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아무 것이나 잘 먹고, 몸에 좋은 게 있다면 동네방네 무슨 음식이든 찾아다니는 한 동료가 의외로 자기는 보신탕은 먹지 않는다고 했다. 그 이유인즉슨 자기가 어릴 때 옆집 아저씨가 자기 집에 키우는 개를 잡아먹는 광경이 너무나 끔찍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 '개'의 책 표지
ⓒ 출판사 푸른숲
개를 잡아 올가미에 묶고 다리 난간에 매달아서 몽둥이로 때렸는데 놀라 몸부림치는 바람에 줄이 풀어져 개가 도망을 가버렸다. 도망간 개는 한참 후에 어슬렁어슬렁 집으로 되돌아 왔는데 주인이 손짓을 하며 부르자 꼬리를 흔들며 다가왔고 그는 얼른 붙들어 다시 잡아먹었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듣고 인간만큼 잔인한 동물이 있을까? 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누구나 느낌은 비슷하나 보다. <칼의 노래>를 쓴 작가 김훈은 장편 소설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 개>에서 이 느낌을 개의 처지에서 세세히 기록했다.

그의 책 <개>는 '보리'라는 이름의 수컷 진돗개가 들려주는 출생에서 죽음 직전까지의 3년간의 자신의 이야기다. 어쩌면 '보리'라는 개의 눈을 통해 바라 본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물론 조금의 가정이 필요하다. 이 세상의 산골짜기와 들판, 강물과 바다, 비 오는 날과 눈 오는 날, 안개 낀 새벽과 노을 진 저녁들은 모두 쉴 새 없어 무어라 지껄이면서 말을 걸어온다. 말은 온 세상에 넘친다. 여기에서 개는 그 말을 알아듣지만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는 가정이다.

사람들은 오직 제 말만을 해대고, 그나마도 못 알아들어서 지지고 볶으며 싸움판을 벌이고 있다. 이러한 싸움을 그치고자 대학 시험에도 남의 말 잘 알아듣고 설득하기 연습으로 논술도 도입됐지만 시작도 하기 전에 쌈박질만 한다. 그런 사람 곁에서 더불어 사는 개의 고통과 슬픔이 크다는 가정이다.

"흰순이는 보리가 사랑한 개다. 흰순이의 옆집 큰아들이 군대에 가는 날이었다. 옆집 주인은 흰순이를 주인한테 사갔다. 흰순이를 군대 가는 아들에게 먹일 작정이었다. 사람들은 흰순이를 목에 새끼줄로 묶어서 우물가 모과나무 가지에 매달았다."

마을 청년 하나가 몽둥이로 흰순이의 머리를 때렸다. 흰순이의 똥구멍에서 멀건 똥물이 쏟아졌다. 청년은 다시 몽둥이로 내려쳤다. 몽둥이는 빗맞아서 흰순이를 매달았던 새끼줄을 내려쳤다. 새끼줄은 끊어졌고 흰순이는 열려진 대문 밖을 달아났다."


사람들은 편한 대로 해석을 붙인다. '개는 때려서 잡아야 고기가 연해지므로 맛이 있다. 그래서 매달아 놓고 개 패듯이 패서 잡아야 한다.' '개는 아무 곳에서나 성관계를 맺으므로 조선시대의 유교적 관점에서 보면 도덕적, 윤리적으로 벌을 주는 것이다.'

"멀리 달아나지 않은 흰순이에게 주인은 손짓을 곁들여서 흰순이를 불렀다. 흰순아. 이리 온. 이리 온. 흰순이는 비틀거리며 모과나무 밑에 서 있는 주인 앞으로 갔다. 청년이 다시 몽둥이를 들어서 흰순이의 이마를 내리치자 흰순이는 네다리를 쭉 뻗고 땅에 쓰러졌다."

작가는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보리가 사랑한 흰순이를 아들 군대 보내는 날 잡아먹은 이야기를 소재로 글을 쓴 그 집 아이는 학교에서 최우수상을 받는다. 시상대에서 그 이야기를 읽으며 눈물을 흘린다.'

이 소설은 책 제목 그대로 주인공이 개다. 진돗개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이 작품에서 나오는 보리라는 개는 수몰지역에서 태어난 굳센 진돗개다. 마치 힘은 없으나 열심히 살아가는 사람의 인생을 보듯 끊임없는 시련의 길을 걷는다. 이 개는 이론이 아닌 몸소 세상을 뛰어다니면서 체득한 지식으로 세상을 본다.

사람들은 대체로 눈치가 모라란다고 한다. 남의 눈치 전혀 보지 않고 남이야 어찌되었건 제멋대로 사는 사람들, 이런 눈치 없고 막가는 사람이 잘난 사람 대접을 받고 이런 사람이 '소신 있는' 사람이라고 칭찬받는 소리를 들으면 개도 웃을 일이니 사람의 마음으로 개를 판단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한다.

주인들은 댐건설로 인해 고향을 버리게 되고 또 후에는 바다에 휩쓸려 죽어버리고 결말에는 집까지 팔아넘겨 이 개마저 다른 곳으로 팔려가는 비극적 상황들이 연출되지만 개는 닥쳐올 날들의 추위와 배고픔을 근심하지도 않는다.

톨스토이가 말했든가? 현재가 가장 소중하다고. 과거는 지나갔기에 너무 연연할 필요가 없고 미래는 아직 오직 오지 않았기에 조바심을 낼 필요가 없다고. 오직 현재만이 소중하다. 그러기에 현재에 충실히 살라고,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라고.

작가가 개라는 새로운 시각을 이용해 세상을 바라보고자 하는 생각이 재미있다. 굳은살 발바닥 속에는 개들이 제 몸의 무게를 이끌고 이 세상을 싸돌아다닌 만큼의 고통과 기쁨과 꿈이 축적되어 있다고 개를 그리지만 고단한 인생을 사는 인간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세상은 여전히 고통 속에서 눈부시다. 이 책은 내가 잠시 개가 되어 뛰고 구르며 놀다 약간의 쓸쓸함과 그리움과 안타까움 품고 슬며시 빠져나와도 좋을 성 싶은 한 편의 동화다.

개 - 내 가난한 발바닥의 기록

김훈 지음, 푸른숲(2005)


#김훈#개#보리#진돗개#흰순이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