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작가 아이라 레빈은 거의 평생 글을 써서 먹고 살았던 인물이다. 1929년 뉴욕에서 태어난 아이라 레빈은 23세 때, 첫 작품 <죽음의 키스>를 발표해서 에드가 앨런 포상을 수상하며 글자 그대로 화려하게 등단한 작가이다.
그후에 약 40년 넘게 오랜 작품 활동을 해왔지만, 그가 발표한 소설은 그다지 많지 않다.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 밖에 안 된다. 하지만 이렇게 적은 작품 수에도 불구하고, 아이라 레빈이 발표한 작품들은 거의 모두 걸작 미스터리 소설로 분류된다. 그의 작품들 대부분이 영화로 만들어졌고 베스트셀러 목록에 오르기도 했다.
아이라 레빈은 1952년에 첫 작품을 발표한 후, 무려 15년이 지난 1967년에 두 번째 작품을 발표한다. 그 두 번째 작품이 바로 <로즈메리의 아기>이다. 이후 1976년에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 1991년에 <슬리버>를 각각 발표한다.
물론 이 사이에도 다른 작품들을 여럿 발표했지만, 우리나라에 번역 출간된 작품들은 이 네 편이 전부다. 이 작품들은 모두 영화화되기도 했다. 특히 <로즈메리의 아기>는 지금도 공포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고전명작으로 꼽히는 영화이기도 하다(이 영화는 우리나라에서 <악의 씨>라는 제목으로 출시되었다).
상상력과 스릴러가 결합된 아이라 레빈의 작품들
아이라 레빈의 작품들을 흔히 미스터리 소설로 분류한다. 아이라 레빈은 작품 속에서 독특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서서히 긴장감을 고조시켜가는 방식을 사용한다. 아이라 레빈은 <로즈메리의 아기>에서 평온한 일상을 살아가던 한 부부에게 닥쳐오는 사악한 음모를 그려낸다. 악마주의와 오컬트가 결합된 이 음모는 작품속에서 으스스한 공포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또 아이라 레빈은 <브라질에서 온 소년들>에서, 당시만 해도 낯선 개념이었던 인간복제를 하나의 소재로 하고 있다. 복제를 통해서 만들어낸 소년들, 그리고 그를 이용해서 부활을 꿈꾸는 나치 잔당의 거대한 계획을 추적하고 있다.
그리고 <슬리버>에서는 카메라로 아파트의 모든 방을 훔쳐보는 병든 천재의 일상을 묘사한다.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약간 긴장감이 떨어지기는 하지만, 작품 속에서 아이라 레빈이 말한 것처럼 '텔레비전의 악몽'을 실감나게 묘사한 작품이기도 하다. <슬리버> 또한 영화로 만들어졌다. 할리우드는 이 영화에 샤론 스톤을 캐스팅했지만 결국 흥행과 비평 양쪽에서 모두 참패하고 말았다.
아이라 레빈의 작품들은 이렇게 독특한 소재를 바탕으로 독자의 상상력과 호기심을 서서히 증폭시켜간다. 악마주의와 오컬트, 인간복제와 나치 부활, 타인의 아파트를 훔쳐보는 사이코의 모습. 그리고 이런 작품 경향은 아직 원작이 국내에 번역 소개되지 않은 <스텝포드 와이프>에서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원작이 아닌 영화가 우리나라에 소개되었다. 니콜 키드만이 주연한 이 영화에서도 아이라 레빈은 평온해 보이는 마을에 감추어진 섬뜩한 모습을, SF적인 요소를 담아서 표현해냈다.
이렇게 보다면 오히려 아이라 레빈의 첫 작품인 <죽음의 키스>가 좀 예외적인 작품이 될지 모른다. 그의 작품들 중에서 정통 미스터리에 가장 근사한 작품이 바로 이 <죽음의 키스>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에서는 출세와 야망에 눈이 먼 한 젊은이가 세 자매에게 차례로 다가가서 완전범죄를 노리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아이라 레빈의 소설들은 대부분 영화로 만들어졌다는 공통점이 있다. 아이라 레빈의 작품들에는 영화로 만들면 좋을 듯한 요소를 가지고 있다. 색다른 소재와 독특한 상상력, 호기심을 증폭시켜가는 구성, 평범한 일상 뒤에 자리 잡고 있는 으스스한 요소. 아이라 레빈은 소설 못지않게 영화와 연극의 각본을 쓰는 일을 많이 했다. 그런 만큼 애초부터 영화화를 염두에 두고 소설을 집필했던 것 아닐까? 그리고 그의 영화들 중에서 가장 유명한 작품을 꼽으라면 아마도 <로즈메리의 아기>일 것이다.
기괴한 전설이 떠도는 아파트에 입주한 부부
@BRI@<로즈메리의 아기>의 배경은 1965년, 뉴욕 맨해튼의 고풍스러운 고급 아파트 '브램퍼드'이다. 신혼부부인 가이, 로즈메리는 이 아파트로 이사 와 새로운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 아파트는 무척 안 좋은 소문이 있는 아파트이기도 하다.
어린아이들을 잡아먹었다는 트렌치 자매, 살아있는 악마를 불러냈다는 에이드리언 마르카토의 이야기가 전설처럼 떠도는 아파트이다. 이상한 자살 사건이 자주 발생하고, 몇 년 전에 아파트의 지하실에서 신문지에 싸인 아기의 시체가 발견되기도 한 곳이다.
로즈메리 부부가 이 곳에 입주한다는 소식을 듣자, 오랜 친구인 허치는 이들을 만류한다. '암흑의 브램퍼드'라고 불리는 곳으로 굳이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 그 이유다. 이런 이상한 일들이 브램퍼드에서 연달아 발생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단순한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뭔가 알 수 없는 사악한 기운이 그 아파트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일까.
아이라 레빈은 작품의 시작부터 아파트에 떠도는 기이한 소문에 관한 이야기로 한껏 기괴한 분위기를 잡고 있다. 브램퍼드에 입주한 로즈메리 부부는 쾌적한 환경과 친절한 이웃들 때문에 평온을 되찾는 듯하다. 하지만 이런 평온함도 잠시, 아파트에 입주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로즈메리 부부에게는 좋은 일과 이상한 일들이 연달아서 발생한다.
"이 소설은 마치 스위스 시계를 보는 것처럼 정교하고 치밀하다. 아이라 레빈이야 말로 서스펜스 소설의 진정한 장인이다."
미국의 소설가 스티븐 킹이 <로즈메리의 아기>에 대해서 한 평이다. 기괴하고 으스스한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이 작품의 또 다른 묘미는 바로 치밀한 구성이다. 복선이란 무엇인가를 알고 싶다면 이 작품을 읽어보면 된다. 초반부터 하나둘씩 깔아놓은 수많은 복선들은 나중에 하나씩 그 정체를 드러낸다. 그리고 이 정체가 모두 드러났을 때에는 이미 현실이 악몽으로 변해가는 지점이다. 로즈메리 부부는 다시 예전의 평온한 생활로 돌아갈 수 있을까?
이 작품은 평범한 일상 뒤에 도사리고 있는 공포를 보여준다. 우리가 주변에서 자주 보아왔던 사물과 이웃의 모습들, 진정한 공포는 바로 그런 대상의 일면이 모이고 모여서 만들어 지는 것인지도 모른다.
<로즈메리의 아기>를 제대로 감상하는 방법은, 한밤중에 아무도 없는 방에서 혼자 이 소설을 읽는 것이다. 비바람이 몰아치는 밤이라면 더욱 효과적일수도 있다. 조용하고 여유로운 독서의 시간이 으스스한 기괴함으로 바뀌어 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그야말로 평온하던 일상 속에 감추어진 두려움을 체험하는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아이라 레빈 지음 / 공보경 옮김. 황금가지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