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 아줌마에서 마을 디자이너로. 김수영씨는 수유5동주민자치센터에서 마을 교사로 일하며 삶의 자신감을 얻고 있다.
ⓒ 김형우

주민자치센터(아래 자치센터)는 가깝고도 먼 존재다. 대한민국 동사무소라면 어디나 자치센터를 운영하고 있지만, 인천참여자치연대 조사에 따르면 주민의 15%만이 자치센터를 인지하고 있을 뿐이다. 시행 7년이면 적지 않은 시간인데 말이다.

자치센터와 관련한 근래 기사를 보면 두 가지 상반된 시각의 보도가 공존한다. 주민 참여는 답보상태에 머문 채 문화센터 기능에 머물고 있다는 식의 회의적인 평가와, 작게나마 변화하고 있는 몇몇 자치센터의 움직임에 관한 기사가 그것. 전자가 자치센터를 일반적으로 평한 기사라면, 후자는 풀뿌리 지역 단체를 중심으로 일고 있는 의욕적인 접근과 소수 지자체의 태도 변화를 다루고 있다.

그럼에도 원칙적이나마 자치센터의 시대적 사명은 참 소중하다. "주민편의와 복리증진을 도모하고 주민자치기능을 강화해 지역공동체 형성에 기여하는" 것을 소임으로 선언하고 있다. 바로 한국 사회에서 주요하게 다뤄지고 있는 대안 모색 방향과 정확히 일치한다. 민관협력의 거버넌스 실현, 대의제 민주주의에서 참여 민주주의로 이행은 이미 어느 동사무소 한 귀퉁이에서 실험되고 있다.

'소셜 디자이너'(social designer)는 희망제작소의 박원순 변호사가 새롭게 내건 직함이다. 사회를 가꿔가는 일, 공적 영역을 기획하는 직업에 대한 발상은 그 자체로 도전적이다. 새로운 개념은 현실을 새롭게 발견한다 했던가?

이미 동네 단위에서 공공의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참 기쁜 일이었다. 지난 3월말, 서울 강북구 수유5동 주민자치센터에서 마을의 필요를 애면글면 고민하는 김수영(40)씨와 만났을 때도 그랬다.

"원래 하숙집 아줌마였다. 일을 다시 찾다가 식당에서 제안 받았다. 고민하다 이 일을 선택했다. 무엇하러 비전 없는 그런 곳에서 일하냐는 말을 들었지만 참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다. 일이 너무 좋고 자신감이 계속 생겨나고 있다."

김씨는 아직 공식 직함이 없다. 공공근로 형태로 자치센터 운영과 프로그램 관리를 맡고 있기 때문. 당분간 관에서 주도한다는 정부 방침에 따라 운영 권한을 동장이 갖고 운영 등에 관한 사항을 심의하기 위해 동사무소에 주민자치위원회를 두었지만, 자치위원회가 실무 기능을 뒷받침해주지 못해 지역 주민이 공공근로 형태로 참여하고 있는 상황이다. 말 그대로 과도기적 상황에서 그 틈을 메우는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다음은 김수영씨와 한 인터뷰 요약문.

- 어떻게 자치센터에서 일하게 되었나?
"일을 찾다가 아이 교육에 도움이 되는 일 같아서 처음에는 마을문고에 지원했다. 마침 원어민 강사 보조 자리가 비어서 강좌 도우미를 하면서 인연을 맺었다. 아이와 함께 영어공부 하던 실력으로 겁 없이 시작했다."

- 주로 하는 일은?
"수강생 출석관리부터 접수, 수강 상담까지 자치센터에 필요한 모든 일을 한다. 동사무소 담당 공무원과 소통하면서 자치센터의 필요와 방향에 대해 이런저런 고민을 하고 있다. 참여자들의 요구를 모으기도 하지만, 마을에 꼭 필요한 강좌가 뭐가 있을까 생각하게 된다. 더불어 고민해야 하는 것은 강좌를 진행할 숨어있는 재주꾼들을 찾아내는 일이다. 우리 주변에는 썩혀두기 아까운 재주를 지닌 분들이 많다."

- 수유5동자치센터의 장점은?
"현재 강북구는 원어민 영어 교실을 자치센터 내에서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영어 사교육 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되기 쉬운 강북 지역 아이들을 위해 일반학원의 반 가격으로 강좌를 연다. 현재 참여하는 아이들은 35명 정도.

외국인 강사라고 까부는(?) 아이들을 혼내는 일부터 강의와 관련해 여러 가지 제안까지 하고 있다. 원래 나서는 걸 좋아하다 보니 수업에 많이 관여하고 있다."

- 일하면서 얻는 보람이 있는지?
"원래 선생님이라는 게 나하고는 안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수업을 통해 아이들이 바뀌고 영어에 흥미를 느끼는 것을 보면 뿌듯하다.

지난 겨울방학에 저소득층 아이들을 대상으로 방학교실을 진행하면서 가장 큰 보람을 느꼈다. 아무 경험도 없었지만 필요한 일이다 싶어 하게 됐다. 제일 힘들었던 기억이기도 하지만, 어느 엄마가 찾아와서 '방학이 싫었는데 이젠 방학이 좋아졌다'는 아이의 말을 전해줬던 게 기억난다. 일을 다시 바라보게 된 계기였다."

- 자치센터의 현 주소는?
"현재는 어린이와 주부만 참여하고 있다. 청소년, 청년, 성인들은 없다. 지난번 자치센터 운영을 맡고 있는 이들과 워크숍을 했다. 그 자리에서 '획일화돼 있는 강좌들을 정리하자, 특화할 수 있는 강좌를 내세우자, 이익을 창출할 수 있는 기획이 필요하다' 등의 의견이 나왔다.

자치센터 운영이 만만치 않다. 수익을 낼 수 있는 구조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무엇보다 자치센터 활성화와 전문적인 관리를 위해 주민자치센터 전담 요원이 필요하다. 동사무소에 계속 건의하고 있다."

- 앞으로 계획 또는 바람은?
"아직은 구상 단계지만 방과 후 교실을 열 계획이다. 우리 동네엔 맞벌이 부부와 한부모 가정이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많은 지역 주민이 참여하는 공간이 됐으면 한다. 개인적으로 한살림 회원이어서 회원모임을 자치센터에서 하고 있다. 지역 주민 누구라도 공부하고 싶은 주제가 있으면 제안할 수 있다. 무엇보다 많은 자원 봉사자와 함께 기획하고 여러 가지 일을 만들어갔으면 좋겠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