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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ㅏ, ㅑ, ㅓ, ㅕ, ㅗ, ㅛ, ㅜ, ㅠ, ㅡ, ㅣ’
난생 처음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의 첫 수업은 항상 시끌시끌합니다. 영어권 학생들 입장에서 보면 정말 정신 없을 것 같긴 합니다. 긴 작대기, 작은 작대기들을 왼쪽 옆에 붙이고, 오른 쪽 옆에 붙이고 하면서 다른 소리를 냅니다. 거기까지는 좀 쉬운 편이었습니다. 작은 획을 하나 더 붙이더니 다시 다른 소리라고 하고 두 개를 합쳐서 동시에 소리 내라고 합니다.
모국어 화자들이 생각할 때에는 모음이 자음보다 훨씬 쉽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외국어로서 한국어를 배우는 학생들은 오히려 모양으로 구분이 가능한 자음보다는 획의 방향에 따라서 음가가 달라지는 모음이 훨씬 어렵다고들 합니다.
그래서 사용하는 것이 '모음 체조'입니다. 모음 체조는 말 그대로 몸으로 모음을 만드는 것인데, 몸이 긴 획이 되고 두 팔이 짧은 획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ㅏ'는 오른쪽 팔을 몸 바깥 쪽으로 뻗고 'ㅑ'는 두 팔을 모두 오른쪽 방향으로 뻗는 것입니다. 'ㅗ'는 한팔만 위로 올리고, 'ㅜ'는 아래로 한팔만 내리면 됩니다. 이때 주의해야 할 점은 'ㅛ'를 한 다음에 'ㅜ'’를 할 때, 한팔은 그대로 위에 놓고 한팔만 내리면 안 됩니다.
이렇게 기본 모음을 모음 체조를 통하여 익히는데, 한 학생이 손을 듭니다. 'ㅟ'나 'ㅘ'는 어떻게 해야 하냐는 것입니다. 그때 바로 재치를 발휘합니다. 두 학생이 함께 하면 된다고 말입니다. 즉, 'ㅟ'는 한 학생이 'ㅜ'를 하고 다른 학생이 그 옆에서 'ㅣ'를 하면 되는 것입니다.
한글 모음을 외우기 위해 학생들은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합니다. 'ㅐ'는 영어알파벳의 'H'라고 하고 'ㅒ'는 '사다리'라고 합니다. 'ㅜ'는 영어알파벳의 'T', 'ㅗ'는 'T'를 거꾸로 놓은 것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그중에서도 영어에는 없어서 학생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ㅡ'는 한 학생의 재치로 그 문제를 말끔히 해결합니다. 사실 필자는 'ㅡ'를 영어 단어의 'spring'에서 'sp'에 해당하는 발음이라고 하였는데, 한 학생이 'ㅡ'는 영어에서 더러운 것이나 징그러운 것을 보았을 때 내는 '으∼'에 해당한다고 하여서 모두 폭소를 터뜨렸습니다. 'ㅡ'는 어려운 것이니 정말 그들에게는 '으∼'라고 할 만한 모음이라는 뜻에서 쉽게 기억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또 색깔별로 다르게 만든 모음 카드를 글씨의 색깔별로 책상 위에 놓고 선생님이 발음하는 모음을 찾아내는 게임을 합니다. 글씨의 색깔은 그룹별로 다르게 해서 어느 글자가 어떤 그룹에 속해 있는지 색깔만 보고도 알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때 아직 모음을 숙지하지 못 한 학생들은 흘긋흘긋 다른 학생들의 카드를 보기도 합니다. 그렇게 발음한 카드는 엎어 놓게 됩니다. 모두 한 번씩 다 발음을 한 후에는 학생들이 차례대로 한 가지씩 발음을 하고 나머지 학생들이 그 발음이 무엇인지 맞추는 게임을 합니다.
이 게임을 하는 도중에 학생들의 성격이 나타납니다. 중국어와 일본어를 잘 하고 언어에 유독 관심이 많다는 중국인 아저씨 왕중화씨는 발음하기 어려운 'ㅚ'나 'ㅞ' 등을 일부러 골라서 하지만, 아직 모음에 자신이 없어 보이는 베트남 청년 태경도씨는 가장 쉬운 'ㅏ'나 'ㅣ'를 하면서 조금 계면쩍어합니다.
이렇게 신나게 몸도 움직이고 카드놀이도 하다 보면 영어알파벳과 전혀 다르게 생겨 생소하기 이를 데 없었던 한글 자모들도 친근하게 느껴지고 하나하나의 음가는 물론 중요성도 깨닫게 됩니다. 학생들의 말이 이 '모음 체조'가 아주 도움이 많이 된다고 합니다. 어떤 것이 'ㅏ'이고 어떤 것이 'ㅓ'인지 확실히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각각의 모음을 익히고 나면 이제는 자음을 붙인 글자에서 모음을 찾아내는 연습을 합니다. 처음에는 거의 자음 음가가 없는 '우유' 같은 것으로 시작합니다. '아이', '오이', '왜', '와' 등으로 시작해서 점차 '우리', '의자', '귀' 등 받침이 없으면서 쉽게 뜻도 알 수 있는 글자로 넘어가고 나중에는 '학교'나 '책상' 등 받침이 있는 글자까지도 사용하여 이제까지 배운 모음을 확인하는 작업을 합니다.
여기까지 하고 나면 벌써 한글을 읽을 수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드나 봅니다. 교실에 붙어 있는 한글 단어들에서 모음을 찾아 읽어보려고 하는 움직임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난생처음 가져 본 자신들의 한국 이름을 자음 없이 모음만 가지고 써 보려는 시도도 해 보게 됩니다. 한국 드라마를 아주 좋아한다는 필리핀 학생 강수진씨는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드라마라고 하면서 <내 이름은 김삼순>의 주인공 이름은 '김삼순'의 모음자만 골라서 카드를 나열하기도 합니다.
한국어가 영어권 화자들에게는 가장 어려운 언어라고 했는데 오늘 수업을 받아보니 꼭 그런 것만은 아닌 것 같다는 이야기를 하는 멕시코 학생 강만석씨나 수업 시작 전에 "세 시간이나 하느냐?"고 묻던 베트남 학생 태경도씨는 수업이 끝난 후 '세 시간 중에 지루한 시간이 있었느냐'고 묻는 필자의 말에 "결코 없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일생일대 첫 한국어 수업은 재미있게 놀다 보니 '모음'을 완벽하게 암기하고 다음 시간 자음 배울 기대에 부풀어 집에 돌아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수업 마지막은 오늘 배운 '안녕하세요'의 뒷부분인 'when you say good-bye, 안녕히 계세요'를 부르면서 다음 주를 기약했습니다.
덧붙이는 글 | 구은희 기자는 미국 실리콘밸리 지역 어드로이트 칼리지 학장이자 교수, 시인입니다. 어드로이트 칼리지 한국어 교실 이야기는 산문집 <한국어 사세요!>에서 더 많이 찾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