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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학동네
언제부터였을까? 문학이라는 것이 '킬링타임용'으로 평가절하되더니 이제는 자기계발서에 밀려 책다운 평가를 받지 못하고 있다. 문학의 가치에 대한 부정적인 평가가 심심치 않게 들릴 정도다.

하지만 조정래는 <오 하느님>을 통해 그런 말들을 일거에 몰아내고 있다. 일본군, 소련군, 독일군, 미군의 포로가 되는 동안 오로지 집에 돌아가고 싶다는 일념 하나로 버티는 조선인들의 모습을 그린, 조선인을 비극으로 내모는 비인간적인들의 횡포를 다룬 <오 하느님>으로 문학이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하게 해주는 것이다.

"이 작품은 2중구조로 이루어져 있어. 첫 번째는 도대체 인간이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이야. 이건 근본적이고 아주 본질적인 문제지. 전 인류가 대답을 구하려고 했지만 구하지 못했던 질문인데 이번 작품에서 그 질문을 던졌어. 두 번째는 국가라는 조직에 대한 것이야.

국가이기주의! 포악하고 흉악한 국가! 그것이 극적으로 드러난 것이 바로 세계대전이야. 특히 2차 세계대전이 그렇지. 국가이기주의라는 것은 그렇게 무서운 거야. 우리 민족은 어땠어? 약소국으로 강대국들에 치였어. 이 작품이 바로 그것을 보여주는 거야.

그런데 그것이 과거의 이야기야? 지금과 뭐가 달라? 작품 속에서 중국만 빠졌을 뿐이지, 미국, 소련, 일본이 다 있잖아! 이 작품은 과거사가 아니야. 이건 현재의 이야기야. 또한 미래의 이야기야. 과거의 그것을 기억할 때, 그것에서 분노만 해서는 안돼. 현재 우리 위치가 어떤지, 또 앞으로는 어떻게 할 것인지를 생각해야 돼. 과거의 분노를 거울삼아야 하는 거야."


조정래의 말이 맞다. <오 하느님>의 조선인들은 비극적인 상황에 몰린다. 일본군, 소련군 등으로 전쟁터에 나서야 했다. 나라에 힘이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는 어떠한가? 그의 말처럼 강대국들의 눈치를 봐야 하는 건 여전한 것 같다.

그래서인가? 이 작품의 비극성이 가슴을 파고든다. '소설을 읽는다'는 느낌이 들지 않고, 가슴 떨리는 기억을 떠올린다는 생각부터 앞선다. 그런데 이상하다. 이 비극적인 것이, 상당히 빨리 읽힌다. 눈을 뗄 수 없는 흡인력이 있다. 책 읽기 싫어하는 젊은이들까지 끌어당길 정도다.

"이 소설의 내용은 급박해. 소설 속의 시간은 길지만 작품 내내 위기감이 팽배해 있어서 그래. 소설의 여러 요소로 그것을 보여주려고 했어. 먼저 긴박하게 하려면 만연체는 안돼. 빠르게 읽을 수 있도록 했어. 또한 강, 약, 강, 약이 아니라 강! 강! 강! 강! 이렇게 썼어. 그리고 상징을 많이 쓰기도 했어.

이 작품에는 독수리나 까마귀가 나와. 흉계를 의미하는 거야. 시체도 많아. 상황의 비극을 이야기하는 거야. 처절함을 알려주는 거야. 소설 속 그들은 외쳐. 하지만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 인간의 비극이야. 이것을 문체나 상징 같은 것으로 보여주니까 빨리 읽히고 젊은층도 쉽게 읽을 수 있는 거야."


독수리, 까마귀, 시체… 그리고 막다른 곳에 몰린 조선인…. 나는 책을 보면서 '오 하느님!'이라는 책 제목을 여러 번 중얼거렸다. 그들의 운명이 너무 기가 막힌 탓이었다. 그들의 마음을 이용하는 강대국의 마음이 너무 얄미운 탓이었다.

"정말 '오 하느님 맙소사!'야. 어찌 해야 합니까! 하는 거지. 이건 절망에 빠진 절규야. 영어로 하면 오 마이 갓이지. 생각해봐. 사람이 사람에게 어찌 이럴 수 있는가? 절규가 나오지. 이 제목 정하는데 힘들었어. 내가 36년 동안 글을 썼어. 그런데 이번처럼 제목 정하기가 어려웠던 적은 처음이야."

작가는 휴머니스트다!

▲ 조정래
ⓒ 알라딘
<오 하느님>을 보면서 새삼 든 생각은 조정래의 작품이 역사적인 것과 많이 닿아 있다는 것이다. 특히 전쟁은 어떨까? 조정래는 1943년생으로 전쟁은 물론이고 전후세대를 몸소 겪었다. 그 경험이 작용하는 것일까?

"모든 작가는 휴머니스트야. 핍박을 받아도 인간을 위한 글을 쓰기 때문이야. 그리고 인도주의자고 자유주의자야. 빅토르 위고와 사르트르, 그리고 에밀 졸라를 봐봐.

그들이 왜 존경 받겠어? 작가에게는 사회적인 소임이 있는 거야. 그리고 작가의 소설은 인간적인 삶에 기여해야 하는 거야. 전쟁을 생각해봐. 외국 군대가 들어왔어. 이 땅을 짓밟았어. 그 꼴을 보면 어떻겠어? 뭐가 중요하겠어? 이 땅은 왜 핍박받았는가, 그걸 생각하게 되지."


'휴머니스트'라는 단어가 인상적이다. 그런데 그런 작가들이 사회에 참여하는 방식이 여러 가지다. 어떤 사람은 정치에 참여하려고 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대중매체에 일절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다. 조정래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작가는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대해 저항해야 돼. 그게 사회가 작가에게 요구하고 기대하는 거야. 작가는 전적으로 진실만을 이야기해야 돼. 그래서 작가는 그 시대의 산소이고 인류의 스승인 거야. 진실 외에는 말하면 안돼. 작가는 진보적이야. 나쁜 것들을 쓸 줄 알아야 돼!

존경받는 작가들을 봐. 욕먹어도 입 바른 소리만 했어. 작가는 감시자야. 그리고 감독관이야. 그런 작가가 진보적이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어? 그건 자기 파멸인 동시에 문학에 대한 배신이야. 나는 테러 위협을 당했어. <태백산맥> 때문에 검찰수사도 받았어. 그래도 입 바른 소리만 했어. 작가로서 약한 자를 돕겠다! 바로 그것 때문이야."


"한국문학의 위기는 무책임한 말"

조정래에게 일본소설이 인기몰이를 하고, 대신에 한국소설이 읽히지 않는 상황에 대해 물었다. 물어보면서 내심 대답을 예상했는데, 거장의 입에서 나온 말은 뜻밖의 것이었다.

"큰 문제 아니야. 사람은 알고 싶은 욕구가 있어. 미지의 세계로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해. 일본소설 보는 거? 그건 무엇인가, 궁금한 거지. 당연한 거야. 그보다 문제는, 문명이야. 한국소설 안 읽히는 거? 작가들 잘못 아니야. 애들 뭐하는지 생각해봐. 인터넷은 블랙홀인데 그것에 빠져 있어. 핸드폰은 어때? 책을 읽고 사색해야 하는데, 핸드폰으로 수다만 두세 시간씩 떨고 있어. 문명의 이기가 아니라 폐악만 누리고 있어. 그게 필요해? 핸드폰? 없어도 돼.

나는 컴맹이야. 그렇다고 해서 불편해? 아니야. 육필로 쓰는데 불편한 거 없어. 잘못된 분위기 때문에 책이 안 읽히고 있어. 주5일제 시행할 때 설문조사 한 거 봐봐. 주말에 뭐 하냐고 물었더니 TV를 몇 시간 동안 보고 핸드폰 쓴 게 몇 시간인데 책 읽은 시간은 고작 7~8분이라고 나왔어."


그럼에도 조정래는 "문학은 우리가 언어를 쓰는 한 영원할 거야"라고 말했다. 지금의 상황은 '일시적 침체기'이기에, 사람들이 인터넷이나 핸드폰에 싫증내고 책의 필요성을 느끼게 될 것이라는 말이다.

"한국 문학의 위기? 그런 말 하는 건 무책임한 거야! 생각해봐. 1970년대에 10만부 팔렸을 때 난리 났어. 최고의 베스트셀러였어. 지금 그러면? 베스트셀러에 잠깐 들어갈 뿐이잖아. 지금 아동물 봐봐. 매년 성장하고 있어. 그 애들이 커서 독서인구가 되는 거야. 대한민국, 괜찮아! 작가가 진지한 작품 쓰면 진지한 독자들은 기다리고 있어!

모든 사람이 책 읽기를 바랄 수는 없어.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일시적 현상인 거야. 대신에 신인들! 더 치열한 생각으로 좋은 작품 써야 돼. 작가는 독자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감동을 줘야 돼. 사람들 8시간 일하지? 그럼 작가는 두세 배로 노력해야 돼. 나는 일요일이 없어. 매일 6시에 기상해서 글 쓰고 있어. 나는 나의 재능을 믿지 않아. 재능은 모두 비슷해. 성실함과 노력이 중요한 거야. <오 하느님>과 <태백산맥> <아리랑> 다른 문장이잖아? 그렇게 하려고 그만큼 노력한 거야."


독자들의 영혼을 흔들어 깨우고 감동을 주기 위한 노력과 성실함… 그의 말을 듣고 있는 동안 그가 왜 '거장'이라고 불리는지를 깨닫게 된다. <아리랑>과 <태백산맥>, 그리고 <한강>에 이어 "모든 비인간적인 것에 저항하라!"는 <오 하느님>이 나오게 된 것도 십분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조정래는 <오 하느님>이 과거를 돌이켜보고, 그럼으로써 현재를 돌아보고, 미래에는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를 생각하게 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책 한 권으로 새롭게 눈을 뜨게 해줬으면 좋겠다는 말이다. 그럴 수 있을까? 조정래라면, 그리고 그의 노력에서 빚어지는 작품이라면 응당 그렇게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다. 조정래라면, 그것을 가능하게 만들 것이리라.

덧붙이는 글 | 인터뷰는 지난 22일 인터넷 서점 알라딘 편집팀과 함께 파주 출판도시 문학동네에서 진행했습니다.


오 하느님

조정래 지음, 문학동네(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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