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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은 8일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각 당이 당론으로 임기단축 등을 포함해 개헌을 `대국민 공약`한다면 개헌안 발의를 차기 정부로 넘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8일 특별기자회견을 갖고 "각 당이 당론으로 임기단축 등을 포함해 개헌을 `대국민 공약`한다면 개헌안 발의를 차기 정부로 넘기겠다"는 뜻을 밝혔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사실상 한미FTA가 개헌을 밀어내고 있다."
"무승부 나는 게 잘 된 것 아닌가."


11일 국회 5개 정당과 통합신당모임이 개헌안 유보를 요청하고, 청와대가 이에 대해 조건부 수용의사를 밝힌 것에 대해 청와대 관계자들은 이렇게 평가했다. 안타까움 속에서도 안도감이 느껴지는 분위기다.

청와대가 각 당 원내대표 6인이 개헌안 유보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이날 오전 10시쯤에 열린 한미FTA관련 회의자리에서였지만, 그 이전에 이미 이에 대한 움직임은 알고 있었다.

문재인 비서실장은 11일 오후 브리핑에서 "개헌문제에 대해 이런 방식으로 모색하면 어떻겠느냐는 말은 들은 바 있다"고 말했고, 청와대 고위관계자도 "우리도 귀가 없지 않기 때문에 사전에 감은 잡고 있었다"고 전했다.

열린우리당의 입장변화는 청와대로서는 '배신'이라고 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청와대는 사전에 감을 잡고 있었음에도 정치권에 대해 별다른 문제제기를 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청와대에겐 계륵 같은 개헌안

4년 연임 개헌안은 지금 청와대에는 계륵 같은 사안이 됐다. 노무현 대통령이 직접 대국민담화를 통해 제안했고, 그 뒤 여러 차례 방송 생중계 등을 통해 그 필요성을 강조해온 사안이었다. 그러나 '개헌안 자체는 찬성하지만 현 정권 임기 내 개헌은 반대'라는 여론은 변화가 없었고, 열린우리당도 적극적인 찬동이 아니었다. 게다가 청와대 고위관계자가 "개헌에 대해서는 기대하지 않았다"고 할 정도로 열린우리당 자체동력은 상실된 상태였다.

개헌안을 발의해도 개헌특위 조차도 만들지 못하고 폐기될 것이 뻔했지만, 청와대로서는 그냥 접을 수도 없었다. 결국 처음에 3월 초로 잡았던 개헌발의시점이 몇 차례 연기됐고, 마침내 '18일 발의' 공표는 한미FTA문제에 이어 개헌문제에 대해서도 범여권이 입장이 갈리는 것을 피해야 했던 열린우리당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지난 2일의 한미FTA타결로 결정적인 국면변화가 만들어졌다. 한미FTA에 대한 찬반논란이 뜨거워지면서 이 문제에 집중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고, 노 대통령은 집권 1년차에 이미 20%대로 떨어졌던 지지도가 실로 오랜만에 32%를 넘어섰다. 청와대로서는 자칫 한미FTA 국회비준의 동력을 잃을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청와대 한 핵심관계자는 이런 분위기에 대해 "결국 국민들은 먹고 사는 문제만 신경쓰라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장영달 원내대표가 밝힌 '발의 유보 건의'의 명분도 ""한미 FTA 비준과 대선 등 현안이 많으니 대통령이 양보해 달라"는 것이었다. 별 성과는 없지만 통합신당에 사활을 걸고 있는 열린우리당으로서도 한미FTA문제에 이어 개헌문제에 대해서도 범여권이 입장이 갈리는 것은 피해야 했다.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 한미FTA 협상 타결로 개헌안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2일 오후 서울 하얏트호텔에서 열린 한미FTA 협상 타결 발표 기자회견에 참석한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과 카란 바티아 미무역대표부 부대표. 한미FTA 협상 타결로 개헌안 문제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원내대표 수준이 아니라 당론으로… '임기단축' 전제조건 아니다"

개헌에 대한 청와대의 변화된 분위기는 문재인 실장의 브리핑에서도 여실히 나타났다. 지난 3월 8일 노 대통령은 "각 당이 개헌을 국민에게 공약한다면 발의를 철회하겠다"고 제안하면서 "임기단축이 포함돼야 한다"는 전제조건을 내세운 바 있다. 문 실장은 이에 대해 "대화를 하는 마당에 까다로운 조건을 내걸진 않겠다"면서 "협상대상"이라고 밝혔다.

'개헌안'도 아니고 '개헌문제'를 18대 국회 초반에 처리하기로 한다는 각 당 원내대표의 합의문은 지난 3월 8일 노 대통령의 제안과 비교하면 상당한 차이가 나는 것이다.

청와대 정무팀 관계자는 "미흡하지만 지난 3월 8일 제안에 대한 대답이라고 본다"면서 "18대 국회에서 할 일을 17대 국회 원내대표수준에서 합의하는 것은 신뢰의 문제가 있으므로 당론으로 정해달라"는 것으로 청와대의 요구를 정리했다. "정치적 협상이 좋은 결실을 맺을 전망이 보이지 않는다면 당초 생각대로 진행해 나가겠다"(문재인 실장)는 고리가 걸려있기는 하지만, 어느 정도 명분만 살려주면 물러날 수 있다는 말로 해석되는 대목들이다.

개헌 논의에 '무시'로 일관하던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측은 이에 대해 "각 당의 대선 후보가 정해지고 모든 정당이 개헌을 공약으로 내건 후 차기정부에서 이행하면 된다"고 '화답'했다.

"최근의 지지도 상승에 대해 한미FTA비준 등 여러 정책수행 여건이 좋아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지지율 상승을 반긴 청와대로서는 지지도를 하락시킬 주요인으로 지목되던 사안을 부드럽게 처리할 수 있게 된 상황이다.

지난 1월 9일 노무현 대통령이 열린우리당은 물론 각 당과 사전 협의없이 전격 제안했던 4년 연임 개헌 제안은 결국 정치권의 거부로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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