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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의 시간 중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대학생
강의 시간 중 문자메시지를 보내는 대학생 ⓒ 안태훈
올해 중3이 된 동생이 볼멘소리를 한다. 이번에는 자못 자세가 결연하다. 평소에 한 번씩 '휴대전화를 사주면 안 될까?'하고 넌지시 동정을 살피며 건네는 말에 부모님은 고등학생이 되면 그때 사주겠노라고 이야기를 해왔다. 단,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못 기다리겠으면 성적을 올려보라고, 만족할 만큼 성적이 오르면 그 때 사주겠다고 했다.

휴대 전화를 사 주지 않은 건 순전히 동생을 위해서였다. 요즘 아이들, 그렇잖아도 인터넷에 텔레비전에 중독돼 있는데 거기에 더하여 휴대 전화까지 가세시키면 불을 보듯 더 공부 안 할 것 같은 생각에, 남들 다 있어도 우리 집 아이만은 좀 자제시켜 보자는 의도에서였는데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요즘 학교 내에서 휴대 전화가 말썽이 되어 아예 하루 일과가 시작되기 전, 휴대전화를 모두 수거해 수업이 모두 끝나면 다시 돌려준다고 한다. 새 학기가 되었고 마침 그날은 특별히 교장 선생님이 직접 휴대 전화를 수거하러 동생의 반에 들어오셨다 한다.

동생 앞에 선 교장 선생님이 휴대 전화를 달라고 하자, 동생은 휴대 전화가 없다고 이야기했고 교장 선생님은 믿지 않으셨다 한다.

"휴대폰 있게 생겼는데, 꾀부리지 말고 얼른 내놓아!"

없는 걸 없다고 했는데 믿어주지 않은 선생님, 동생은 예의 사춘기 시절의 반항심이 모락모락 피어올랐을 것이다. 그렇잖아도 휴대전화 없어서 친구들에게 낯이 서지 않는데, 반 아이들이 보는 가운데 휴대 전화 없음이 더욱 부각된 이 상황, 동생은 너무 부끄러웠다고 했다.

고교 입학까지 아직 1년 남았지만 우리는 동생에게 휴대 전화를 사 주기로 했다. 반에서 휴대 전화가 없는 아이는 3명뿐이라 했다. 그나마 한 아이는 약간의 장애가 있어 휴대 전화 사용이 불가능한 상황이었고, 다른 아이는 휴대 전화를 너무 많이 사용해 잠시 사용이 중단된 상황이라고, 자신은 뭐냐고 툴툴거렸다. 친구 하나는 벌써 휴대 전화 단말기를 3번이나 교체했다고 노골적으로 불만을 터뜨렸다.

'휴대 전화 단말기를 세 번이나 교체한 것이 정상적인 것은 아니야! 충분히 쓸 수 있는데도 단지 식상해졌다는 이유로 멀쩡한 기계를 버리는 것이 올바른 일은 아니잖아?'라고 이야기해도 동생의 귀에는 별로 와 닿지 않는 듯했다. 이미 쌓여온 불만이 한순간에 폭발한 것처럼 보였다.

그래도 학생이 무슨 휴대 전화가 필요한가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자라나는 어린이, 청소년들에게 전자파가 더 위험하니 선진국에서는 아예 사용이 금지되고 있다는 소리도 들려오는 판국에 우리나라는 뭐가 잘못 되도 한참 잘못되어가고 아닌가.

도무지 우리 사회는 결핍을 모르는 사회 같다. 남들이 있으면 다 있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우리도 모르는 사이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아닐까. 아마도 그래서 청소년의 경우 한 반에 휴대 전화가 없는 아이들이 서너 명에 불과한 상황이 되었을 것이다.

물질의 풍요 속에 살지만 결핍도 알아야

휴대 전화 가입자 수가 말해주듯, 휴대 전화를 파는 가게도 넘쳐난다.
휴대 전화 가입자 수가 말해주듯, 휴대 전화를 파는 가게도 넘쳐난다. ⓒ 오마이뉴스 이승훈
물질의 풍요 속에 살지만 그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풍요로운 가운데서도 결핍을 가르쳐 주는 일이라 생각한다. 똑같이 교복을 입고 교실에 앉아 있는 아이들, 그 아이들은 자녀를 많이 낳지 않아 하나하나 모두 부모에게는 금쪽같은 자식들이지만, 풍요로울수록 절제도 할 줄 아는 아이로 자라게 해야 한다.

결국 우리도 항복하고 말았지만, 기쁜 마음으로 아이에게 선물하는 게 아니어서 기분이 그렇다. 한편으로는 그동안 '우리가 너무 심했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친구들이 다 가지고 있는데 얼마나 가지고 싶었을까?'하는 생각이 들지 않은 것도 아니지만, 절제할 수 있는 인격체로 자라게 하고 싶어서 그랬다는 걸 동생도 알까.

우리나라 휴대 전화가입자 수가 이미 4000만 명을 넘어섰고, 청소년 휴대전화 보급률도 세계최고 수준이라고 하는데 휴대 전화를 사용하며 생기는 문제점들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 같다. 하루에 100개 이상의 문자를 주고받는 아이들에게는 문자메시지에 중독 되지 않도록, 휴대 전화로 인터넷을 이용하는 아이들에게는 게임 중독이나, 유해 성인물에 노출되지 않도록 어른들의 관심과 배려가 절실히 요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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