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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와대
청와대 ⓒ 오마이뉴스 남소연
아주 역설적인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청와대는 통합론자들의 분열주의를 비판하는데 이게 오히려 분열을 촉진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당을 이 지경으로 만들어 놓고도 여전히 통합노래를 부르며 떠날 명분만 만들어 놓고 당을 나갈지 말지 저울질하는 사람들"을 맹비난했고, 이강철 대통령 정무특보는 "당을 포기했다면 조용히 혼자서 떠나는 게 맞다"고 했다. 나갈 거면 빨리 나가라는 얘기다.

그러겠다고 한다. "통합노래"를 불러온 김근태·정동영 두 사람은 대통령의 정치개입을 강도 높게 비판하면서 탈당을 준비하고 있다. 정동영 전 의장의 경우 오는 22일경 탈당할 계획이라는 보도(한국일보)까지 나오고 있다.

김근태·정동영 때리기 나선 청와대

흐름이 확연하다. 울고 싶은 사람에게 뺨을 때린다. 갈등하고 대립하면서도 아귀가 맞는다. 기묘한 흐름이다.

관심대상은 청와대다. 청와대는 왜 그들의 뺨을 때린 걸까? 왜 등을 떠민 걸까?

노 대통령의 표현 그대로 "원칙과 대의"의 천명일 수 있다. 100년 정당을 만들겠다고 해놓고선 당이 조금 어렵다고 책임정치를 회피하려는 행태에 대한 원칙적인 비판일 수 있다.

이렇게 해석하면 만사가 단순해지고 평가가 명쾌해진다. 하지만 걸리는 게 있다. 두 가지다.

"원칙과 대의"를 천명하더라도 차원이란 게 있다. 등 떠미는 게 아니라 손을 잡아끌 수도 있다. 하지만 청와대는 등을 떠밀고 있다.

때라는 것도 있다. 청와대는 며칠 새 "원칙과 대의"를 집중적으로 표명하고 있다. 노 대통령과 이강철 정무특보, 정무팀이 사인을 주고받기나 한 것처럼 일시에 연타를 날리고 있다.

정동영 전 의장이 평했다. 노 대통령을 일컬어 "대단한 전략가"라고 했다. 지근거리에서 수없이 교류를 나눈 사람이 이렇게 평하니 따라가 보자. 청와대의 집중포화에 담긴 전략은 뭔가?

정동영과 김근태의 딜레마, '지역'과 '개혁'

정동영·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자료사진)
정동영·김근태 전 열린우리당 의장(자료사진) ⓒ 오마이뉴스 이종호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오는 건 진공상태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이 대선 불출마를 선언함으로써 범여권은 통합의 축을 잃어버렸다. 대선주자나 평의원 모두 시련이 아닐 수 없다.

대선주자들의 경우 탈당을 한다 하더라도 당장 거처를 정하기가 쉽지 않다. 정 전 의장이 그런 경우다. 이미 탈당한 통합신당모임과 합쳐 덩치를 키우고 이를 기반으로 통합의 주도권을 쥐면 좋겠지만 명분이 달린다.

통합신당모임은 지역연대만이 살 길임을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하지만 정 전 의장은 지역정당을 깨고 전국정당을 만들겠다면서 열린우리당 창당을 주도한 인물이다. 그런 그가 통합신당모임과 한 살림을 차리는 건 면이 서지 않는 일이다.

그렇다고 따로 갈 수도 없다. 그러면 기반을 잃는다. 지역연대의 주도권을 통합신당모임과 민주당에 내주게 되고 자신은 소수파로 남아 곁불이나 쬐는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김근태 전 의장의 경우는 그나마 낫다. 개혁 깃발을 들기로 작정했으니까 민생정치모임과 힘을 합쳐 개혁연대를 꾸리면 된다.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다. 김 전 의장이 주도하는 개혁연대가 자리를 잡으려면 대선 참여를 선언한 시민사회세력을 자기 품으로 끌어들여야 하는데 여의치가 않다.

시민사회세력은 비한나라당 단일전선, 즉 통합을 추진한다. 그래서 원탁회의를 운위한다. 이런 시민사회세력이 즉각 김근태 전 의장이 내미는 손을 잡을 가능성은 그리 높지 않다. 지금은 조정하고 중재할 때다.

이렇게 되면 김 전 의장은 당분간 치열하게 전개될 각개약진 과정에서 세 불리, 영향력 축소의 비애를 맛봐야 한다.

줄서기 난감한 평의원들

대선주자들의 이런 곤혹스런 처지는 평의원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 이들에게 최대 관심사는 총선이다. 대선도 대선이지만 총선에서 금배지를 유지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줄을 잘 잡아야 한다.

가장 튼튼할 것이라고 믿었던 동아줄이 끊어졌으니 다른 줄을 찾아야 하는데 선뜻 내키지가 않는다. 불확실설이 증가한 만큼 썩은 동아줄인지 쇠심줄인지를 가려내는 게 어려워졌다. 대선주자가 이끄는 분파 가운데 하나를 택해야 하는데 이 분파의 앞날이 불투명하다.

가장 확실한 게 '지역' 그늘에 앉아 땀을 식히는 것이지만 '지역'이 하나로 합칠지, 합친다고 해서 '구태''퇴행'의 여론 공세를 이겨낼 수 있을지 현재로선 장담할 수 없다.

공공연히 탈당을 예고하는 일부 평의원들은 그렇다 치고 계속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상황을 예의주시하는 다수의 평의원들에겐 번민을 거듭해야 하는 상황이다.

틈은 벌어져 있다. 대선주자야 어차피 탈당을 한다 하더라도 평의원의 집단 합류를 최소화할 여지는 남아있다. 탈당을 감행하는 대선주자를 코너로 몰 "원칙과 대의"도 있다. 청와대로선 별로 손해 볼 게 없다.

행보 바빠진 '친노' 주자들

전직 청와대 수석들과 노무현 지지자들의 모임인 참여정부평가포럼 창립식이 지난 달 27일 저녁 서울 국민일보 빌딩 1층에서 열렸다. 참여정부평가포럼 창립식에서 안희정(가운데)씨가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오른쪽)과 김두관 정행자부장관 사이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전직 청와대 수석들과 노무현 지지자들의 모임인 참여정부평가포럼 창립식이 지난 달 27일 저녁 서울 국민일보 빌딩 1층에서 열렸다. 참여정부평가포럼 창립식에서 안희정(가운데)씨가 김혁규 열린우리당 의원(오른쪽)과 김두관 정행자부장관 사이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 오마이뉴스 이종호
청와대의 공세에 즈음해 바쁘게 움직이는 사람들이 있다. 이른바 친노그룹의 잠재적 대선주자들이다. 이해찬 전 총리는 북한을 방문한 데 이어 미국와 일본을 잇따라 방문할 계획이다. 그가 남-북-미-중을 묶는 4자 정상회담을 추진하고 있다는 얘기도 함께 나온다.

김혁규 의원은 방북길에 올랐고, 한명숙 전 총리는 이달 중에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할 예정이다. 유시민 보건복지부 장관은 자신의 가장 큰 과업인 국민연금법 개정의 9부 능선을 넘고 국회 처리만 기다리고 있다. 그래서 열린우리당 복귀가 임박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뚜렷하게 대비된다. 청와대가 앞장서서 반노 대선주자들을 코너로 몰고, 그만큼 넓어진 공간을 친노 대선주자들이 치고 들어오는 형국이다. '참여정부 평가포럼'을 띄워 당 외곽세력 정비도 얼추 마친 상태다. 반노 대선주자들이 떠나고 남은 열린우리당이 오픈 프라이머리를 통해 친노 대선주자를 세울 것이라는 전망도 더불어 설득력을 키워간다.

이쯤 되면 범여권의 미래는 대략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크게 보면 '지역'과 '개혁'과 '친노'가 각개약진하는 양상이 나타날 것이고, 더 크게 보면 범여권이 '반노'와 '친노'로 양분되는 상황이 나타날 것이다.

남은 문제는 딱 하나, 극적 반전이다. 따로 가는 이들이 대선 막판에 대타협을 이룰 것인가 하는 점이다. 물론 그 결과는 후보 단일화다. 지금의 기세로 봐선 '기대난망'이지만 한나라당 집권에 '절대난감'해 하는 목소리가 압박을 가할 수도 있다.

미지수다. 반년 뒤의 일을 지금 엿보는 건 애당초 불가능하다. 이 기간 동안 수없이 많은 작용과 반작용이 이뤄질 것이고 그에 따라 지형이 새로 짜일 것이다.

지금은 범여권 분파들이 출발선에 옹기종기 모여드는 때이다. 경주는 아직 시작도 되지 않았다.
#청와대#친노#반노#김근태#정동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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