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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A. 로젠스톤 지음/정병선 옮김
로버트 A. 로젠스톤 지음/정병선 옮김 ⓒ 아고라
레이몬드 카버 좋아해요?

작년 5월, <숏컷>의 벽돌색 표지를 만지작거리며 소개팅 상대가 말했다.

"카버는 말이죠, 문체가 건조해요. 대화를 묘사할 때 보통 작가들은 말예요 '…가 콧수염을 만지작거리며 내뱉었다', '…가 목소리를 가다듬으며 윽박질렀다', 하다못해 '날카로운 비명이 들려왔다' 이렇게 변화를 주잖아요? 카버는 그런 게 없어요. 그냥 '…가 말했다', '…가 말했다', '…가 말했다'가 끝이죠."

멋 부리지 않은 문장으로도 사람을 흥분케 하는 일이 가능하다면 그런 사람은 타고난 작가일까. 그로부터 1년 후, 나는 <존 리드 평전>을 읽으며 이렇게 혼잣말로 답하고 있었다.

"아뇨, 그런 사람은 분명히 기자일 거예요!"

"너의 기사는 문학이야!"

존 리드를 설명하는 말은 많다. <상가르>의 시인, <마음이 머무는 곳(Where the Heart Is)>의 소설가, 제1차 세계대전 애국의 광풍 속에서 "이것은 우리의 전쟁이 아니다!"라고 주장한 언론인, 뉴욕주재 소련 영사, 그리고 미국 공산주의 노동당의 창당자.

한국 사람들은 한편으로 <세계를 뒤흔든 열흘>이라는, 러시아 혁명에 대한 유명한 르포르타쥬를 기억하고, 한편으로는 워런 비티가 제작부터 주연까지 총괄한 영화 < REDS >에서 잭의 날 선 콧날을 기억할 것이다.

존 리드.
존 리드. ⓒ 아고라
존 리드는 1887년 미국 오리건 주 포틀랜드의 자수성가한 부모 밑에서 태어났다. 하버드 대학 재학 중에도 신문 편집과 정치 써클 등의 학외 활동에 더 큰 관심을 보였다. 1910년 졸업 후 <아메리칸>의 편집자로 활동하며 언론인의 길을 걸었다.

이후 <대중>의 기자로 활약하며 1913년 뉴저지 주 패터슨 섬유 노동자 파업 등을 보도했다. 스물여섯 살의 나이에 멕시코 전쟁을 보도하여 <반란의 멕시코>라는 책으로 엮어냈다. '전투가 종료되면 하늘은 자주 선홍색으로 바뀌고, 무지한 페온들은 신비한 민중의 지혜를 토해내는' <반란의 멕시코>.

친구인 월터 리프먼은 편지를 보내 이렇게 쓰고 있다.

잭, 네가 지금 하고 있는 것처럼 모든 역사가 씌어졌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잭 리드와 함께 비로소 보도가 시작되었다고 말하겠어. 덧붙여 말하자면…… 너의 기사는 문학이야.

이로 명성을 얻은 존 리드는 이후 유럽 제1차 세계대전 종군 기자, 1917년 러시아 혁명 이후 소비에트 선전국 직원, 미국에 돌아와 공산주의 노동당 창당 등의 활약을 보여준다. 코민테른의 승인을 받으러 러시아로 떠났다가 1920년 서른세 살의 나이에 모스크바에서 사망, 크렘린에 묻혔다.

다방면의 활약에도, 존 리드는 '훌륭한 사상가'나 '훌륭한 이론가'로 혁명을 살 지는 않았다. '훌륭한 정치가'로서는 더더욱 아니었다. 미국 내에서 노동당과 사회당으로 정치분열이 생길 때, '정치적 야망' 때문임을 꿰뚫어 본 존 리드는 '그런 식으로 역사책에 기록되고자 하는 태도를 비웃었다.' 그는 '조만간에 사랑하고, 시를 쓸 수 있는 시기가 오기를 바랐다.'(579쪽)

존 리드는 무엇보다 스스로 '혁명을 살았던' 기자였다. 보도의 정직성과 사실의 급박함. 꾸밈없는 증언과 이를 연결하는 극적인 통찰력. 독자를 흥분케 하는 건 문장이 아닌 현장이다.

배우자 루이즈 브라이언트. 역시 기자였다.
배우자 루이즈 브라이언트. 역시 기자였다. ⓒ 아고라
절반의 사회주의

영화에서 전면에 부각시켰던 루이스 브라이언트와의 로맨스는 책의 중반 이후에 축소된 비중으로 등장한다. 혁명 과정에 여성이 수행한 역할과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루이즈의 활약이 상세하지 않아 아쉽다. 여성 참정권자 에마 골드먼의 이름이 간간이 언급된다.

그외 혁명을 통한 진정한 '남성성'의 획득이라는 표현이나, 연애 관계의 묘사에서 여성에 대한 피상적 서술이 한계로 느껴진다.

동시대를 살아간, 사회주의 페미니스트 샬럿 퍼킨스 길먼(Charlotte Perkins Gilman)의 시를 덧붙여본다.

"향상된 세계가 여성들을 향상시킨다"라고 사회주의자는 설명했다.
"세계의 절반이 그토록 왜소한 상황에서 절대로 세계를 향상시킬 수는 없다"라고 (여성) 참정권론자는 주장했다.

- '사회주의자와 참정권론자(The Socialist and the Suffragist)' 중에서

존 리드 평전 - 사랑과 열정 그리고 혁명의 투혼

로버트 A. 로젠스톤 지음, 정병선 옮김, 아고라(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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