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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 중 한 장면
ⓒ SBS
지난 일요일 많은 시청자들은 의아한 눈길로 < KBS스페셜 >과 < SBS스페셜 >을 보았을 것이다. 두 방송사가 '중국의 차마고도'라는 같은 주제로 만든 다큐멘터리를 같은 시간에 방송했기 때문. 두 방송사 모두 '세계 최초'임을 앞세웠고 '엄청난 시간과 노력'을 들였음을 프로그램 사이사이에 알리려고 무진 애를 쓰고 있다.

같은 주제로 두 방송사가, 그것도 같은 날에 방송을 내는 것은 매우 드문 일이라 흥미를 갖고서 두 방송을 지켜보았다. 서로의 주장을 살펴 보건대 자존심 대결도 만만치 않았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는데, 같은 곳을 갔다 왔다고 해서 이야기가 같을 법은 없었다. 역시 그랬다. 세상과 사물은 보고 해석하는 자의 관점이다. 두 방송을 모두 본 느낌은? 결론만 말하자면 SBS의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이 훨씬 낫다.

SBS 차마고도 vs. KBS 차마고도

차마고도(茶馬古道)는 중국의 차와 티벳의 말을 교환하는, 이름 그대로 차와 말이 교환되던 무역길이다. 이 옛길은 실크로드보다 더 오래된 것으로 중국 원난성과 쓰촨성에서 생산된 소금과 차를 티벳, 인도 등으로 실어 나르던 말 캐러밴의 이동로다.

해발 5000km에 이르는 가파른 길들은 폭 50cm 정도의 좁은 길로 아래를 바라보면 천길 낭떠러지다.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신에게 더 가까이 가기 위해 이 길을 밟아왔다. 이 무역로를 오가는 사람들의 집단이 마방이며, 프로그램은 마방의 여정을 담고 있다.

험난한 오지 차마고도 중심부인 캄 지역은 지난 2006년에야 외부 공개되었다. 지금껏 방송으로 다뤄진 적이 없고 미국의 내셔널지오그래픽과 일본의 NHK가 시도했으나 제작허가를 받지 못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에 한국의 방송사들에 의해 세계 최초로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었다는 점도 뜻 깊다. 두 방송사, 좀 더 엄격히 말하면 KBS와 독립제작사 인디비전의 '배틀'이 지난 일요일(11일) 장대하게 시작된 것이다.

< KBS스페셜 >의 '방송80년 대기획 인사이트 아시아 시리즈 차마고도 5000km를 가다'는 9월 본방송을 앞두고 있고 6부작을 방영한다고 한다. 3월11일 방송은 같은 날 방송 될 < SBS스페셜>의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을 의식해 '우리가 먼저 시작했다'는 방송기획 선점 효과를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인다. 급히 제작된 탓에 스케치 위주의 연결에다 깊이 있는 눈길이 느껴지지 않았지만 전체적으로 큰 그림을 그리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9월에 6부작이 방송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프리랜서의 근성이 빛났다

▲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 중 한 장면
ⓒ SBS
반면 < SBS스페셜 >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은 일단 구성면에서 뛰어나다.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은 프랑스 여인 알렉상드라 다비드넬의 여정에 따라 차마고도를 걸어본다. 그녀는 캄을 최초로 외부 세계에 알린 사람으로 여행금지조처에도 불구하고 캄의 오지를 여행한 모험가다. 100여년 전 발길을 다시 밟아가는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에서는 2개의 시간과 2개의 시선이 등장한다. 그것들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내가 그 길 위에 서 있는 듯하다.

이 프로그램이 돋보이는 두 번째 이유는 생생한 기록 때문. 다큐멘터리는 대상에 대한 부지런함과 애정의 기록이다. 마방의 신년제사 의식인 '쏭두'에 대한 기록에는 차마고도 마방의 일상과 종교의식을 담았는데 캄의 자연, 마방들의 민속의상, 경건한 의식 등에서 아름다운 그림을 보여주었다.

그밖에 PD가 온몸으로 헤쳐 나가는 장면들도 압권이다. 급류가 흐르는 계곡을 PD가 가죽 끈에 몸을 묶어 건너는 아슬아슬한 장면, 차마고도를 취재하다 벼랑에 떨어져 다치고 1억짜리 카메라가 부서진 사건 등은 '발로 뛴 다큐멘터리'라는 것을 증명해 주는 예다. 모든 화면이 구체적으로 큼직큼직하게 담겨져 있는 것과 내레이션에 충실한 것도 장점으로 꼽고 싶다.

▲ '차마고도 100일의 기록' 중 한 장면
ⓒ SBS
세 번째로 사람과 사물에 대한 따듯한 시선이다. 사람들의 노동과 땀, 문명지역과는 다른 그들 삶의 아름다움은 화면 곳곳에 배어난다. 문명의 시선으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이 아닌, 독특한 문화를 지닌 강한 사람들에 대한 존중은 곳곳에서 묻어난다.

특히 다음과 같은 장면에서 그것은 빛을 발한다.

티벳지역 중심지인 라싸 들어온 마지막 마방들은 해단식을 갖는다. 갑자기 몰려든 관광객들. 관광객들은 마방들을 붙들고서 기념 촬영하느라 야단이다. PD는 이 광경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순식간에 관광상품으로 전락한 그들이 가슴 아팠다."

KBS와 독립제작사 인디비전의 자존심 대결은 첫 방송을 탔다. 어느 방송이 더 나은지는 아직 더 지켜볼 일이다. 각각 오랜 세월 많은 애정을 쏟아부어왔다. KBS는 1년 6개월을, 인디비전은 3년을, 이 차마고도에서 땀을 흘렸다. 각각 노력한 만큼 결실이 나오겠지만 개인 제작자로서 이와 같은 긴 시간이 걸리는 다큐멘터리 제작은 대상에 대한 깊은 애정 없이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2부작으로 만들어진 '차마고도 1000일의 기록'은 오는 18일 2부가 방송된다.

덧붙이는 글 | TV리뷰시민기자단 응모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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