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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몇 년 전 '태안군보건의료원'에서 실시한 '당뇨교실'에 한동안 참석한 적이 있다. 꽤 오랫동안 매월 한 차례씩 실시된 당뇨환자들을 위한 그 교육에 나는 1년 정도 참석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원장이나 진료부장, 또는 내과 의사들이 당뇨에 대한 포괄적인 이야기를 들려주고, 관련 부서 직원들이 식이요법과 운동요법 등을 체계적으로 주입시켜 주는 교육이었다.

나는 개별 연락을 받고 매월 하루 오전 의료원에 가서 2시간씩 교육을 받으면서 태안군과 의료원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졌다. 지역의 만성 성인병 환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관리와 교육에 최선을 다하는 의료원 직원들의 모습은 내게 감동을 주었다.

그런데 하루는 처음 대하는 의사로부터 '특강'이라는 것을 듣게 되었다. 태안의료원의 새 진료부장이었는지 외부에서 출장을 오신 분이었는지는 확실히 기억나진 않는다. 키가 크고 40세 전후로 보이는 얼굴이었는데, 구수한 달변으로 당뇨와 관련하여 이런저런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강의를 마친 후에는 질문들을 받아 답변도 해주었다.

환자 한 분의 질문에 답변을 하던 중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당뇨 환자들은 누구나 결국에는 합병증으로 죽게 되어 있어요. 다만 그 합병증을 지연시킬 수 있을 뿐이죠. 합병증을 최대한 지연시키기 위해서 지속적인 당뇨 관리가 필요한 것이죠."

나는 은근히 화가 나서 앉은 채로 한마디 했다.

"아무리 그렇더라도 의사 선생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면 됩니까? 환자들에게 일단은 희망을 주어야지요. 지속적으로 열심히 당뇨 관리를 하고 살면 끝까지 합병증을 피하고 장수를 할 수 있다는 말을 해야지요. 바로 그것을 위해서 당뇨 관리가 필요한 것이고, 우리가 여기에 앉아 교육도 받는 거 아닙니까?"

이런 내 말에 그는 대답을 하지 못하고 다소 붉어진 얼굴로 멋쩍은 웃음을 지어서, 나는 여전히 언짢은 가운데서도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기도 했다.

나는 지금도 종종 그때의 그 의사 선생님 말을 떠올리곤 한다. 그 말을 떠올릴 때마다 불쾌한 기분이 된다. 그의 그런 말에 도전을 하는 기분으로 더욱 열심히 하루 2시간씩 걷기 운동을 하고 당뇨 관리를 하며 살지만, 그의 말을 기억하면 괜히 맥이 풀리는 것도 같다.

열심히 당뇨 관리를 하며 사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격려를 하기보다는 그런 식으로 지레 절망을 주는 것은 매우 온당치가 않다. 그건 의사로서 바른 태도가 아니다. 의사는 말 한마디 한마디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말을 잘해야 한다.

나는 그때부터 어느 분야 어떤 직종보다도 특히 의사들이 말을 잘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의사는 말에 신중을 기해야 하지만, 그렇다고 말을 절제해서도 안 된다. 의사는 진료 실력 못지않게 말솜씨도 지녀야 하고, 환자들에게 희망과 친근감을 주는 말을 할 줄 알아야 한다. 의술을 배우면서 말도 배우고 친절도 배우는 공부를 별도로 해야 한다. 그런 공부를 하긴 하는데 의사가 된 후 의료 현장에서 제대로 활용을 못하는 건지도 모르지만….

만성 중이염을 앓고 계시는 내 노친께서는 가끔 서산의 이비인후과의원을 다니신다. 일년에 한 차례 꼴로 귀에 이상이 올 때마다 노인네가 굳이 서산까지 가시는 이유는 단 하나, 그곳 원장의 자상한 말과 친절 때문이다. 그곳 원장은 세상 물정을 잘 아는 나이 드신 분이라서 그런지 진료를 하는 짧은 시간에도 환자에게 뭔가를 묻기도 하고, 이런저런 말을 구수하게 잘한다고 한다. 우리 동네 이비인후과의원를 겪어보지도 않고 무조건 서산으로만 가실 필요가 있느냐는 말씀을 드려도, 한참만에 가는 노인 환자를 잘 기억해주고 반갑게 맞아주는 그곳 원장이 고마워서도 그곳으로 가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신다.

올해 84세이신 노친은 한 달에 한 번씩 태안군보건의료원을 다니신다. 혈압 관리를 받기 위해서다. 혈압을 측정하고 처방을 받아 약을 지어오는 간단한 일인데, 의료원을 갖다 오실 때마다 기분이 좋다고 하신다. 내과의 젊은 의사가 어찌나 자상하고 친절한지 진료를 받는 시간이 즐겁다고 하시며, 의사가 한 말을 그대로 전하면서 소리 내어 웃으시기도 한다.

어머니의 그런 말을 들을 때는 태안군보건의료원이 그런 의사들을 오래 붙잡고 있어주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한다. 주로 병역의무를 대신하기 위해 임시로 와서 일하는 초년 의사들이라 자주 바뀌곤 하는 것은 적이 아쉬운 일이다.

요즘 한쪽 무릎 관절을 앓는 아내는 고장의 관련 병원을 바꾸어서 진료를 받고 있다. 처음 다니던 병원 원장의 태도가 너무 투박하고 거칠다는 이유로 병원을 바꾸었는데, 지금 다니는 병원은 원장이 자상하고 친절하며 유머도 있다고 좋아한다.

원장의 태도가 투박하거나 딱딱하지 않고 자상하고 친절하면 간호사와 직원들도 닮게 되는 것 같다는 말도 하며 아내는 웃었다. 무슨 병이나 환자에게는 진료 자체가 고통스러운 것이지만, 시간 쓰고 돈 쓰고 고생하며 병원을 다니는 환자가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진료를 받을 수 있다면 그것은 환자와 가족뿐만 아니라 의사에게도 축복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충남 태안의 <태안신문> 5월 3일치 '태안칼럼' 난에 게재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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