 순으로 맡게 되는 것이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것도 특수학급 자격증을 가진 교사가 아니라 자격증이 없는 사람들이 말이다. 그렇다고 특수학급 자격증을 가진 사람이 없는가 하면 그렇지도 않다. 학교마다 특수학급 자격증을 가진 교원들이 넘쳐 나지만 정작 그 사람들은 이미 특수학급으로 채울 승진 점수는 다 모았기 때문에 담임을 맡을 필요가 없는 것이다.

아이들을 사랑하는 마음도 없는 교사가 승진 욕심을 위해 불우한 입장에 있는 아이들을 팽개친다는 것은 불행한 일이다. 특수학급 자격증을 받을 때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겠지만 아이들을 볼모로 필요한 점수를 채우고 '나 몰라라'하는 사람이 승진해 훌륭한 학교를 경영할 교장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따가운 눈총을 피할 수는 없다.

불행한 아이들을 대상화해 승진점수를 따게 하는 승진제도 또한 비난받아 마땅하다. 부장교사라는 자리도 마찬가지다. 나이 많은 교사. 오랜 경험으로 노하우가 쌓인 교사는 담임에서 제외되고 '젊다는 이유로 하라면 해야 하는 담임자리'는 효율적이지도 인간적이지도 못하다.

승진을 위해 거쳐 가는, 그래서 학교장에게 잘 보여야만 가능한 부장이라는 직책은 이제 학교 안에서 필요악이 됐다. 이렇다 보니 자연히 확고한 교육철학도 없이 나이가 많다는 이유만으로 '갈라먹기'식으로 차지하는 부장자리는 없어져야 한다는 소리가 높다. 새로 전입한 교사, 또 젊다는 이유만으로 의무적으로 담임을 맡거나 승진점수를 얻기 위해 아이들을 볼모로 잡는 잘못된 관행은 바뀌어야 한다.

나이 많은 사람도 담임을 맡아 오랜 경륜을 아이들에게 쏟을 수 있는 그런 풍토를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 승진 점수를 따기 위해 부장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잘못된 관행을 바꾸지 않는 한 학교는 학기 초마다 겪는 홍역을 면키 어려울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김용택과 함께하는 참교육이야기
(http://chamstory.net/)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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