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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임시국회가 끝나고 본격적인 대선국면으로 돌입하는 5월을 하루 앞두고, 정치권은 그야말로 혼돈이었다.

사퇴 요구가 나오는 한나라당 지도부는 사퇴하지 않았고, 사퇴하지 않을 줄 알았던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은 돌연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4·25 재보선 참패를 계기로 한나라당 '빅2'의 싸움은 분당설까지 나올 정도로 전면전 양상을 띠었고, 한나라당 대세론에 파열음을 낼 거라는 기대 속에 성장한 범여권의 제3후보는 종적을 감췄다.

"포기 않는다"고 쓴 <조선>, '불출마'에 비중 실은 <한겨레>

▲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의 출마 가능성을 높게 거론한 <조선일보> 4월 30일자 보도.

30일 정 전 총장의 출마 포기를 예측한 언론은 없었다. 물론 지난 주 정가에는 사퇴설이 돌기는 했다. 하지만 정 전 총장이 이미 27일 기자회견장인 서울 정동의 세실레스토랑을 예약하고, 28~29일 최측근 정치인들에게 사퇴 의사를 밝혔을 거라는 예상은 아무도 하지 못했다.

이날 <조선일보> 조간에는 "나는 드롭(중도포기)하지 않는다"라는 제목의 정 전 총장의 인터뷰 내용이 실렸다. 이 신문은 29일 전화통화 내용이라며 "(불출마 선언을 한) 고건 전 총리와 같은 입장이 아니다"며 "새 나라를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 내 나름의 준비가 되어 있는지 점검하고 있다"는 정 전 총장의 말을 전했다. 그러면서 "최근 범여권 일각에서 이러다 포기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데 제동을 건 것으로 보인다"는 해설까지 덧붙였다.

석간인 <문화일보>는 이 신문의 보도를 그대로 받았다. <조선일보>의 인터뷰 내용을 인용해 정 전 총장의 결단이 임박했고 대권도전 의사를 굳힌 것이라 보도했다.

반면, 같은 날 <한겨레>는 '4·25 후폭풍 정가 10대 관전포인트'라는 기획으로 '정운찬·손학규 언제 뛰어들까?'라는 질문을 던진 뒤, 지난 24일 정 전 총장이 한림대 강연에서 "안할 가능성도 많다"는 말을 인용해 "그가 사라지면 여권은 유력주자를 또 한 사람 잃는다"고 써, 불출마쪽에 비중을 실었다.

정 전 총장은 당시 강연에서 "정치참여를 한다면 강의가 끝나는 5월말~6월초 이후에 선언하고, 안할 가능성도 많지만 그 이전에 얘기할 것 같다"고 양가적인 입장을 취했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정 전 총장의 불출마 선언은 염동연 열린우리당 의원의 말처럼 "코미디"에 가깝다. 염 의원은 "출마하겠다는 얘기도 없는 사람을 가지고 언론이 호들갑을 떨었다"며 "코미디지, 코미디"라고 힐난했다.

정운찬 출마 여부 놓고 춤 춘 언론보도

▲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30일 오후 2시 세실 레스토랑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대선 출마 포기를 선언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그도 그럴 것이 정 전 총장의 지지도는 제로에 가까웠다. 이날 <동아일보>가 보도한 대선주자 선호도 여론조사에 따르면, '이명박 전 시장 41.7%-박근혜 전 대표 19.3%'의 양강 구도 속에 정 전 총장의 선호도는 2.2%에 불과했다.

범여권 후보 중에서도 손학규(17.5%) 한명숙(10.2%) 강금실(7.6%) 정동영(7.1%) 다음으로 5.6%를 기록했다. 또한 지지도 조사에선 이 보다 더 적은 1~2% 수준이라 수치상으로 의미가 없는 후보였다.

작년 하반기부터 정치권의 주목을 받아온 정운찬 전 총장은 올초 고건 전 총리의 불출마 선언 이후 언론의 집중 조명을 받아왔다. 열린우리당 일각에서는 '정운찬을 돕자'는 공감대도 형성됐었다. '고건 낙마'를 지켜본 일종의 학습효과였다.

지지율 5%가 넘는 후보가 전무한 가운데 '인물난'을 겪고 있는 상황에서 '제3후보'의 성장이 필요했다. 정 전 총장이 "내가 불쏘시개냐"라고 불쾌감을 털어놓은 것도 그런 맥락에서 나온 말이었다.

여러 가지 상징성도 갖추고 있었다. 경제와 교육의 전문가로서, 또 서울대학교 총장이라는 엘리트 이미지, 여의도 정치에 물들지 않은 참신성, 충청도 출신이라는 점 등이 고려된 정치권의 '호출'이었다.

물론 정 전 총장의 조응도 있었다. 하지만 적극적인 권력의지를 보이진 않았다. "대선 정국을 면밀히 지켜보고 있다. 어떤 식으로 기여해야 할지 마음을 정하지 못했다"며 '경계선'에서 오락가락하는 말들을 해왔다.

이날 <서울신문>에는 흥미로운 인터뷰가 실렸다. 강금실 전 법무부 장관이었다. 그 역시 제3후보로 정치권과 언론의 '호출'을 받았지만 고건·정운찬과 달리 몸을 던졌다. 불출마 선언이 아닌 '아름다운 패배'를 각오하고 실전(서울시장 선거)에 뛰어든 사례였다. 패배였다. 그보다 더 늦게 '호출'을 받은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했다. 지금도 열린우리당 의원들 사이에선 "강금실이 출마선언을 일주일만 늦췄어도 승리할 수 있었다"는 웃지 못할 얘기가 나온다.

'준비된 대통령'은 먼 얘기?

이번엔 대선 후보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마한 뒤 정치활동을 일체하지 않고 있는 강 전 장관의 지지도는 정동영 전 의장에 비해 높을 때가 많다. 하지만 "서울시장 출마 때처럼 준비없이 뛰어들진 않겠다"고 말한다.

이날 <서울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그는 "범여권의 판을 키우거나 재미있게 하는 역할로 나설 생각은 추호도 없다"며 "본인의 결단도 중요하지만 정책과 리더십 등 결단을 뒷받침해줄 정당 준비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국정지도자"를 뽑는 대통령 선거의 위상을 강조한 것이다. 맞는 얘기다.

정운찬 전 총장을 곁에서 지켜봐온 박영선 열린우리당 의원은 제3후보의 생멸에 대해 "정상적인 상황이 아니다"며 "국가적인 에너지 낭비"라고 우려했다. 박 의원은 "정치인에 대한 실망과 환멸이 있는 가운데 국민은 새로운 인물을 원한다"며 "그것이 정치의 불확실성으로 나타나고 있다"고 말했다. 여기에 언론도 같이 춤을 췄다.

김헌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소장은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는 대세론 보다 '기적 만들기'에 의해 좌우되었다"고 말한다.

"분단과 같은 독특한 역사적 현실, 국민여론의 역동성 그리고 대통령제의 특성 등이 결합해 이뤄지는 한국 대선에 있어 결과는 항상 예측불허였으며, 이같은 맥락에서 결국 2007년 대선 결과를 가늠할 최대 관전포인트는 바로 정치를 바꾸려는 주체들의 '의지'와 '행위'가 될 수밖에 없다."

'준비된' 대통령이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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