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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 시리즈의 변화는 멈추지 않는다. 특정 연령대 여성층의 입맛에 맞추던 드라마 시리즈가 범람하면서, 젊은 시청자들 중심으로 비판의 움직임도 만만치 않은 판국이다. 그러는 사이, 그들은 '일드(일본드라마)'에 심취했고, 이제는 '미드(미국드라마)'에 대해서도 열광적인 지지를 보내고 있다.

그런 움직임은 드라마 시리즈에 뼈를 깎는 변화를 요구하는 움직임이나 다름없었다. 완성도를 떠나, 걸핏하면 출생의 비밀과 불륜을 남발하면서 드라마 시리즈의 품위를 스스로 깎아먹는 뻔한 얼개의 이야기는 제발 벗어나 달라는 뜻이다. '일드'와 '미드'는 신선한 소재와 그에 대한 분명한 연구, 치밀한 이야기 전개로 그들을 사로잡았다.

물론 <네 멋대로 해라>나 <아일랜드>와 같은 드라마도 있었고, 최근에는 <하얀 거탑> 시리즈가 열광적인 사랑을 받았지만, 시청률 자체는 두드러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런 드라마들은 탄생 자체가 그리고 인터넷에서의 열광적인 열기가 화제가 됐다. 이 열기는 정체된 드라마 시리즈에 대한 변화의 움직임을 더욱 적극적으로 주도하리라 믿는다.

소재의 변화, '사이코메트리'를 등장시킨 <마왕>

▲ '사이코메트러'로 출연하는 '서해인(신민아)' 능력자만이 겪는 괴로움을 잘 표현할 수 있기를 바란다.
ⓒ KBS
소재 변화의 움직임은 이제 <마왕>이 이끌어갈 듯한 분위기다. '사이코메트리'는 안도 유마와 아사키 마사시의 일본만화 <미스터리 극장 에지(원제: 사이코메트러 에지)>를 통해 친숙한 소재다.

'사이코메트리'는 특정 사물에 손을 대면, 소유자나 그에 얽힌 중요한 상황에 대한 잔상을 읽어낼 수 있는 능력이다. 놀랍게도, 남성은 10명 중 1명, 여성은 4명 중 1명이 이 능력을 잠재했다는 연구결과도 있었다.

<미스터리 극장 에지>는 주인공 '에지'를 능력자로 그리면서, 여성 형사 시마를 보조한다는 이야기 구도로, 다양한 에피소드를 그려나간다.

<미스터리 극장 에지>는 주로 인간의 본질적인 욕망을 그려나가면서, 욕망의 일그러진 추구가 인간의 본질적인 악과 연계된다는 식의 사고방식을 가졌다. 포르노에 중독된 은둔형 외톨이도 있었으며, 클라이맥스에는 IQ지수 200에 달하는 미남 범죄자 '애플(아키라)'과의 대결이 정점에 달한다.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면, '에지'는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활용하면서, 인간의 추악한 이면을 자주 바라보며 인간을 미워했다는 설정이다.

그가 사이코메트리 능력을 활용하게 되는 계기는 대체로 범죄 수사이며, 범죄란 인간의 욕망과 헛된 증오가 뒤섞여 일어나는 추악한 결정체. 인간의 숨겨진 이면이 표출되는 극단적인 순간이다.

같은 소재의 활용으로 인해, <마왕>은 여러 가지 면에서 <미스터리 극장 에지>와 비교되는 상황에 놓이게 된다. 단적으로 <하얀 거탑>만 해도, 필자도 그랬지만 야마자키 도요코의 동명소설을 뿌리로 둔 <의룡>과 비교하는 일부의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에피소드 나열 중심으로 이야기가 전개되는 <미스터리 극장 에지>와는 달리, <마왕>은 하나의 감춰진 과거를 놓고, 여러 등장인물을 촘촘하게 연계시키는 흐름 중심의 드라마 시리즈다. 더 큰 기대가 모아지는 이유다. 박찬홍 감독과 김지우 작가는 이미 <부활>이라는 명품으로 열광적인 지지를 모았던 적이 있다.

선은 악의 가면, 악은 원한의 표출

무의식이라는 것은 인간의 심리에 있어, 가장 흥미로운 영역이다. 인간이란 자신이 기억하고 싶은 것만 기억하려는 본능이 있으며, 지우고 싶은 기억은 스스로 지우거나 변조시킬 수도 있는 무의식이 있다.

<마왕>이 프롤로그로 한 편의 살인사건을 내세운 이유라고 할 수 있겠는데, 이 사건이 앞으로 전개될 모든 이야기의 뿌리이자 원죄로 작용할 것이다.

정치인 아버지에 반발하며 형사가 된 '강오수(엄태웅)'는, 바로 그 '아버지에 대한 반발'이 그의 심리를 지배하는 주요한 강박관념으로 작용한다. 학창시절에는 그로 인해 문제아로 낙인찍혔다가, 그 살인사건과 연계되면서 '부활'이 아닌, '변신'을 한다.

물론 아버지에 대한 반발은 여전하다.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형사가 됐으며, 아버지와 다른 길을 걷고 싶은 것인지, '정의파 형사'가 된다. 하지만, 그가 애써 무의식 속에 가둔 그 살인사건이 이제 본격적으로 전개될 예정이기 때문에, 그의 또다른 변화가 주목되는 이유다.

우리는 "장난으로 던진 돌에 개구리는 맞아죽는다"라는 속담을 알고 있는데, <마왕>에서는 '강오수'가 아버지에 대한 반발 심리로 저지르는 불량스런 행동에 '칼 맞아죽은' 이가 있다.

▲ 아버지에 대한 반발 심리가 '악'으로 연결된, 무의식에서는 그것을 '선'의 외피로 감춰버린 '강오수(엄태웅)'
ⓒ KBS
주지훈이 맡은 '우승하'가 그 이면을 대변하는 캐릭터다. 그는 선이라는 외피를 둘러쓴 천재적인 악이다. 하지만, 그가 치밀하게 연출해내는 악의 이면은 '원한'이다.

소중한 꿈과 현실이 한순간에 날아가버린 그 순간에 대한 원한인 것이다. 인간의 심리에는 원한이라는 것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범죄의 원인으로도 작용한다.

결국 <마왕>은 자신이 저지른 악을 지우고 싶어하는 '변신 천사'와, 천사의 날개를 떨어뜨렸음에도 천사를 가장하며, 떨어진 날개에 대한 원한을 풀고 싶은 천재적인 악의 만남을 유도하는 것이다.

<부활>에서의 멋진 복수극을 이끈 엄태웅을 '변신 천사'로 등장하는 것도 그렇지만, 어딘가 <데스노트>의 '라이토'를 연상시키는 주지훈의 이미지도 꽤 흥미롭다. '라이토'는 일그러진 정의의 추구와 정상에 서고자 하는 욕망이 결합돼 끔찍한 범죄를 저지르는 캐릭터.

'우승하'가 '사건' 이후로, 중졸 학력으로 사법고시 수석합격을 거쳐 변호사가 됐다는 것은 중요한 설정이다. 라이토는 천재적인 두뇌와 고위경찰이라는 아버지의 신분도 중요 무기로 자리잡지만 진정한 블루칩은 '데스노트'다.

하지만 배경 하나 없는 '우승하'가 복수의 프로그램을 짜고 지휘할 만한 실력과 배경을 갖추자면 '개천을 벗어난 용'이 될 수밖에 없다. 그의 블루칩은 '변호사', 그것도 '선행을 베푸는 천재 변호사'라는 이미지다. 배후에 숨어 복수를 지휘하기에는 가장 이상적인 이미지다.

선과 악이 뒤틀린 인간세상의 묘사를 기대하며

▲ '복수'를 위해 '개천에서 벗어난 용'을 선택했으며, 그를 위해 저지를 '악'을 위해 의식적으로 '선'을 행하는 '우승하(주지훈)'
ⓒ KBS
엄태웅의 캐스팅에서도 알 수 있듯이, <마왕>은 악역 전문 배우를 선한 캐릭터로 캐스팅하거나, 세련된 악을 묘사하기 좋은 캐릭터를 복수에 불타는 지능적인 악으로 캐스팅하는 매력적인 캐스팅을 앞세웠다.

비열한 악을 주로 연기하던 김규철이 '우승하'의 사무장으로 등장하면서, 우직한 연기를 하는 것이 특히나 인상적이다. 이런 캐스팅, 그리고 앞서 이야기한 주인공들의 캐릭터로부터 알 수 있듯이 <마왕>은 인간의 변화무쌍한 내면과 무의식을 긴장감있게 묘사할 것으로 보인다.

'사이코메트리'라는 소재로 화제가 됐으며, 그로 인해 <미스터리 극장 에지>와도 비교되지만, 가는 길은 다를 것 같다.

<마왕>의 중심소재는 한 편의 살인사건에 얽힌 인간의 변화무쌍한 무의식일 뿐, '사이코메트리'는 예상만큼 큰 비중을 갖고 있지는 않다. 시청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소재 그 자체보다는 엇갈린 두 캐릭터의 '앞으로'일 것이다.

드라마 시리즈는 영화 장르보다, 소재를 치밀하게 묘사할 수 있는 시간과 여유를 더 확실하게 보장받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지금까지의 드라마 시리즈는 그 장점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며, 복제된 연애 이야기나 불륜 이야기에 쏟아부어가며 공상과학과도 같은 묘사를 했다는 점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하얀 거탑>도 그렇지만, <부활>에 이은 <마왕>도 시청자들의 그런 기대를 충족시킬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 캐릭터의 엇갈린 '앞으로'가 더욱 흥미진진해지길 바란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미디어다음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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