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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무를 오르내리며 놀고 있는 난민촌 어린이들.
ⓒ 양주승
"사람들은 멜라난민캠프를 '절망의 땅'이라 부른다. 그러나 어른들은 '절망'할지 모르지만 아이들의 크고 맑은 눈동자에서 절망이라는 두 단어를 읽을 수 없었다. 난민촌 캠프를 빠져 나오면서 가슴 아파하며 눈시울을 적시고 눈물을 훔치고 돌아섰던 그 삶의 환경 속에서 그저 담담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은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으면서도 한편으론 경이로웠다. 우리가 절망이라고 느끼는 곳에서 희망을 안고 살아가는 아이들의 삶을 지켜보면서…." - 메솟난민촌 취재수첩 중에서

▲ 아이들이 입고 있는 옷들은 한국을 비롯한 국제 NGO및 구호단체에서 보내준 옷들이다. 하지만 아이들의 표정은 밝다
ⓒ 양주승
지난 4월 25일부터 29일까지 버마와 태국 국경지대에 위치한 메솟시 멜라난민캠프를 취재하고 돌아왔다. 이번 취재는 2005년 3월에 이어 올해까지 두 번째이다.

태국 방콕에서 자동차로 8시간을 달리면 버마(미얀마)국경과 인접한 메솟시 난민촌 멜라켐프가 자리 잡고 있다. 국경을 따라 2km 구역에는 9개의 캠프에 20여만명이 살고 있으며, 이 중 멜라캠프는 카렌족이 중심이 된 가장 큰 규모로 5만여명이 수용되어 있다.

이곳 어린이들에게 컴퓨터 게임, 놀이동산, 인터넷,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음식, 오염되지 않은 깨끗한 식수 등은 그림책에서만 보았을 뿐 실제로 경험하거나 만날 수는 없는 것들이다. 만약 상상이라도 할 수 있었다면 그것은 꿈속에서 만날 수 있는 '천국'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난민촌 어린이들의 얼굴은 풍요롭게 사는 지구촌 어느 나라 아이들보다 밝고 순수하고 해맑았다. 아이들의 놀이터는 나무 아래 그늘이며 장난감은 구슬과 새총, 딱지, 대나무 장대 등이 전부다. 이들의 장래 꿈은 군인이 된다거나 의사가 되어 병든 부모를 고치겠다는 아주 소박한 것들이다.

▲ 멜라난민촌 안에 있는 <야뭉나> 유치원에서 방문단 일행과 함께 기념촬영.
ⓒ 양주승
'부천외국인노동자의 집'과 '버마-태국 국경지대 메솟 난민교육지원을 위한 시민모임'은 지난 2003년부터 난민촌에 있는 야뭉나 유치원을 비롯하여 BLSO, 세타나 초등학교 등에 운영비를 지원해 왔으며 특히 지난 2006년에는 2억여원의 예산으로 메타오고등학교를 설립했다. 이번 방문에서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수조건인 '물'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한 우물개량사업으로 2개의 우물을 설치했다.

난민캠프에서는 태국 정부의 불허로 농사도 못 지어

난민들은 하루하루 끼니를 걱정할 만큼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지만 태국 정부의 불허로 농사를 짓는다거나 기타 경제 활동을 할 수 없다. 때문에 전 세계 NGO들이 보내주는 구호물품, 쌀 등 배급을 통해 생활하고 있으며 일부 소수의 인원들은 태국 정부의 허가를 받아 인근 섬유공장에서 일하고 있을 뿐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한 사람들은 난민캠프를 탈출해 태국 치앙마이 등에서 불법체류자로 머물며 일을 하고 있다,

그들이 공장에서 일을 하고 있다고 해서 정상적인 근로조건에 의한 인간적인 대우를 받는 것은 전혀 아니다. 공장 경영주는 버마 난민 이주노동자라는 약점을 이용하여 현지인의 3분의 1에도 못 미치는 저임금으로 혹사시키고 있지만 난민 역시 이러한 경영주의 횡포를 알면서도 말없이 참고 일하고 있다. 공장에서 해고 되면 불법체류자로 버마 본국으로 추방되기 때문이다.

▲ 학교를 짓기위해 어른과 아이들이 통대나무를 운반하고 있다.
ⓒ 양주승
난민촌은 넓게는 7~8미터 좁게는 3~4미터 길을 중심으로 판자, 대나무, 야자나무 잎으로 만든 집들이 마주보고 있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 야채와 식료품, 과자 등을 파는 조그마한 구멍가게 등이 있는데 2년 전 보다 가게수가 훨씬 더 늘어난 것 같았다. 학교를 짓기 위해 통대나무를 운반하는 어른과 아이들, 생활용품을 만들기 위해 대나무를 가공하는 사람들을 만 날 수 있었다.

난민촌을 흐르는 계곡 물은 말라붙어

▲ 난민촌 계곡을 흐르는 물은 말라 붙어 있고(사진좌) 지하수 수도꼭지에서는 한방울씩 똑 똑 떨어질 뿐이다.(사진우)
ⓒ 양주승
난민촌을 흐르는 폭 3~4미터의 계곡은 오랜 가뭄으로 물 한 방울 없이 말라붙어 있었으며 지하에서 끌어 올린 수도꼭지에서 나오는 물은 '똑~ 똑~ 똑' 한 방울씩 떨어져 나와 물 부족의 심각함을 그대로 볼 수 있었다.

이곳의 가옥은 1층은 비어있거나 가축 등을 기르는 사육장, 나무, 땔감 등을 저장하는 창고로 사용하며 2층에서 거주한다. 지붕은 열대야자나무 잎을 우리나라 초가처럼 엮어 지붕을 덮고 창문은 대나무를 격자 모양으로 역어 통풍이 되도록 설치해 놓았다.

대나무 창살을 통해 방문객을 바라보는 14살 소녀를 향해 버마어로 "밍글라바"(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네자 소녀는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대답해 깜짝 놀라고 반가웠다.

버마어를 모르기 때문에 더 이상 말을 건넬 수는 없었지만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을 하는 것으로 보아 난민촌 학교에서 한국어를 배운 것으로 추측할 수 있었다.

표정 밝고 인사도 잘하는 난민촌 어린이들

▲ 대나무 창살을 통해 방문객 일행을 바라보는 소녀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했다.
ⓒ 양주승
난민촌 아이들은 방문객들이 지나가도 밝은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할 뿐 먹을 것과 돈을 달라며 따라붙는 아이들은 결코 볼 수 없었다. 과거 6·25 한국전쟁 이후 우리 아이들이 미군들에게 초콜릿과 껌을 달라며 따라다녔던 것을 생갹하면 비교되는 상황이다.

이곳의 한 가정은 할머니와 아들, 며느리 손자 등 9식구가 살고 있었는데 아들은 외출했는지 보이지 않고 여덟 식구가 허리도 펼 수 없는 2층 방에 앉아서 창밖을 쳐다보고 있었다. 난민촌이라고 해서 항상 찌든 모습만 있는 것은 아니다. 마루에 앉아 열대 야자열매를 잘게 썰어 가족과 함께 먹는 모습도 볼 수 있었다.

@IMG@8아이들이 다니는 학교는 말이 학교이지 열대야자나무 잎으로 가린 지붕, 대나무로 얼기설기 엮어 만든 창문, 삐걱거리는 마루바닥에서 1학년부터 전 학년까지의 아이들이 집단으로 버마어, 수학, 영어 등 교육을 받고 있다.

방문단은 2005년부터 올해까지 난민촌 안에 있는 야뭉나 유치원을 세 번째 방문했다. 2000년에 설립된 야뭉나 유치원은 난민촌에 거주하는 카렌족의 5세 미만 아이들이 다니고 있다. 지난해 홍수로 교실이 잠겨 파손된 이후 영국의 한 인권단체의 지원으로 인근 땅에 아이들이 뛰어 놀 수 있는 50여평 남짓한 운동장도 새로 만들고 교실도 튼튼하게 새로 지었다.

정치범 자녀들이 다니는 초등학교, 고아들을 위한 학교 등 다양

난민촌 밖, 메솟시에 있는 일부 학교는 여건이 조금 낳은 곳도 있다. 메솟시 변두리주택가에 위치한 세타나 유치원은 2003년 8월에 개원했으며 우포초 교장을 포함한 4명의 자원봉사자가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다. 이 유치원의 특징은 모든 아이들이 교복을 입고 다니는 것이 특징인데 주로 버마 민주화운동을 하고 있는 자녀들이 다니고 있다.

최근 메솟시 주택가 인근에 중·고등 교육을 위한 'MINMAHAW'라는 학교가 캐나다에서 온 두 명의 외국인 자원봉사자에 의해 설립·운영되고 있었는데 여타 단체에서 운영하는 학교보다 시설과 환경면에서 쾌적했지만 가장 힘든 것은 학교 경영에 필요한 예산으로 방문단에게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특히 가장 눈여겨 볼만 한 학교가 메솟시 외각에 있는 학교다. 버마에서 40여년간 고등학교 교사를 지낸 카잉 우 마웅씨가 버마를 탈출해 전쟁고아와 갈 곳이 없는 무의탁 학생들을 위해 1994년 BHSOH학교를 건립했다. 자원봉사자를 포함한 13명의 교사가 5세부터 21살까지의 어린이와 청소년 200여명을 가르치고 있다.

@IMG@9카잉우 마웅 교장은 "이들 학생 중 고아와 무의탁 학생 등 40여명은 기숙사에서 생활하고 있으나 지금까지 지원해오던 단체의 후원이 끊겨 금년 5월 이후에는 운영자금이 없다"며 "국제 NGO 단체에 후원을 요청했지만 반가운 소식은 없다"고 말하면서 부천에서 온 방문단에게 현황을 설명하고 지원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번 방문단이 찾아간 학교는 메솟 난민촌에 있는 야뭉나 유치원, 난민촌 밖 메솟시에 있는 세타나, BLSO, 뉴데이, KED 초등학교, 메타오 고등학교, MINMAHAW 중·고등학교, BHSOH 학교 등 총 8개 학교였으며 이중 야뭉나 유치원과 세타나, 뉴데이 초등학교에는 후원금을, BLSO, KED 초등학교에는 우물 설치, BHSOH 학교에는 학용품 등을 전달했다.

난민촌 5가구 25명 국제이주기구단체가 호주로 데려가

▲ 호주로 떠나기 위해 자동차에 탑승한 난민촌 어린이들.
ⓒ 양주승
한편 방문단이 머물었던 게스트하우스에서 4월29일 어른과 아이들 25명이 집단으로 숙박을 하고 있는 광경을 목격했다.

이들을 인솔 관리하고 있는 외국인을 만났는데 그는 자신을 호주에 근무하고 있는 의사이며 국제이주기구(IOM:International Organization for Migration) 임원이라 소개한 후 난민촌에서 생활하고 있는 5가족 25명을 호주로 데려가 어른들에게는 취업을 알선하고 아이들에게는 교육을 시키기 위해 메솟에 왔다며 5월1일 호주로 떠난다고 전했다.

'태국-버마 국경지대 메솟 난민 교육지원을 위한 부천시민 모임'은 2003년부터 메솟 난민촌 교육지원과 현지 방문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버마인들이 정체성이나 가치관이 만들어 지는 청소년 시기에 교육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좀더 많은 아이들이 교육의 권리를 누릴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어 그 가치가 높이 평가되고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천타임즈(www.bucheontime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버마#태국#메솟난민촌#양주승#부천시민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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