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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첨밀밀> 한 장면
영화 <첨밀밀> 한 장면
아내도 자전거를 탔으면 좋겠다. 자전거 타는 장면은 언제나 평화로운 모습이다. <첨밀밀>이라는 영화를 보신 적 있으신가. 장만옥을 태우고 노래를 부르는 여명의 모습이 아름답지 않은가?

내가 여명이 아니고 아내가 장만옥은 아니지만 한번쯤 흉내 내보고 싶은 장면이다. 뒤에 태워주겠다는 내 말에 아내는 별로 신통치 않다는 반응이다. 나를 못 믿는 걸까? 자전거를 못 믿는 걸까?

얼마 전 이제 네 살 난 우리 아들을 뒤에 싣고 조심조심 자전거를 타 본 적이 있다. 아들 녀석은 내 허리를 꼭 잡고 약간은 무서워했다. 아직 자전거를 태우기엔 어린 나이인가 보다. 어릴 적 아버지께서 아주 커다란 짐 자전거에 나를 태워주시던 때가 그리워진다.

이반 일리히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이반 일리히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 미토
책을 하나 소개한다. 이반 일리히의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이 책은 너무 빠른 속도가 파괴하는 우리들의 삶을 남다른 시각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이미 속도에 사로잡혀버린 이들은 억지에 가까운 말들로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보기엔 뛰어난 통찰을 보여주는 말들로 느껴진다. 나도 이미 빠른 속도에 길든 사람이긴 하지만 말이다.

도시에서 시골로 들어가는 길을 넓히고 포장하는 것은 발전이라 부른다. 잠시 동안 그것은 시골사람들을 위해 커다란 발전을 가져오는 것처럼 보인다. 시간이 흐를수록 도시로 난 그 멋진 길은 시골의 평화로운 삶을 파괴한다.

마을에 있었던 작은 초등학교들은 문을 닫고 통학을 위한 버스가 준비된다. 보건지소들은 통합되고 멀어진 마을 사람들을 위한 아주 빠른 구급차가 준비된다. 학교와 병원이 더 멀어진 그곳은 또다시 불편한 곳이 되어버리고 사람들은 도시로 향해 짐을 싼다.

도시로 나가버린 자식들이 집으로 돌아오는 명절 때는 고마운 길이 되어주지만 여전히 시골에 남아있는 이들에게 길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빼앗아가는 길이 될 뿐이다. 마을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그 길을 건너는 일조차도 노인이나 아이들에게는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도시의 삶 또한 바꾸어 놓고 있다. 자동차 없이는 가기 힘든 곳에 있는 대형 할인점에는 사람들이 넘쳐나지만 걸어서 갈 수 있는 곳에 있는 작은 시장에는 사람들이 사라지고 있다. 단지 몇 백 원 할인받기 위해 시동을 걸고 달려가 복잡한 주차장에서 짜증을 내는 번잡함을 마다지 않는다. 퇴근길에 들러 책을 골라 읽어보고 사곤 하던 서점들보다는 주문한 지 하루 만에 집까지 배달해 주는 온라인 서점이 경쟁에서 이기고 있는 모습이다.

자동차를 타고 달리며 내려다보는 세상과 두 발로 페달을 밟으며 바라보는 세상은 정말 많은 차이가 있다. 어떤 세상이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정리해보아야 할 때가 된듯하다. 자동차를 사고 유지하기 위해 감수해야만 하는 노동시간을 고려한다면 자전거가 자동차보다 더 빠른 교통수단이라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점점 더 빠른 교통수단의 등장으로 생겨나는 시간의 불평등한 분배가 우리 삶에 어떤 방식으로 해로움을 만드는지 생각해 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읽어볼 것을 권한다.

행복은 자전거를 타고 온다 - 에너지와 공정성에 대하여

이반 일리히 지음, 신수열 옮김, 사월의책(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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