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진해에서 시작해 화개골을 거쳐서 여의도 윤중제에 이르기까지 벚꽃은 우리의 마음을 마음껏 훑고 이 땅을 지나갔다. 벚꽃이 지면서 다른 봄꽃들도 지고 있다.
'꽃을 피운다'함은 모든 일의 가장 아름다운 성취를 말하는 것이어서 요즘 꽃이 지는 모습을 보고 누구나 허망함을 느낄 것이다. 더구나 벚꽃처럼 와르르 피었다가 소낙비처럼 져 버리는 모습은 더욱 그렇다.
그러나 실망보다는 꽃이 지는 모습에서도 위안을 찾을 수 있다. 꽃이 지는 것은 꽃보다 더 알찬 열매를 맺기 위한 기약이기 때문이다.
바로 지금, 봄의 절정에 피어나다
화개골이나 윤중제의 그 '인공(사람들이 심었다는 뜻)'의 벚꽃들이 요란을 부리고 다 떠나간 지금 세상의 먼지를 멀리하고 심심산골에 청초 우람하게 피어나는 '자연'의 벚꽃 무리가 있다.
충청남도 금산군 군북면 산안리 천태산 보곡산골 일대는 벚꽃의 원조라 할 수 있는 산벚꽃이 지금 지천에 한창 만개해 있다. 우리가 봄에 고속도로나 국도로 산허리를 달릴 때 산의 연녹색 가운데 하얀 모시옷을 입은 여인이 소담하게 앉아있는 모습처럼 보이는 그것이 산벚꽃이다.
게다가 보곡산골에는 산벚꽃 외에도 산동백꽃·진달래꽃·조팝나무꽃 등 형형색색의 봄꽃들이 만발하여 몸을 섞고 있다.
흔히 벚꽃 하면 경남 화개골 십리벚꽃길 벚꽃이 가장 운치있다고 꼽혀왔다. 시꺼먼 고목 등걸에 새하얀 벚꽃다발이 주저리주저리 피어 있는 모습이 주위의 산등성이와 잘 어울리기 때문이다.
그러나 같은 벚꽃이라도 아예 처음부터 산에서 저절로 나서 자라 맑은 공기와 청초한 연녹색 주변 색깔과 어울려 피는 산안리의 산벚꽃은 화개골의 벚꽃보다 자연성이 뛰어나다. 하물며 대도시 한가운데 인위적으로 조성돼 벚꽃 수보다 많은 인파에 허덕이는 여의도 윤중제 벚꽃은 비교할 수 없다.
보곡산골의 산벚꽃 단지는 우리나라 최대의 자생 산벚꽃 군락지이다. 벚꽃이 피어 있는 면적은 200여만평, 군북면 전체에 걸쳐 있다. 벚나무의 수는 33만3500그루, 30년 이상 된 것만도 15만8746그루다.
산안리에는 4월 중순부터 4월 말까지 보름 동안 벚꽃이 장관을 이루는데, 한창 벚꽃이 피어있을 때의 모습은 먼 데서 보면 하얀 뭉게구름 무리가 송두리째 산허리와 계곡에 내려와 머물러 있는 것 같다.
산허리에 내려앉은 하얀 뭉게구름
벚나무는 목재가치가 단연 으뜸이라고 한다. 값이 소나무 목재의 4배 이상이고, 재질이 단단하고 치밀하여 결이 고우며, 잘 썩지 않고, 특히 세포 크기가 작아 조각에 좋다.
한국 불교의 중요한 문화재인 해인사 8만 대장경도 64%가 벚나무로 만들어졌다. 또 벚나무는 국궁 재료로도 귀중한 목재다. 조선 효종 때는 서울 우이동 계곡에 벚나무 숲을 조성했는데, 북벌을 위한 활을 만드는 목재로 쓸 목적이었다고 한다.
벚나무는 세계에 200여종이 자생하는데, 한국 특산종으로는 산벚나무·울릉도 섬벚나무·한라산 탐라벚나무·관음벚나무·섬개벚나무·서울 귀룽나무·왕벚나무(아직 한국 자생종인지는 논란 중에 있다) 등 7종이다.
일본 사람들은 특히 왕벚나무를 좋아하는데, 일본강점기에 서울 창경궁에 왕벚나무를 많이 심어 조선의 권위를 누르려 했으며, 전국에서 무궁화 나무를 많이 베어내고 왕벚나무 심기를 권장했다. 태평양 진출을 위한 군국주의 야망으로 진해 군항을 왕벚나무숲으로 조성했다는 설도 있다.
덧붙이는 글 | <보곡산골 가기>
고속버스는 서울 강남터미널에서 금산나들목까지 2시간 20분 걸린다. 대전 동부터미널에서 금산터미널까지는 1시간 걸린다.
승용차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로 들어가 추부 또는 금산나들목-행사장까지 50분 걸린다. 또는 경부고속도로 옥천나들목-37번 국도-신평리-행사장까지 1시간 걸린다.
금산읍에 인삼관광호텔 등 숙식시설이 많다.
<보곡산골 산꽃축제>
금산군은 이달 4월 한 달 동안 산안리 보곡산골에서 '산꽃축제'를 연다. 이 축제는 산꽃길 명상여행, 꽃차 여행, 송계 대방놀이, 산꽃 시 백일장, 동산 화전놀이, 풍류 산방놀이, 산꽃 생태 탐구여행, 자생화 전시회 등의 행사로 꾸며진다.
보곡산골에서 산벚꽃을 주제로 10여 가지의 야생화와 더불어 열리는 '보곡산골 산꽃축제'는 한국에서 가장 긴 기간 열리는 지자체 축제로서 이 축제에 다녀가는 사람 수는 연인원 2만명 이상이다.
이 축제에서 빼놓을 수 없는 체험거리 하나는 산골민박이다. 보곡산골 마을의 전통 중부지방 민가에서 잠을 자고 그곳 산골에서 나는 산나물 반찬의 밥을 먹어보는 것으로 공해에 시달리는 도시인들과 어린이들에게는 값진 자연·민속체험이라고 할 수 있다. 민박을 원하는 사람은 '보곡산골 민속보존회장'(041-752-2814)에게 미리 예약전화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