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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솔숲도, 그 위에 둥지를 틀고 아기를 기르던 솔부엉이도, 이제는 대추리의 것이 아니다. 고단한 들일을 마치고 몸을 뉘였던 집은 바스러져 내렸다. 늙은 농부들은 두 개의 '옛 대추리'를 가슴에 묻고 있다.
아담한 솔숲도, 그 위에 둥지를 틀고 아기를 기르던 솔부엉이도, 이제는 대추리의 것이 아니다. 고단한 들일을 마치고 몸을 뉘였던 집은 바스러져 내렸다. 늙은 농부들은 두 개의 '옛 대추리'를 가슴에 묻고 있다. ⓒ 노순택

대추리에 갈 때면 나는 홀로 밤길을 걷곤 했다.

대추리의 밤 풍경은 많이 변했다.

캠프 험프리에서 쏘아대는 서치라이트는 오늘도 여전히 밝고 눈부시다. 그건 빛일 뿐인데도, "꼼짝 마, 새꺄!" 하는 소리를 내질러 사람을 불안으로 내몬다. 육중한 전쟁기계가 낮밤을 가리지 않고 굉음을 내며 뜨고 내리는 것도 어제와 다를 바가 없다. 담벼락에 닿을 듯한 저공비행은, 한두 번 본 게 아닌데도 아슬아슬해 간담이 서늘해진다. 변한 게 없구나, 너희들은.

미군기지는 밤이면 잠을 자라고, 새벽이면 일어나라고 나팔을 불어낸다. 나팔소리 따라 미군이 자고 일어나고, 나팔소리 따라 농부들도 자고 일어났다. 늘 그래왔다.

철조망 너머 미군기지는 오늘도 여전한데, 농부들의 집과 들녘은 알아보지도 못할 만큼 변했다. 55년 전의 옛 대추리를 그리워하며 미군기지 철조망 옆에 오밀조밀 지었던 작은 집들은 한 집 건너 한 집 꼴로 바스러져 내렸다. 집주인의 문패 대신 "철거지역의 접근을 금지한다"는 붉은 표지판이 무언가 심상찮은 일이 벌어졌음을 암시할 뿐이다. 벼와 보리가 너울거리던 너른 들녘은 쳐다보기도 싫을 만큼 파헤쳐졌다. 저곳이 진정, 그때 그 생명의 대지였던가.

"모든 걸 빼앗겨도, 마음을 빼앗기지 않으면 우리는 결코 지지 않을 것!"이라던 늙은 신부의 노여움은 힘겨운 눈물로 뚝뚝 떨어져 내렸다.

"내 몸의 고향이자, 내 서정의 고향이 무너져 내리는 걸 그냥 보고만 있을 수는 없다"며 거리에서, 미군기지 앞에서, 비닐하우스에서 쉼 없이 노래했던 '도두리 출신 가수'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저 들에 불을 놓아' 속의 애잔하고도 아름다운 풍경은 이제 노랫말에만 남았을 뿐이다.

일흔 살 노영희 할머니는 추적추적 내리는 비를 맞으며, 대추분교 운동장에 섰다.

손에는 소주 한 병이 들려 있었다. 물찬 갯벌을 건너 멀리 학교를 다녀야 하는 애기들이 안쓰러워, 쌀을 모으고 보리와 콩을 팔아 농부들 스스로 지은 학교였다. 그런 부모들의 공을 알았기에 대추분교는 졸업식이면 부모들에게도 감사장을 주었다. 대추분교는 폐교가 된 뒤에도 마을의 대소사를 품어 안았던 너른 마당이자, 마을을 지키려는 저항운동의 버팀목이었다. 국방부의 포클레인 삽날에 힘없이 무너져 내린 대추분교의 잔해를 돌며 노영희 할머니는 그 위에 소주를 부었다.

"내가 무슨 할 말이 있어. 이제는 아무거랑도 할 말 읎어. 이제는 욕도 안 나와. 여기 바라보면 나도 모르게 한심이 나오고, 눈물이 줄줄 흐르고…. 우리 손자가 대전에서 공부를 잘 하는데, 나중에 뭐가 될 거냐 그러니까 판사가 되겠다네. 그래서 예끼 이놈아, 사람이 사람 구실을 해야지 정승 판사가 되면 다 뭐할 거냐, 그랬어. 우리나라에 대통령이 있고, 국회의원이 있고, 판사가 있으면 뭘 해? 우리처럼 힘없는 사람들 땅하나 못 지켜 주는 걸…."

할머니는 대추분교와 주거니 받거니 소주를 나누어 마셨다. 울다가 웃었고, 웃다가 울었다.

"올해도 농사짓고, 내년에도 농사짓자"던 구호는 이제 대추리에 없다.

이제 누구도 "질긴 놈이 이긴다"는 불안한 신념을 떠들지 않는다.
많은 농부들이 마을을 떠났고, 지친 농부들만이 마을에 남았다. 대추리를 지키기 위한 싸움은 끝났다. 그 치 떨리던 파괴와 저항의 기억을 남긴 채 싸움은 일단락되었다.

농부들은 935일을 마지막으로 촛불을 든다. 바로 내일이다.

지치고 고단한 농부들은 대추리를 오갔던 숱한 학생과 노동자, 시민들을 마지막 촛불집회에 초대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대추리를 찾아오지 않았던 사람이라도 찾아와주기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올해도 농사짓고, 늙어 죽을 때까지 농사짓자"던 약속은 이제 없지만, 여기 우리의 대지를, 우리의 피눈물을, 가슴에, 머리에 오래도록 기억해 달라고 호소한다.

늙은 농부들은 더 이상 촛불을 들지 않지만,
그리하여 대추리와 도두리는 영영 사라져 버리지만,
기억은 오래 남을 것이다.

너른 들녘과 그 땅의 농부들에 관한 기억은, 그들이 왜 피눈물을 흘리며 떠나야만 했는지를 되묻는 과정이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생명의 들녘을 죽음의 전쟁기지로 만들기 위해 저질러졌던 숱한 불법과 파행, 폭력의 죄를 물어야만 할 것이다. 비록 더딜지라도.

미군기지확장사업 국회비준의 약속이었던 청문회는 왜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는가.
왜 아무도 대답하지 않는가.

당신들이 대체 무슨 짓을 저지른 것인지, 또한 우리가 무슨 짓을 방조한 것인지,
대추리의 밤 풍경은 말없이 묻고 있다.
#대추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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