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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07년 4월 7일 <무한도전> 방송분
ⓒ MBC
비디오 보이 유반장, 거성 박명수, 어색이 정형돈…. 어느새 토요일 저녁 안방극장을 차지한 MBC <무한도전> 출연진들의 이름이다. 리얼버라이어티를 표방한 <무한도전>은 시청자들이 배를 움켜쥐게 만들기도 하고, 살포시 미소를 짓게 만들기도 한다. 억지로 웃기는 것이 아니라 가감 없이 진솔한 모습을 보여주는 가운데 즐거움을 주기 때문이다.

시청률 조사 기관인 tns 미디어의 타켓별 시청률 조사에 따르면, 무한도전은 2007년 2월 26일부터 4월 29일까지 13세~18세를 대상으로 한 시청률 순위에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그만큼 영향력이 크다는 이야기다. 숱한 화제를 낳으면서 많은 유행어를 만들어낸 <무한도전>이기에 자칫 작은 실수가 큰 파장을 일으킬 여지가 있다. 그것은 최고의 인기 프로그램들이 가진 숙명이다.

어떤 표현이 문제일까?

<무한도전>은 오락프로그램이다. 모든 말을 표준어를 지켜가면서 쓸 필요는 없다. 표준어가 아니라 하더라도 시청자, 특히 청소년층이 즐겨 쓰는 유행어로 재치 있게 상황을 전달할 수 있다면 쓸 수도 있다. 청소년들도 유행어가 표준어가 아니라 재미를 위해 만들거나 기존의 말을 조합한 '비표준어'라는 것을 알고 있다.

문제는 <무한도전> 제작진조차 비표준어를 표준어로 인식해서 무분별하게 내보내고 있는 경우이다. 물론 청소년들은 그 말을 가감 없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그 대표적인 말이 바로 <무한도전>을 통해 화제가 되었던 '~하길 바래' 시리즈의 '~바래'라는 표현이다.

2006년 9월 23일 방송분에서 출연자였던 정형돈과 하하의 관계를 친근하게 만드는 것이 그날의 <무한도전>이 수행하는 목표였다. 여기서 '친해지길 바래'라는 제목을 쓰면서, 시청자들 사이에서 '~하길 바래'라는 말은 유행처럼 번지기 시작했다. '웃겨주길 바래', '정신차리길 바래', '공부하길 바래' 등등 누리꾼은 블로그마다 자신의 개인적인 목표에 '~바래'를 붙여서 말 만들기에 열중했다.

<무한도전> 측 역시 2006년 11월4일 김수로 특집 '속아보길 바래' 나 2007년 4월 14일 '행사장 찾아가주길 바래' 등 이후에도 '~바래'라는 말을 수도 없이 사용하고 있다.

'~하길 바래'는 외계어

▲ 2006년 11월 11일 <무한도전> 방송분
ⓒ MBC
<무한도전>에서 쓰는 '~바래'라는 말은 엄연히 비표준어이다. 우리가 '바래'라는 말을 쓸 때는 '색이 바랬다'라는 식으로 색이 변하는 경우에 쓰거나 '집까지 바래다주다'와 같이 배웅해주다라는 뜻으로 쓸 뿐이다.

국립국어연구원(http://www.korean.go.kr)은 '바라'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바래, 바램, 바랬다'로 쓰기도 하는데 이것은 잘못입니다. '자라다'가 '자라, 자람, 자랐다'로 활용하는 것처럼 '바라다'도 '바라, 바람, 바랐다'로 활용하는 것이 맞습니다.

물론 문법적으로 설명할 수 없다 하더라도 관용어처럼 쓰이는 말들은 표준어가 될 여지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경우도 아주 오랜 기간 사용해서 원래 표준어가 사어(死語)로 인식될 정도쯤은 되어야 한다. 우리는 '~ 하기 바랍니다'라고 하지 '~하기 바랩니다'라고 쓰지 않는다. 여전히 '바라'를 활용한 표현은 우리 실생활에서 많이 쓰이고 있다.

'~바라' 어감이 이상해서 쓰기가 꺼려지는 이유도 있다. 그렇게 따지면 우리말에는 잘못 써와서 표준어가 어색한 것들이 꽤 있다. '맨날'은 '만날'이 맞는 표현이고 '햇님'은 '해님'이 맞는 표현이다. 안 써 버릇해서 어색한 느낌이 들 뿐, 자주 쓰면 해결될 일이다.

한두 단어의 특이한 용법 때문에 표준어를 계속 고치는 것은 낭비일 뿐더러 우리말 체계를 무너뜨리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그래서 <무한도전>에서 제작진이 직접 '~바래'를 광고하듯 쓰는 것을 넘어 남용하는 것은 우려스러운 대목이다.

오락프로그램을 감안하더라도 '~바래'의 남용은 청소년들이 평생 쓰게 될 언어에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지금까지 청소년들에게 '~바래'라는 고정관념을 심어준 것은 <무한도전>의 과(過)가 크다.

이제부터라도 '~바라'를 쓰는 <무한도전>의 또 다른 도전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제작진이 조금만 주의를 기울인다면, 그리 어려운 문제는 아닐 것이다. 매주 열심히 도전을 하는데, 그 도전들이 말 한마디에 빛이 바랜다면 그것보다 허망한 일도 없을 것이 아닌가.

태그:#무한도전, #바래, #바라, #표준어, #맞춤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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