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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북경의 왕징에서 머물렀던 후배의 집은 20층 건물의 19층이다. 북경여행 마지막 날인 4월 2일 오전. 한 트럭 분량의 햇볕이 창문으로 와르르 쏟아져 들어온다. 지난 이틀 동안 걸어 다닌 게 꽤 운동량이 많았던 듯 다리가 뻣뻣하다.

▲ 치엔먼(前门) 남쪽에 있는 북경의 대표적 쇼핑 거리인 따자란지에(大栅栏街=다자란거리) 입구. 거리 양쪽의 건물들은 지금 한창 철거 중이다.
ⓒ 김동욱
오늘은 내가 짜 놓은 여행 스케줄에 따라 치엔먼(前门) 남쪽에 있는 북경의 대표적 쇼핑 거리인 따자란지에(大栅栏街=다자란거리)와 리우리창(琉理厂=류리창)의 후통(胡同=골목길)을 보기 위해 숙소를 나선다.

치엔먼(前门)은 천안문의 남쪽에 있는 문이다. 옛날 중국 황제들이 이 문으로 나가서 백성들의 생활을 살폈다고 한다. 이 치엔먼을 좌우로 끼고 Y자 모양의 길이 나 있다. 이 길이 바로 치엔먼따지에(前门大街)이다. 체인먼에서 남쪽으로 똑바로 뻗어있는 이 길은, 지금 한창 재개발 중이다.

중국은 2008년 북경올림픽을 준비하면서 도시 전체를 바꾸고 있는데, 여기 치엔먼(前门) 남쪽의 쇼핑거리가 가장 대표적인 재개발 구역이다. 20여 년 전 우리나라가 88올림픽 준비를 하면서 서울을 뜯어고치듯 성형한 걸 생각하면 이곳 치엔먼(前门) 일대의 상황이 이해가 될 것이다.

치엔먼(前门)에서 남쪽으로 뻗어 있는 치엔먼따지에(前门大街) 양쪽에 늘어서 있는 상점건물들은 철거되고 있는 중이다. 길 가에는 높은 나무판으로 건물의 철거 모습이 보이지 않게 가려 놨다. 그래서 이 길을 걷는 사람들에게는 기존 건물이 헐리고 있는 게 보이지 않는다.

이렇게 치엔먼따지에(前门大街)의 양쪽에 있는 대부분의 건물이 헐리고 있었으나 단 한 곳, 아직 건재한 건물도 있었다. 아니 몇몇 건물이 아직 옛 모습 그대로 남아 있는 것 같았으나, 내 눈에 들어온 건물은 여기서 이 집 하나였다. 바로 베이징카오야(北京烤鸭)로 유명한 취엔쥐더(全聚德) 본점이었다.

▲ 베이징카오야(北京烤鸭)로 유명한 취엔쥐더(全聚德)의 본점. 건물 외쪽에 줄을 서서 있는 사람들은 베이징카오야를 사려는 사람들이다.
ⓒ 김동욱
들리는 얘기로는 이 일대의 건물이 다 헐리고 새로 지어지는 판국에도 이 취엔쥐더(全聚德) 본점이 어떻게 될 지에 대한 계획은 아직 서 있지 않다고 한다. 내가 이 앞을 지날 때는 오전 10시 반쯤의 애매한 시각이었는데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베이징카오야(北京烤鸭)를 사기 위해 줄을 서 있는 걸 봤다.

나는 이 앞을 지나 치엔먼따지에(前门大街)의 본격 쇼핑거리라 할 수 있는 따자란(大栅栏)에 들어갔다. 치엔먼따지에(前门大街)의 중간쯤에서 서쪽으로 나 있는 골목길 격인 따자란(大栅栏)에는 우리에게도 잘 알려진 통런탕(同仁堂=동인당) 약국이 있다.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지만 한때 우리나라에서도 '북경 동인당 청심환'이 청심환의 대명사라고 여겼던 때가 있었다.

▲ 따자란 입구. 이 안으로 들어가면 청심환으로 유명한 북경 동인당 약국과 치파오 가게 등이 있다.
ⓒ 김동욱
통런탕(同仁堂=동인당)의 맞은편에는 비단과 전통 옷 가게로 잘 알려진 루이푸샹(瑞蚨祥)이 있다. 2층 집 구조로 돼 있는 루이푸샹(瑞蚨祥)에서는 중국 전통 의상 중 하나인 치파오(旗袍)도 볼 수 있다.

치파오는 매장 2층에 있는데, 다양한 색상이 관광객들을 유혹한다. 나도 선물용으로 한 벌 사볼까 해서 둘러봤는데,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히 비싸서 그냥 구경하는 데에 만족해야 했다.

300~400위안에서 수천 위안 대까지 그 가격이 다양한데, 우리 돈으로 환산하면 싼 게 3만6000원이고 비싼 건 수 십 만원을 호가하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서 파는 치파오는 중국에서 가장 확실한 제품이라고 한다. 따라서 진짜 제대로 만든 치파오를 사고자 한다면 여기 루이푸샹(瑞蚨祥)에서 사는 게 좋다고 한다.

▲ 인력거로 유리창의 후통을 관광하는 외국 관광객들. 인력거를 타고 유리창 동쪽 길로 가면서 찍었다.
ⓒ 김동욱
상점 몇 군데를 둘러 본 나는 이곳 따자란(大栅栏) 거리를 빠른 걸음으로 빠져나갔다. 그리고 따자란 거리 서쪽 끝 메이스지에(煤市街)에서 호객하고 있는 많은 자전거 인력거 중 하나에 올랐다.

"워 야오 취 류리창 똥지에(我要去琉璃厂东街=류리창 동쪽 길에 가 주세요)."

류리창은 붓이나 벼루, 골동품 등을 주로 파는 상점 골목이다. 그리고 류리창똥지에(琉璃厂东街)는 류리창 골목으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나에게 10위안을 받아든 인력거꾼이 힘차게 자전거 패달을 밟는다. 처음에는 천안문 방향으로 난 넓은 길을 따라 가다가 이내 왼쪽 좁은 길로 접어든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꼬불꼬불 달리더니 보도블록이 잘 깔려있는 어느 골목에 나를 내려준다.

이 류리창의 후통(胡同=골목길)은 북경의 여러 후통 중에서도 꽤 알려진 곳이다. 그래서 그런지 여기는 북경 서민들의 생활터전이 아니라 마치 잘 정돈된 관광골목 같은 인상을 받았다.

먹과 인주로 유명한 이더거(一锝阁)가 있고, 종이와 벼루 상점인 보구자이(博古斋)와 바오진자이(宝晋斋)가 여기에 있다. 그리고 붓만 팔고 있는 상점이 있는가 하면, 도자기 가게도 있다.

▲ 류리창의 붓 전문점인 다이웨이쉬안. 건물 안에는 아주 가느다란 붓부터 어린아이 만한 붓까지 진열이 돼 있다.
ⓒ 김동욱
이곳저곳을 기웃거리며 걷고 있는데, 40대 초반 쯤 보이는 중국 남자 한 사람이 빠른 걸음으로 다가오는 느낌이 든다. 살짝 겁이 난다.

'뭐야? 소매치기……?'

별 이상한 생각이 들 때쯤, 이 남자가 내게 말을 걸어온다. 처음에는 못 알아들었다. 나는 이 남자가 뭔 소리를 하나 궁금하기도 했지만 이상한 봉변을 당할까봐 겁이 나기도 해서 계속 무시하며 걸었다. 그런데 이 남자도 끈질기게 따라붙는다. 그러면서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한다.

"엔띠끄! 엔띠끄!"
'이게 도대체 뭐라는 소리야?'

나는 멈춰 서서 이 남자를 슬쩍 한 번 쳐다봤다. 그랬더니 남자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고 바지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보인다. 남자의 손 안에 있는 건 도자기 사진이었다. 고려청자처럼 생긴 도자기였다.

나는 그제야 이 남자가 무슨 소리를 하는지 알았다. 이 남자가 줄곧 나를 따라오면서 작은 목소리로 외친 '엔띠끄, 엔디끄!'는 바로 골동품을 뜻하는 영어 '앤티크(antique)'였던 거다. 그러니까 이 남자는 한국, 혹은 일본 관광객처럼 보이는 나에게 접근해서는 '내게 좋은 골동품이 있으니 사라'는 말을 하고 있었던 거였다.

그런데 이 류리창 골목에는 이런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이 꽤 있는 듯 했다. 이날 류리창 입구에서 골목을 다 빠져 나갈 때까지 내게 접근해온 호객꾼만 세 명이나 됐으니……. 그 때마다 나는 할 말이 없었다. 애초부터 그런 것에는 관심도 없었으므로 '뿌용(不用=필요 없다)'만 되풀이 했다.

이 사람들이 이처럼 관광객들에게 접근해서 팔려고 하는 골동품이 진품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이 때문인지 외국관광객들에게 류리창은 '중국전통 문물을 엿볼 수 있는 고풍스런 거리'라는 이미지가 점점 지워지고 있다는 말도 들린다.

어쨌거나 이 류리창 골목 안의 건물들도 곧 철거되고 이 자리에는 초현대식의 마천루가 들어설 것이다. 물론 관광지 조성 차원에서 몇몇 상징적인 후통(胡同)은 살아남을 게다. 그러나 이 또한 옛날 중국 서민들의 생활모습을 볼 수 있는 '살아있는' 후통(胡同)이 아니라 '박제된' 후통(胡同)이 될 게 뻔하다.

▲ 북경의 인사동 거리라 할 수 있는 류리창 거리. 이 류리창 거리도 베이징 올림픽을 위한 거리 리모델링 공사로 인해 많은 부분이 없어질 것 같다.
ⓒ 김동욱
북경은 지금, 이처럼 자본에 의해 고유의 문화가 사라지고 있는, '문화 리모델링' 중이다. 이후 나의 북경여행은 티엔탄꽁위엔(天坛公园)을 들러보고, 저녁에는 외국인 전용 술집에서 후배와 가볍게 한 잔 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긴 일정이 아니어서 좀 더 깊이 느껴보지 못한 아쉬움이 있지만 다음을 기약한 나는 이튿날 아침 일찍 인천 행 비행기에 올랐다.

짜이찌엔 베이징(再见北京=안녕 북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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