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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고 있는 신동진씨.
웃고 있는 신동진씨. ⓒ 위드뉴스
'화창하다.' 서울 종로구청 앞 정문에서 신동진(뇌병변 3급·31)씨를 기다리며 든 생각이다. 구청 측에서 마당에 심어놓은 각각 색과 모양의 꽃들이 밝은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약속시간인 오전 11시 30분에 정확히 모습을 나타낸 그는 가벼운 양복 차림이다.

신씨는 종로구청 교통행정과에서 신규 차량 등록 같은 업무를 맡아 일하는 공무원. 3급이면 경증 장애에 속하지만, 언어 장애가 있어 초면인 사람은 보기에 따라 중증 장애인으로 보기 십상이다. 신씨 역시 비슷한 마음고생을 했을 거란 추측이 들었다.

그와 인터뷰를 하기로 약속하기 전 신씨의 전화번호를 알려준 분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연세대학교 법대 다녔어요." 사법고시에 두 번째로 많이 합격한다는 명문 법대로 알려진 곳.

최근 시각장애인 두 명이 사법고시에 1차 합격하기도 했다. 궁금한 점이 많아졌다.

- 법학을 전공했는데, 특별한 이유라도 있습니까?
"특별한 이유 같은 건 없어요. 원래는 경제학을 전공하고 싶었는데, 수학을 잘 못해서 법학을 선택하게 된 거지요. 경제학을 공부하려면 수학 지식이 필요하잖아요."

- 꿩 대신 닭을 선택했다는 느낌이 드는데?
"그건 아니에요. 법학도 흥미롭고 적성에 맞았으니까요. 학교 다니는 내내 딱 한 과목만 C를 받고, 나머진 A와 B였어요. 졸업 성적도 4점 만점에 3.4였으니 공부를 싫어하진 않았지요. 또 집안 형편상 장학금을 받지 못하면 더이상 대학을 다닐 수 없는 상황이어서 공부는 할 만큼 해야 했고요."

- 법대에 진학한 장애 학생의 경우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인권 변호사가 되겠다는 각오를 할 것 같은데 맞습니까?
"사람마다 다르겠지요. 나는 사법고시를 볼 마음이 처음부터 없었으니까요. 학교를 졸업하고 난 뒤에는 일반 사기업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하지만 졸업 후에도 3년 동안 실업자 신세를 면치 못했어요.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고 싶었는데…. 내가 이 사회 물정을 너무 몰랐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 물정을 몰랐다는 건 어떤 의미입니까?
"장애가 없거나, 별로 드러나지 않는 사람들은 장애를 가진 사람의 구인 활동에 대해 별로 안 좋은 시각을 갖고 있다는 거지요. 대놓고 말하는 건 아니지만, '일하려 하지 말고, 넌 좀 집에 있지'라는 식의 관점으로 봐요. 여기 취업하기 전까지 수백 통의 원서를 냈고 또 비장애인과 똑같은 조건에서 시험을 봤지만, 항상 면접에서 떨어졌어요. 곧잘 이런 농담도 하곤 하지요. '내가 원서를 냈던 회사들이 다 망한다면, 대한민국이 망할 것이다.'"

- 실업자인 상태로 집에 있으면서 따로 한 일이 있었습니까?
"마킹(시험지나 답안지 따위의 빈칸을 채우는 일) 연습을 했어요. 보다시피 손이 굽어 있고, 근육이 경직되어 있는 상태인데 시험치는 조건은 비장애인과 다를 게 없거든요. 결국 별도로 마킹 연습을 안 해두면 시험을 칠 때 더 불리해져요."

- 현재 일하는 데 문제는 없습니까?
"내게 필요한 건 포크와 목 받침이 있는 의자가 전부예요. 포크는 밥 먹을 때 사용하고, 목 받침 의자는 목 뒤의 근육을 받쳐주어 일할 때 불편함을 덜어주지요. 그리고 거의 대부분의 일을 혼자서 다 해요. 이렇게 별로 힘들지 않게 일을 하는데, 오히려 모르는 사람들이 '힘들겠다'는 시각을 갖고 있어요. 그것이 장애인 취업의 걸림돌이고요."

- 개인적으로 하는 일 중에 특별히 관심을 두고 있는 분야가 있습니까?
"주식투자요. 돈을 좀 벌고 싶어서요. 아버지가 사업을 하다 망한 이후로 집안 살림이 그다지 좋지 않았어요. 또 원래 경제에 관심이 있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식투자를 하게 되었지요. 작년 10월엔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를 운영하는 NHN에 투자를 했는데 20% 정도 주가가 오르더군요. (웃음) 속물적인 견해로 보일 수 있겠지만, 일확천금을 원하지요. 물론, 당당하게 살면서요."

- 지금 대학에 다니는 후배 장애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은 없습니까?
"95년에 입학하여 학교를 다닐 때는 편의시설이 턱없이 부족했어요. 나는 걸을 수라도 있어 그나마 다행이었는데, 신문방송학과에 다니던 박대운(지체장애 1급)씨 같은 경우엔 계단 때문에 고생이 많았지요. 사회학과에 다니던 윤두선(지체장애 1급)씨는 전동 휠체어가 뒤집혀 죽을 뻔했고요. 문과대로 이어진 길의 경사가 심했거든요. 하지만 장애가 있어 기죽거나 힘들어할 필요는 없어요. 경쟁에서 뒤지지 않기 위해서 비장애인보다 더 노력하는 상황이야 있겠지만, 할 수 있다는 생각을 갖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법대에 다니는 장애학생은 사법고시를 통해 인권변호사가 되는 걸 꿈꾼다는 대중의 시선이 편견에 불과함을 증명한 신씨. 하지만 공무원이 되기 전까지 그는 혼자만의 힘으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뚫고 나와야 했다.

공무원 사회에 신씨와 같이 장애를 가진 직원이 많으면 많아질수록 공무원 스스로 장애인 인식 개선이 이루어질 것이라 여겨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위드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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