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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먼타임스
나는 어릴 적부터 고아원에서 일하고 싶어 했습니다. 나의 남편은 나에게 다가와 고아가 태어나지 않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며, 함께 그런 세상을 만들어 나가자고 내 손을 꼭 잡으며 프러포즈를 했었습니다. 그의 따스함이 내 마음을 움직였습니다.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가슴이 설렙니다.

이렇게 내게 다가온 남편은 그 어떤 어려운 상황에서도 노동자를 교육하고, 조직하고,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한 세상을 향해 살아야 한다고, 한순간도 게을리 보낸 적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의 희망이었고 등불이었습니다. 언제나 제게 이 세상 무엇보다 소중한 존재였던 그는 8년 전부터 힘들고 어려운 암 투병을 하게 되었습니다.

힘들고 괴롭고 아플 때 / 미소를 배우지 않으면 / 언제나 익힐 수 있겠나….

어느 날 남편이 살짝 건네준 글입니다. 이 글을 읽는 순간 남편이 미소를 지으면서도 내가 힘들어 할까봐 괴로운 표정을 감추고 있었을 것을 생각하며 가슴이 많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남편의 병원비를 마련하기 위해 송추 집을 팔았을 때 <조선일보>에서 땅 투기를 했다며 저를 비난하는 기사를 실었던 적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남편에게 국회의원을 그만두고 당신을 치료하는 데 전념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남편은 울고 있는 나를 달래면서, 민주노동당을 선택해준 국민들이 바라보고 있는데 일분일초라도 의정활동에 전념하라며 오히려 저에게 호통을 쳤습니다. 남편은 자신의 치료비 때문에 이런 일이 터진 것을 미안해했습니다.

그러던 남편이 위중한 상태가 되어서 나는 병원에서 생활하며 몇 달간 의정활동을 했습니다. 더군다나 원내 수석부대표를 맡았던 터라 일정이 2배로 늘었습니다. 그 힘든 시간을 오기로 버텼습니다. 집도 병원에서 10분 거리에 있는 곳으로 옮겼습니다.

그것도 잠시, 또 한 번의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너무 힘들어하는 남편을 보며 아들에게 “아빠가 너무 힘들어하시니 이제 우리가 아빠를 놓아주어야 할 것 같다”고 하면서도, 나는 남편이 깨어나기를 얼마나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제발 내 곁에 머물러만 달라고….

그 이후로 나는 하루도 빼놓지 않고 병원 소파에서 간절한 기도를 하면서, 퇴원하고 나서는 집에서 밤을 하얗게 지새우곤 했습니다. 밤늦은 시간까지 날 기다리며 아들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남편의 모습을 보는 순간 가슴이 저미어 얼굴을 쳐다보기가 힘들었던 기억도 있습니다.

며칠 후면 3·8세계여성의 날입니다. 100여 년 전 미국의 여성 노동자들이 노동조건 개선과 여성의 참정권을 요구하며 시위를 벌인 것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남편과 함께한 지난 세월은 불평등한 사회를 바로잡고, 인간의 평등함과 존엄성을 지키고자 소망했던 사랑의 세월이었으며, 특히 남편이 여성 노동자들과 함께한 사람이었기에 올해 3·8세계여성의 날은 저에게 더더욱 마음 깊숙이 자리를 잡습니다.

남편 황주석씨와 함께 30년을 꿈꾸었던 세상을 만들기 위해 저는 오늘도 열심히 뛸 것입니다. 남편과 살아왔던 삶이 후회 없도록 끝까지 최선을 다해서 살아갈 것입니다. 하늘에서 고통 없이 평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을 당신을 마음속으로 그려보니 나의 마음도 편안해집니다. 우리가 함께 꿈꾸었던 세상을 만들어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할 것을 약속합니다.

최순영 의원의 남편, 고(故)황주석씨는?

고 황주석(57) 전 YMCA전국연맹 대외협력국장은 1970년대 기독교 사회운동에 뛰어든 이후 1980년대 초 마산 YMCA 사회담당 간사를 맡으면서 사회운동가로 헌신해왔다. 최 의원과는 70년대 초 크리스챤아카데미에서 만나 30여 년간 부부이자 동지로 함께했다.

고인은 90년대 초 부천YMCA 총무로 일하면서 최초의 시민입법 조례였던 담배자판기추방 조례운동, 수은건전지 수거운동, 생활협동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등 지역 주민과 함께하는 운동에 주력했다.

그는 1999년 초 비인강암 판정을 받고 8년이란 오랜 투병생활 끝에 지난 2월 14일 5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투병 중에도 고인은 자신의 운동사를 정리한 ‘마을이 보인다 사람이 보인다’를 출간하는 등 눈물겨운 투혼을 발휘했다.

#여성#우먼#최순영#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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