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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호색, 축사 위로 지천으로 피어 봄을 밝히고 있었다.
현호색, 축사 위로 지천으로 피어 봄을 밝히고 있었다. ⓒ 최성수
농사꾼이 떠나버린 축사 주변으로는 사람 키보다도 큰 잡초만 우거진 채 몇 계절이 지나갔다. 한때는 깔끔하게 정리되어 있던 축사 주변의 연못과 뜰도 흉물처럼 남아 있을 뿐이었다.

나는 그런 축사를 바라보며, 농사꾼이 제 힘으로 살 수 없게 되어버린 농촌 현실을 씁쓸하게 되새김질했다. 대출 받은 돈을 갚아야 하는 동생도 허리가 휘겠지만, 보조금도 그냥 헛되게 날려버린 꼴이 되었으니, 국가 재정은 또 얼마나 손해이겠는가.

우리나라의 농업 정책이라는 것이 어찌 보면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꼴이지 싶다. 근본적인 대책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언 발에 오줌 누듯, 당장 눈에 보이는 단물만 제공하는 식이다.

농산물 수입 개방이니, 한미FTA니 하는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그저 대출 금리를 인하하느니, 얼마를 보조하느니 하며 사탕발림으로 넘어갈 뿐, 농사꾼이 근본적으로 살 수 있는 바탕을 만들 생각은 하지 않는다.

어찌 보면 보조나 좀 해 주다가, 농민이 다 농촌을 떠나게 되면 그걸로 문제 해결이 되지 않겠느냐는 식이 아닌가 하는 극단적인 생각도 든다.

물 속의 도롱뇽에게도 봄이 왔을까?
물 속의 도롱뇽에게도 봄이 왔을까? ⓒ 최성수
축사를 지나다 웅덩이를 들여다보니 맑은 물이 고여 있다. 하긴 축사 위로 인간의 손때 탈 아무것도 없으니 맑은 물이 고인 것도 당연하리라. 물은 속이 다 들여다보일 정도로 맑다. 그런데, 솔잎이 떠 있는 사이에 무언가가 헤엄을 치고 있는 것이 아닌가. 자세히 들여다보니 도롱뇽이다.

앞뒤 발이 귀엽게 나 있는 것이 재미있고 귀엽게 생겼다. 나는 도롱뇽을 보며 문득 자기 삶의 터전인 농촌을 떠나 낯선 도회지로 옮겨간 사람들을 떠올린다. 경상도 어느 도시로 떠나 공장 노동자가 된 청년, 밤도망을 해 행방조차 묘연해진 아저씨, 도시 사는 아들을 따라 춘천인가 어디로 가 그리운 마음만 보내온다는 어느 할머니, 그런 고향 마을의 사람들 말이다.

그들은 어쩌면 계곡의 맑은 물을 떠난 도롱뇽 같은 존재들인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낯선 환경에 내던져져 조금씩 죽어가고 있는 도롱뇽 말이다. 대체 누가 그 도롱뇽들을 냇물에서 몰아낸 것일까?

제 물을 떠난 도롱뇽은 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제 물을 떠난 도롱뇽은 다 어떻게 살고 있을까? ⓒ 최성수
웅덩이 속 도롱뇽 곁에 실 같이 긴 것이 꿈틀댄다. 어릴 때 실뱀이라고 부르며 징그러워했던 놈이다. 막대기로 건져내 보니 정말 뱀처럼 몸을 뒤튼다. 정말 실뱀일까? 자료를 뒤져보니, 뱀이 아니라 '연가시'라는 놈이란다.

연가시는 유충일 때 풀에 붙어 있다가 사마귀나 메뚜기가 풀을 뜯어 먹을 때 몸 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그 뒤 그들의 몸 속에서 자라는데, 길게는 1미터가 넘는 놈도 있을 정도란다.

숙주의 몸 속에서 다 자란 연가시는 숙주의 신경을 조종하여 메뚜기나 사마귀를 물가로 유인, 물에 빠지게 한 후 숙주의 몸 밖으로 나와 물 속에서 알을 낳는단다. 연가시는 햇빛에 노출되면 금방 죽기 때문에 물 속으로 숙주를 유인하는 것이라고 한다.

연가시. 도롱뇽을 등 떠민 세상의 연가시는 무엇이었을까?
연가시. 도롱뇽을 등 떠민 세상의 연가시는 무엇이었을까? ⓒ 최성수
농민이 농촌을 떠나 살 수밖에 없도록 만든 '연가시'는 과연 무엇인가? 날마다 들려오는 수입 개방 압력에, 모든 것을 경제 논리로만 따지는 현실 속에서, 농민은 필연적으로 연가시에 조종당하는 사마귀가 될 수밖에 없을지도 모른다.

진정 전체 사회에 경제적 이득이 되는 일이라고 할지라도, 그 일 때문에 희생당해야 하는 소외된 사람들의 처지를 이해하는 따스한 마음을 기대하는 것은 정말 허망한 일일까?

한미 자유 무역 협정에 이어 EU를 비롯한 여러 나라들과 FTA 협정을 추진 중이라는 소식이 들린다. 그 일이 경제적으로 얼마나 큰 이득이 될지 나는 짐작할 수 없다. 다만, 경제만으로 판단해서는 안 될 인간의 삶의 소중한 부분이 이 세상에 있다고 나는 믿기 때문에, 일이 돌아가는 상황을 바라보는 마음이 영 개운치 않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제 살던 개울물을 떠난 도롱뇽이 되어야 이 가혹한 경제 전쟁은 막을 내릴까? 이미 고향의 개울을 떠난, 그 수많은 도롱뇽들은 이제 어떻게 살고 있을까? 봄 햇살은 저리 맑고 투명한데 말이다.

덧붙이는 글 | * 이 글을 비롯한 저의 더 많은 글과 사진은 제가 운영하는 카페 http://cafe.naver.com/borisogol.cafe 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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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 <장다리꽃같은 우리 아이들>, <작은 바람 하나로 시작된 우리 랑은>, <천년 전 같은 하루>, <꽃,꽃잎>, <물골, 그 집>, <람풍>등의 시집과 <비에 젖은 종이 비행기>, <꽃비> , <무지개 너머 1,230마일> 등의 소설, 여행기 <구름의 성, 운남>, <일생에 한 번은 몽골을 만나라> 등의 책을 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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